장인순 전 원자력연구소장 인터뷰

o 최근 북한이 고체 연료를 이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호 시험 발사에 성공해 북한의 핵무기 선제공격 위협에 대한 억제가 훨씬 더 어려워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북한이 주입 시간이 다소 소요되는 액체 연료가 아닌 고체 연료를 이용해 ICBM을 발사할 경우 사전에 포착해 요격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부상해 온 자체 핵무장론이 미국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자체 핵무장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장인순 전 소장: 나는 오랫동안 우리 한국이 언젠가 자체 핵무장을 꼭 해야 한다면 그것은 북한의 핵무기 위협 때문이 아니라 역내 권위주의 강국들의 핵무기 위협 때문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오늘날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고도화됨에 따라 김정은의 핵무기 선제공격이 언제 어떻게 현실화할지 알 수 없는 만큼 한국도 서둘러 자체 핵무장에 나서야 한다. 북한의 핵무기 공격 위협을 억제할 수 있는 수단은 미국의 전술핵을 다시 들여오거나 우리 독자 핵무장 이외에는 없다.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나서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최근 미국과 중국 간 글로벌 패권 경쟁이 본격화함에 따라 역내 권위주의 강국들의 핵무기 위협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무기 위협은 물론 이들 권위주의 강국들의 핵무기 위협이라는 ‘3중 핵 위협’을 성공적으로 억제해 국가 안보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체 핵무장밖에 없는 것이다.
o 한·미 동맹을 중시하는 전문가들은 미국이 ‘핵우산’이라고 하는 확장억제를 통해 북한의 핵무기 공격 위협을 억제해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반대하는 자체 핵무장은 한·미 동맹의 약화를 초래해 도리어 북핵 위협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인데 어떻게 봐야 하는가?
장 전 소장: 이번에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확장억제를 한국이 미국의 핵무기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 사용 기획을 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강화한 것은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이 약속대로 북한의 핵무기 공격 위협이 임박했을 때 핵무기로 북한에 대해 선제 타격을 가한다거나 북한의 핵무기 공격을 받은 이후 핵무기로 보복에 나설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미국의 정치 상황 변화는 물론 한국의 정치 상황 변화에 따라 미국의 확장억제가 실제 상황에서는 작동되지 않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핵무기 공격 위협이 언제 어떻게 제기되더라도 한국은 자체적으로 그 같은 위협들을 억제할 수 있는 핵무장 능력을 갖춰야 한다.
o 윤석열 대통령은 4월16일 로이터 회견에서 중국의 대만 강제 복속 위협과 관련해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중국은 겁박과 무시 기조로 대응하면서 4월25일 서해 북부에서 군사훈련을 하면서까지 압박했다. 한국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면 중국이 이 같은 위협을 가할 수 있겠는가?
장 전 소장: 맞다. 대만이 지난 1970년대 추진했던 핵무기 개발에 성공했다면 중국이 지금처럼 대만을 강제 복속하겠다는 생각 자체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대만이 핵무기 개발에 성공 직전까지 갔다가 좌절했던 이유는 핵무기 개발에 책임자급으로 참여했던 중국인이 이를 미국에 알려주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난 2000년대 초 원자력연구소장으로 재임하던 시기에 대만을 방문해 핵무기 개발 현장을 둘러본 적이 있다. 화덕과 연탄은 사라지고 아궁이만 뎅그러니 남아 있는 모습이었다. 한국도 언제 어떻게 대만과 같은 처지가 될지 알 수 없다. 우리도 자체 핵무장을 하지 않으면 중국의 침공 위협으로 휘둘리고 있는 대만처럼 북한의 핵무기 위협은 물론 역내 권위주의 강국들의 핵무기 위협으로 안보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사시 지켜질지가 불확실한 미국의 확장억제 약속에만 의존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중국 같은 대국이 왜 대만처럼 작은 나라를 괴롭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미국의 확장억제 높이 평가하나
한국·미국 정치적 상황 변화따라
유사시 美 핵보복 불확실성 남아
o 그렇다면 우리가 자체 핵무장을 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는 CNBC KOREA와 글로벌이코노믹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유사시 핵무기 2~3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최소 핵물질인 아임계질량의 우라늄235 12.5kg과 플루토늄239 2.5kg을 확보해 근핵보유국(near nuclear-armed country)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정도 양은 기존에 학계에서 논의되어 온 양의 절반 수준인데 가능한 것인가?
장 전 소장: 서균렬 교수의 주장에 동의한다. 우리의 핵 기술이 크게 발전했기 때문에 우라늄235와 플루토늄239를 각각 기존의 학계에서 인정되어 온 25kg과 5kg의 절반 정도라도 있으면 충분히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수준까지 밀도를 높일 수 있다. 나는 한국이 6개월 정도의 시간이면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를 통해 우라늄235 12.5kg과 플루토늄239 2.5kg을 확보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이제 핵무기 제조 기술은 하이테크(high-tech, 첨단 기술)가 아니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IAEA 회원국인 만큼 미국의 동의를 받지 않고는 우라늄235와 플루토늄239를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비밀리에 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불가피하게 자체 핵무장을 해야 하는 이유를 미국에 당당히 주장해 동의를 받아야 한다.
o 소장님이 원자력연구소장으로 재직하시던 2000년에 레이저 농축 기술을 이용해 우라늄 농축실험에 성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로 인해 2004년에 IAEA 특별사찰까지 받지 않았다. 레이저 농축실험을 하게 된 배경과 특별사찰 결과 등 당시 상황을 설명해달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관여하지 않았는가?
장 전 소장: 당시 레이저 농축 기술은 미국만 보유하고 있던 첨단 핵 기술이었다. 원자력연구소가 그 기술을 개발해 2000년에 농축실험을 한 우라늄235의 양은 2g이었다. 실험 후 IAEA의 규정이 바뀌어 이 실험에 대해 보고했다. 내가 전문가로서 승인을 재가해 이루어진 실험이었기 때문에 당당하게 보고했으나 IAEA는 2004년에 원자력연구소를 상대로 특별사찰을 했다. 연구소 내부와 외부 샅샅이 사찰한 결과 내가 보고한 것이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점에서 핵물질을 확보하는 과정에 비밀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실험은 오로지 나의 승인 아래 이루어졌다.
이교관 CNBC KOREA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