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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안무의 '5월의 은유: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심청이 되어진 오월의 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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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안무의 '5월의 은유: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심청이 되어진 오월의 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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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안무의 '겸손한 취향 2.0'
오월 햇살에 홀로 분홍빛으로 야위어 갔다/ 노란 봉투를 안고 옛 둥지로 들어갔다/ 동백 병풍처럼 두른 산등성이 위 뭉게구름 서너 점 떠 있었다/ 짠 소금기 미풍으로 스치는 바닷가/ 눈가의 소금기는 버금할 수 없고/ 내가 우는 방식도 익히지 못한 채/ 산란을 몸으로 껴안은 어미 연어가 되어/ 작은 전설을 써내려 가고 있었다/ 달빛, 서정의 타래 내린 밤에/ 한참 울 준비 되어있었다/ 아직, 그곳 항구 곁/ 갈매기 노랫소리 분주한 축제 일구고 있겠지/ 가난한 자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축복이 내리는/ 취향은 존중받아야 한다

5월 7일(일) 오후 5시 포이동 M극장에서 ‘최은지 댄스 프로젝트’(대표 최은지 한양대 무용예술학과 겸임교수, 예술감독 이해준 한양대 에리카 교수) 주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전문무용수지원센터·밀물예술진흥원 후원, 최은지 안무의 「5월의 은유: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가 공연되었다. 춤추는 안무가 최은지는 십여 년 전부터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분출되는 의지적 일렁임, 타자와 사회가 처한 상황을 미학적으로 승화시키는 유쾌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최은지 댄스 프로젝트’는 관객과의 소통을 중시하며, 무엇을 느끼게 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왔다.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무용의 형태와 오브제에 대해 지속적 실험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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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안무의 '겸손한 취향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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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안무의 '겸손한 취향 2.0'

최은지 안무가의 ‘5월의 은유’는 세 가지 핵심 키워드인 ‘소극장, 은유, 오브제’로 작품을 전개한다. 최은지가 구사하는 은유 연작 시리즈는 해마다 의미 있는 달을 선정하여 춤과 삶의 이야기를 오브제에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 메시지를 전달하는 프로젝트이다. 몸으로 생각하는데 익숙해진 최은지는 문제적 명제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한다. 공연은 취향에 관한 사유의 결과인 「겸손한 취향 2.0」과 현대인의 ‘무주의성’을 성찰한 「눈먼 선택 2.0」 두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밀물현대무용단의 핵심 자원인 안무가 최은지는 동지적 무용수들로 밀물현대무용단의 정단원을 투입하여 무용단의 현재적 역량과 관심사를 자신감 있게 보여주었다.

은유는 사물의 본뜻을 숨기고 보조관념을 제시한다. 노출이 쉽기에 자신의 문제를 한걸음 멀리서 보게 한다. 관객은 스스로 ‘여분의 의미’를 생성한다. 의미적 생성의 언어, 몸짓, 호흡, 시선 등 비언어적 단서까지 상징적 세계로의 진입을 도와준다. 이번 공연의 주제는 자신이 선택하는 ‘잃어버린 것’이다. 「겸손한 취향 2.0」의 거울종이는 젠더박스 혹은 잣대에 갇힌 정체성을 의미하고, ‘립스틱’은 성적 정체성의 상징이다. 「눈먼 선택 2.0」에서 봉투는 묘비를 나타내며 죽음이나 잃어버린 것, 봉투 안의 새로운 생명체는 물고기를 은유한다. ‘아르고스’는 출연자 다섯 명의 얼굴, 열 개의 눈으로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눈이 백 개 달린 괴물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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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안무의 '겸손한 취향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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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안무의 '눈 먼 선택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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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는 현대무용의 형태와 오브제 연구를 해오면서 부조리한 현실과의 소통을 도모하는 야심 찬 현대무용가이다. 「겸손한 취향 : 2.0」, 김혜미와 공동 출연한 작품은 개개인의 사적이고 주관적인 취향은 이해의 대상이지 판단의 대상이 아님을 증거한다. ‘끌림’에 주목하여 밀고 당김의 탄성을 가진 움직임이 조성된다. 그 과정에서 끊어지지 않을 긴장감을 유지한다. <취향 : 만들어진 끌림>에서 “취향은 마음의 경향, 끌림의 일종, 빈번하게 선택한 것들의 총합으로 형성된 어떤 분위기”라고 한다. 취향은 ‘나는 누구인가’와 연결되며, 취향은 옳고 그름에 의해 판단되고, 끌림은 타인의 욕망을 좇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할 시점에 있음을 밝힌다.

취향은 흡수되는 것이지 번역될 사안이 아니다. 신서사이즈가 타악을 변주하고 코믹한 일면이 연출 된다. 거울 종이를 서로의 입술에 댄 분홍과 회색 의상으로 구별되는 듀엣의 춤이 고도의 집중을 유지한다. 움직임은 전진과 회전, 서고 눕고를 반복한다. 드디어 거울은 한 여자의 손에 쥐어져 벽에 부착된다. 첼로와 바이올린이 조성하는 불균질의 불협화음은 격렬한 춤을 유도한다. 춤 장르만 해낼 수 있는 기교적 움직임이 전개되고, 바닥을 향해 엎드린 여자 혜미의 등을 조용히 밟고 일어서는 여자 은지, 몸으로 사유하는 은지는 춤으로 야위어 간다. 두 여자가 진지하게 춤으로 사유한 취향은 깔끔한 춤 에세이로 기능하며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눈 먼 선택 2.0」은 무주의 맹시를 동인(動因)으로 삼는다. 눈이 특정 위치를 향하지만, 주의가 다른 곳에 있어서 눈의 대상이 지각되지 못하고, 중요한 사항을 놓치는 상태를 일컫는다. 변화하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자유로운 일상과 크고 작은 공동체의 질서가 붕괴하는 경험 속에서 공감 능력을 상실해가는 현대인의 ‘무주의’에 대한 표현적인 이야기가 담긴다. 상징적인 움직임을 발현하기 위한 다섯 출연자(이화선, 윤희섭, 오신영, 최정원, 최영현)는 고대 신화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얼굴을 모아 열 개의 눈을 상징적 의미로 은유하며, 마이크를 든 무용수의 대사에 맞춰 상황극을 나타내면서 형상화 작업에 몰입한다. ‘눈먼 선택’의 이면은 ‘취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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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안무의 '눈 먼 선택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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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안무의 '눈 먼 선택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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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안무의 '눈 먼 선택 2.0'


‘눈 먼 선택’은 죽음을 사유한다. 바닥에 놓인 가로 8줄, 세로 7줄의 56개의 봉투가 묘비를 상징한다. 은유 연작은 최은지의 해설이 의미를 강화한다. 오월에 사유하는 ‘잃어버린 것들’은 장밋빛 다발이 아니라 핏빛 절규가 엄숙하게 정제된 귀뚜라미 소리로부터 시작된다. 멀지 않은 우리였음을 알리며 객석에서 출발한 사내는 그날의 처절함을 알리는 형상으로 퍼진 무용수의 모습을 스친다. 사내는 그날을 뜻하는 봉투를 뭉개 껴안는다. 반복적 리듬에 맞춘 음악이 일상을 은유하고 맑고 의미 있는 네 사람의 춤이 반복된다. 마지막 조형의 다섯 무용수는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모습이다. 하이키 라이트가 오가면서 춤은 미학적 상부를 지향한다.

「겸손한 취향」은 반사되는 거울 종이를 활용하여 빛을 활용한 조명을 사용하였고, 음악은 첫 듀엣과 마지막 솔로 음악을 일치시켜, 자아의 분열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 두 번째 음악 앨범 Resina의 ‘Tatry 1’은 현악기의 줄 연주가 인상적인 음악으로, 줄의 끊어짐과 당김의 연속이 긴장감을 유지 시킨다. 움직임과 음악의 통일성이 만들어진다. 「눈먼 선택」의 집중 조명은 무용수마다 등장인물의 성격화를 부각했고, 시선·표정·감정선 등을 강조했다. 윤희섭 작곡의 음악은 왈츠 기반으로 영화적 감성을 전해주고 있다. 서정을 감싸면서 어두운 면이 드러나는 음악은 중독성이 있는 잔잔한 선율의 반복적인 리듬감으로 풍성하면서도 친근한 곡이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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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안무의 '눈 먼 선택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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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안무의 '눈 먼 선택 2.0'


‘최은지 댄스 프로젝트’는 무용극 형태 추구로 정체성을 확립한다. 무대화된 두 작품은 영화의 한 장면, 책 한 장을 넘기는 것과 같은 장면 전환을 위해 조명을 활용했다. 최은지의 이전 대표 안무작은 예술회복지원사업 ‘공존 그리고 진화’ 「고독한 군중」(The Lonely Crowd, 2022), 밀물현대무용단 창단38주년 기념공연 ‘재정립된 관계’ 「섞이지 않는 사람들」(2022), 국제현대무용제(MODAFE) 국내초청작 「섞이지 않는 사람들」(2022)· 「겸손한 취향」(2020)을 꼽을 수 있다. 연출작 「다시 입력하세요(What Am I?) : Evolution」(2021)은 제30회 전국무용제 금상, 조안무한 「소소한 혁명」(2020)은 대한민국무용대상 대통령상을 탔다.

최은지(밀물현대무용단 정단원, 한국현대무용협회 이사)는 밀물현대무용단의 시소(始巢)이자 실험과 도전, 자유와 열정이 가득한 소극장 ‘M극장’에서 관객과 소통이 가능한 공연을 만들었다. 그녀는 이미 차세대 안무가상(한국현대무용협회, 2022), 우수학위논문상(한국무용학회, 2022), 제23회 신인데뷔전 신인상(한국현대무용협회, 「나는 죽었다」 안무·출연, 2016), 베스트춤레퍼토리상(M극장, 「눈 먼 선택」, 2016), 뉴제너레이션부문 청년예술가상(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2015), 차세대 안무가상(한국무용학회, 2014), 안무상(PADAF, 「빈잔」, 2014) 등의 수상으로 창의적 안무 가능성을 보여 왔다. 이번 공연은 안무가의 역량을 확인시키는 의미 있는 공연이 되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