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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자의 경제안보 진단] 한·미 정상, '2차 냉전' 위기의 글로벌 자유주의 질서 구하기로 '의기투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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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자의 경제안보 진단] 한·미 정상, '2차 냉전' 위기의 글로벌 자유주의 질서 구하기로 '의기투합'

윤석열 대통령(왼쪽에서 두 번째)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월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발코니에 올라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윤석열 대통령(왼쪽에서 두 번째)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월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발코니에 올라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4·26 한·미 동맹 70주년 기념 한·미 정상 공동성명은 미국의 재세계화·이중 봉쇄 동참을 통한 중·러와의 2차 냉전에 대한 한국의 ‘참전 약정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26일 워싱턴에서 바이든 미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가진 뒤 발표한 ‘한·미 동맹 70주년 기념 한·미 정상 공동성명’에는 미국이 반도체를 중심으로 벌여 오고 있는 첨단기술 경쟁을 최근 자유주의 진영과 권위주의 진영 간 체제 대결의 2차 냉전으로 확장하면서까지 싸우고 있는 패권 도전국인 중국을 특정해서 언급한 대목이 전혀 없다.

5쪽 분량으로 다소 장문인 공동성명 어디에도 미국이 2월 28일 칩스법(반도체와 과학법)의 시행 규정을 공개하면서 본격화해 온 대중 첨단기술 봉쇄를 위한 동맹 전략인 ‘재세계화(re-globalization)’와 중국의 대만 강제 복속 저지 등 경제와 안보 부문에서 한·미 양국이 중국에 맞서 전략적 협력을 해 나가겠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번 공동성명의 핵심 합의는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의 국가명을 적시하지 않은 채 재세계화와 대만 침공 저지로 대표되는 중국과의 2차 냉전의 주요 전선들에서 함께 싸워 위기의 글로벌 자유주의 질서를 구하기로 의기투합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사실 CNBC KOREA와 글로벌이코노믹뉴스는 지난 4월 26일(한국 시간) 발간된 글로벌이코노믹 신문에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재세계화와 대만 침공 저지로 대표되는 대중 패권 경쟁에서 협력하기로 합의하더라도 공동성명에는 중국을 특정하지 않고 합의 방향을 우회적으로 언급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공동성명이 이 같은 예상대로 작성된 것이다. 당시 그같이 예상한 근거는 지난 1월 13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 바이든과 기시다가 재세계화에 합의하면서 중국을 특정하지 않았다는 데서 찾았다.

그렇다면 이번 한·미 정상 공동성명이 미국이 중국과의 2차 냉전에서 추구하고 있는 재세계화로 대표되는 경제 전략과 대만 침공 억제와 역내 해상의 질서와 안정 유지를 중심으로 한 안보 전략에 한국이 동참한다는 메시지를 어떤 형식으로 담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제와 안보 부문 대중 패권 전략에 한국이 참여하겠다고 약속하는 메시지는 두 번째 항목인 ‘인도-태평양 전역에서의 협력 확대’와 세 번째 항목인 ‘철통같은 양자 협력 강화’를 중심으로 담겨 있다.

인도-태평양 전역에서의 협력 확대라는 항목의 첫 번째 문장은 ‘한·미 양국이 포용적이고 자유로우며 공정한 무역 체제를 지지하며, 한·미 동맹과 인도-태평양 지역의 번영하는 미래를 보장하기 위한 위협 대응에 있어서 유사 입장국들과 협력하기로 약속한다’는 것이다. 이 합의는 중국의 대외 교역 정책이 현재 포용적이고 자유로우며 공정한 무역 체제를 위협함으로써 한·미 동맹과 인도-태평양 지역의 번영하는 미래를 보장하기 힘든 상황인 만큼 한·미 양국은 같은 처지의 역내 국가들과 협력해서 중국의 위협에 맞서 싸워나가겠다는 함의를 갖는다.

이어서 한·미 정상은 중국의 비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에 맞서 공동으로 대응한다는 데 합의한다. 이 합의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적시되어 있다. 물론 중국이라는 국가명은 적시되어 있지 않다. ‘양국은 경제적 강압과 외국 기업과 관련된 불투명한 수단의 사용을 포함한 경제적 영향력의 유해한 활용에 대해 깊은 우려를 공유하고, 반대를 표명하며, 경제적 강압에 대응하기 위해 유사 입장국들과 협력해 나갈 것이다.’

대중 첨단기술 봉쇄를 위한 동맹 구축 전략인 재세계화에 대한 한국의 참여를 합의하는 문장은 ‘인도-태평양 전역에서의 협력 확대’ 항목과 ‘철통같은 양자 협력 강화’ 항목 두 곳에 각각 하나씩 적시되어 있다. 앞의 항목에 적시된 문장은 ‘양국은 지역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잠재적 공급망 교란의 탐지 및 대응과 회복력 강화를 위한 조치들을 조율하기로 약속한다’라는 표현으로 매우 에둘러 쓰여 있다. 무슨 말인가? 중국이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양자 컴퓨팅 등 첨단기술 패권을 확보하기 위해 관련 산업의 소재와 장비, 부품 등에서 공급망을 교란해 오고 있는 만큼 이에 맞서 한·미가 각 첨단기술 분야별 역내 동맹 구축을 주도하며 그 같은 교란을 탐지하고 대응하면서 피해 발생 시 조기 회복 노력도 함께 하겠다는 것이다.

앞의 항목에서 이처럼 반도체 등 첨단기술 부문에서 잠재적 공급망을 교란하는 국가로서 중국을 암묵적으로 적시해 놓은 만큼 양자 협력의 카테고리인 뒤의 항목에 담겨 있는 재세계화 합의 내용은 반도체와 배터리, 양자 컴퓨팅, AI, 바이오, AI 운용 의료제품 등 주요 첨단기술 개발을 위한 한·미 양국의 협력을 강화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주요 합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양국의 핵심 기술을 위한 상호 호혜적인 공급망 생태계를 구축·강화하기 위해 과감한 투자가 필요함을 확인하였다’는 문장과 ‘양 정상은 최첨단 반도체, 첨단 패키징, 첨단 소재 분야에서 연구·개발 협력 기회를 식별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문장 등이다. 이들 합의는 재세계화의 성공이 이들 첨단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봉쇄만 해서는 어렵고, 중국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새로운 첨단기술을 개발할 때 가능하다는 점에서 한·미가 이들 첨단기술 분야의 기술 혁신을 위해 협력하겠다는 것이다.

공동성명에서 재세계화에 대한 한·미 합의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이 재세계화의 핵심 전략으로 중시해온 대중 첨단기술 투자와 기술유출에 대한 엄격한 규제에 대한 합의다. 이 같은 합의 내용은 ‘철통같은 양자 협력 강화’ 항목에 있는 ‘회복력 있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유지하고 급격한 기술 진보를 따라가는 가운데, 국가 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필요성을 인식하면서, 양 정상은 양국의 해외 투자심사 및 수출통제 당국 간 협력 심화의 중요성을 재확인하였다’라는 문장으로 표현되어 있다. 반도체 등 한국 기업들의 대중 투자나 기술유출 우려 시 미국 정부가 직접 개입하겠다는 강력한 합의인 것이다.

재세계화의 핵심 전략에 대한 한·미 정상의 이 같은 합의는 같은 항목의 핵심 의제인 미국의 국가안보보좌관과 한국의 국가안보실장이 이끄는 ‘차세대 핵심·신흥 기술 대화’ 창설 합의의 일부다. 한·미 정상은 이 대화의 창설을 포함하여 핵심·신흥 기술에 대한 협력을 심화 및 확대함으로써 양국의 경제안보를 더욱 증진하기로 약속하면서 최첨단 반도체, 배터리, 양자에 관한 공공 및 민간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디지털 기술 표준과 규정의 정신을 보다 긴밀히 일치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 ‘차세대 핵심·신흥 기술 대화’ 창설 합의가 갖는 전략적 의미는 이번 시리즈의 마지막 글에서 분석할 예정이다.

공동성명은 미국의 재세계화가 주요 목표의 하나로 추구하고 있는, 사이버 공간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디지털 전제주의’의 봉쇄에 대한 한·미 정상 간 합의도 담고 있다. 이 합의 역시 ‘철통같은 양자 협력 강화’ 항목에 들어 있는데 다음의 두 문장으로 표현되어 있다.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이 사이버 공간에 적용된다는 것을 인식하였으며, 한·미 전략적 사이버안보 협력 프레임워크를 체결하기로 하였다. 한·미 양국은 이 프레임워크를 활용하여 사이버 적대세력 억지에 관한 협력을 확대하고, 핵심 기반시설의 사이버안보를 증진하며, 사이버 범죄에 대처하고, 가상화폐 및 블록체인 애플리케이션을 보호하기로 한다.’

첨단기술 접근 및 사이버 공간에서의 전제주의 추구에 대한 봉쇄를 위한 재세계화를 중심으로 한 대중 경제 패권 전략과 함께, 대만 강제 복속 저지와 역내 해상에서의 자유로운 항해와 교역 등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대중 안보 패권 전략에 대한 한·미 정상 간 합의 역시 공동성명의 두 번째 항목인 ‘철통같은 양자 협력 강화’에 들어 있다. 이 합의는 크게 두 가지 메시지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윤 대통령의 한·일 관계 개선 노력을 환영하면서 중국의 패권 도전에 맞서 한·미·일 3국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만해협을 포함한 역내 해상에서의 일방적인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공동성명을 통해 재세계화와 대만 강제 복속 저지를 중심으로 미국이 각각 추진해온 대중 경제 패권 전략과 안보 패권 전략에 대해 중국을 특정하지 않으면서도 구체적인 합의를 이뤘다. 이 같은 사실은 윤석열 정부가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대중 봉쇄라는 2차 냉전의 제1 전선에 본격 참전했음을 보여준다.

공동성명은 윤석열 정부가 2차 냉전의 제2 전선인 대러 봉쇄에도 뛰어들었다는 것을 대중 봉쇄를 위한 합의들과 달리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성명의 첫 번째 항목인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에서 투명하게 공개했다. 한국이 중국과 반미 연합을 구축하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2년째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에 대한 봉쇄, 즉 중·러 모두 봉쇄하는 이른바 ‘이중 봉쇄(dual containment)’에 참전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대러 봉쇄에 대한 합의는 대중 봉쇄와 관련한 합의가 중국의 국가명을 감추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따른 부담을 상쇄하려는 의도가 작용했는지는 알 수 없어도 대러 비판의 강도가 예상보다 높은 내용으로 되어 있다. 다음 세 문장에 담겼다.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략 전쟁을 규탄함에 있어 국제사회와 함께 연대한다. 한·미 양국은 자국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수호하는 우크라이나와 함께하며 양 정상은 민간인과 핵심 기반시설을 대상으로 하는 러시아의 행위를 가장 강력한 언어로 규탄하였다. 양국은 제재 및 수출통제 조치를 통해 책임을 물음으로써 러시아의 명백한 국제법 위반에 단호히 대응하였으며, 또한 양국은 전력 생산과 송전을 확대하고 주요 기반시설을 재건하기 위한 것을 포함하여 필수적인 정치, 안보, 인도적, 경제적 지원 제공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지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리하면 한·미 동맹 70주년 기념 한·미 정상 공동성명은 한국이 자유주의 진영과 권위주의 진영 간 2차 냉전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진영의 중심 일원으로서 참전하겠다는 선언과 다짐을 담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같은 선언과 다짐이 재세계화와 이중 봉쇄 참여 약속으로 구체화한 것이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가 이 같은 2차 냉전 참전 약속으로 경제와 안보 분야별로 바이든 행정부로부터 무엇을 받기로 했고, 앞으로 참전 수준을 높임에 따라 더 받을 수 있는 지원이 무엇이 있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안보와 경제 분야 순서로 계속 살펴보기로 한다.


이교관 CNBC KOREA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