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작연대기(15)] 지우영 안무의 창작발레 '레미제라블'

7월 13일(목)~16일(일) 나흘간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댄스시어터샤하르(Dance Theater Shahar, DTS) 20주년 기념 특별기획공연으로 댄스시어터샤하르(대표·예술감독 지우영) 주최·주관, 빅토르 위고 원작, 지우영 안무·연출·각색의 창작발레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이 5회 공연을 기록하고 막을 내렸다. 무용 불모지 도봉·노원에서 꾸준히 자신의 입지를 강화해온 발레 안무가 지우영이 전막 발레 「레미제라블」로 예술의전당이라는 확장된 공간에서 놀라운 안무력을 보이면서 세계 초연이라는 분명한 이정표를 세웠다.



안무가 지우영은 '레미제라블' 속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인상 깊게 묘사해 내면서 작품에 대한 신뢰감을 확보한다. 안무가는 당시의 시대상을 현재로 옮겨 관객들과 공감대를 형성한다. 굶주림을 못 견뎌 빵을 훔치고 19년을 복역한 장발장, 장발장을 구제할 수 없는 죄인으로 단정하는 자베르 경감, 은촛대를 훔친 장발장을 용서하는 마리엘 주교, 병든 미혼모 팡틴, 고아로 학대받는 코제트, 혁명군이 된 마리우스, 혁명에 동조한 군중이 찬찬히 발레적으로 분석된다. 흑백의 영상은 시대와 당시의 공장을 반영한다.
'레미제라블'은 1막 6장, 2막 9장 총 2막 15장(1막; 1장: 현재와 과거의 장발장과 자베르, 2장: 마리엘 주교가 베푸는 그리스도의 사랑, 3장: 구슬공장의 팡틴, 4장: 슬픔의 거리, 5장: 테나르디에 부부의 여관, 6장: 어린 코제트와 장발장의 만남/ 2막; 1장: 아버지와 딸, 2장: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만남, 3장: 장발장을 의심하는 자베르, 4장: 첫사랑과 짝사랑, 5장: 혁명 속의 사랑, 6장: 민중의 희생, 7장: 자베르의 흔들리는 신념, 8장: 코제트의 그리움, 9장: 영원한 세계로 향하는 장발장)으로 구성된다.
댄스시어터샤하르 20주년 '2막 15장' 특별기획 공연
'레미제라블'은 소설가, 안무가, 참여 예술가들의 태도와 연관되는 철학적 인간학(Philosophische Anthropologie)에 대한 독해가 필요하다. 지속적인, 지속성을 파악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관찰이 필요하다. 다양한 유형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인간의 현존 상황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인간은 스스로에게 문제화되지 않고는 온전한 성숙에 이를 수 없다. 대척점에 선 장발장과 자베르는 결국 성숙에 이른다. 장발장과 자베르가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않고 오로지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는 태도는 종교적 신념과 다를 바 없다.



계묘년 검은 토끼해의 여름, 총격당한 마리우스를 업은 장발장과 자베르가 하수도에서 만난다. 영화적 기법의 장면이 호기심을 유발하면서 발레는 시작된다. ‘동물의 왕국’ 같은 런 앤 체이스(Run & Chase)가 이어진다. 지우영 각색의 '레미제라블'은 고린도전서 13장의 가르침을 도포한 교훈서이거나 경전의 역할을 한다. 지우영은 막막한 현실에서 신앙으로 자신을 추스르고 예닮의 삶을 살아가는 억척 어멈이자 교육자이다.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숱한 사람들 가운데서 발레를 장신구로 택하여 주님의 뜻을 실천하고 있었다.
안무가 지우영은 여러 갈래의 예술에서 소재와 주제를 찾아낸다. 이번 공연은 '레미제라블'이란 문학적 소재로서 모든 종교의 공통분모인 사랑과 용서의 대화합을 변주한다. 난삽하게 가지를 친 소재를 단순화하고, 미학적 상부를 대중화하면서 감히 접근할 수 없는 발레가 아니라, 접근이 가능한 믿음의 발레로 만들어 버렸다. 안무가는 한국적 발레 「레미제라블」을 국제화하는 창의력을 발휘했고, 친절한 구성으로 ‘발레를 위한 발레’ ‘소수의 특권층을 위한 발레’를 지양하고, 연습량이 두드러지는 기교를 보였다.
등장인물 인상적인 묘사로 작품에 대한 신뢰감 확보
지우영 안무, 댄스시어터샤하르團의 '레미제라블'은 19세기 중후반 프랑스의 풍속을 묘사한 균형과 변주가 주는 움직임이 안정감을 준다. 슬픔의 한가운데에서도 오페라나 플라멩코의 코믹한 분위기에서부터 현대무용의 역동성까지 흡수한다. 현재에서 과거로의 회상(컷백)과 배역에 차이를 준 점, 계절과 시점에 따라 분위기·무리·진법으로 분화된 연기, ‘극과 무용’ ‘음악과 조명’의 만남은 지우영 발레의 자율성과 창의적 연기를 만들었다. 믿음의 발레는 시간 구성과 무대 공간의 효율적 활용도 눈에 띄게 잘 구사하고 있다.



'레미제라블'은 잘 알려진 소설이지만 소설이 지향하는 사회 개혁적인 인간의 양심은 발전은커녕 퇴화하고 있다. 안무가 지우영은 2003년에 창단된 서울시전문예술단체 댄스시어터샤하르를 통해 불쌍한 사람들을 양산하는 주체에 대한 빅토르 위고의 분노에 동참한다. 무용의 본질에 최대한 접근한 공연은 음악의 도움을 받고 있고 관객의 비위에 맞춘 대사와 노래가 없다. 불우한 환경의 소년이 용서받아 어른으로 성장하고 주변 인물들도 사랑을 실천하면서 사회의 건강한 일원이 되는 이야기는 윤리 교과서에 버금간다.
장발장의 마음, 샤하르團은 창단부터 지금까지 40여 편의 창작발레를 선보여왔다. 문학·고전·명작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지우영 브랜드의 가치와 역량을 발휘해왔다. 지우영의 대작 발레 '레미제라블'은 그녀의 대표작이 될 듯하다. 창작 발레로 우뚝 섬이 기존 고전 레퍼토리를 내세움과의 경쟁이 시작될 듯하다. 장발장은 신으로부터 용서받고 코제트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그들을 축복하고 영원한 천국으로 떠났다. 경계는 허물라고 있는 것이다. 지우영의 경계선 지능 청소년들을 위한 통섭예술교육이 꿈을 이루기를 기원한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