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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가스전보다 큰 '서해-1 광구 가스전' 매장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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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가스전보다 큰 '서해-1 광구 가스전' 매장 확신"

[특별 기고] 유인창 경북대 지질학과 명예교수

유인창 경북대 지질학과 명예교수
유인창 경북대 지질학과 명예교수
북한이 평양 북쪽 안주 지역의 지하에 석유가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을 인지한 것은 1960년대 말이었다. 석탄 최대 생산지인 안주탄전의 조사와 개발 과정에서 석유부존 가능성을 시사하는 유징(油徵·show)을 육상에서 확인한 것이 그 같은 인지의 계기가 되었다.

그 후 북한은 1970년대 초부터 석유자원 탐사와 개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육상의 안주 분지와 평양 앞바다 해상의 서한만 분지를 중심으로 석유자원 탐사와 시추 작업에 착수했는데 그 과정에서 중국, 소련, 유고슬라비아 등 공산권 국가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북한은 이 같은 탐사와 시추 노력을 통해 서한만 분지에 가장 많은 양의 석유자원이 존재하는 것으로 평가해 왔다.
그동안 국내외 과학 분야 저널에 발표된 자료들에 따르면 북한은 서한만 분지에서만 1977년부터 1989년까지 석유탐사를 위해 총 17개의 탐사공을 시추했는데 그중 일부에서 매우 유의미한 결과를 얻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투자자들의 자본 철수로 석유탐사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현재 서한만의 석유 개발은 중단된 상태다.

김포탄전·충남탄전과 연결 연안해역 석유부존 가능성

1998년 동해 가스전 발견 18년간 천연가스·원유 생산


지금까지의 서한만 분지 시추 결과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사실은 네 개 시추공에서 유징이 발견되었고 다른 두 개 시추공에서는 240배럴과 425배럴의 원유를 각각 시험적으로 생산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시추 결과는 서한만 분지 내에 원유가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의미의 ‘평양 앞바다는 석유 위에 떠 있다’라는 항간의 소문을 과학적으로 확인시켜 준다. 최근 국내외 과학 저널들에 공개된 인공위성 중자력 탐사자료를 이용 연구한 결과 역시 서한만 해저 2000~3000m 구간에 저밀도층의 원유 매장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 하나 주목할 사실은 서한만 분지 내 시추공들의 수심이 50~60m로 비교적 수심이 얕은 연안 해역이라는 점과 함께 인접한 육상 지역에 양질의 석탄을 개발·생산하고 있는 탄전들과 지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서한만 분지와 매우 흡사한 상황들이 경기도 김포탄전 일대와 지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경기도 앞바다 연안 해역과 충청남도 충남탄전과 지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충청남도 앞바다 연안 해역에서도 연출될 수 있다는 점이다. 김포탄전과 충남탄전 앞바다 연안 해역에 서한만 분지의 연안 해역처럼 석유가 부존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할 수 있는 지질학적 근거는 김포탄전과 충남탄전의 탄층들이 인근 연안 해역으로까지 연결되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한만처럼 연안 해역으로 이어진 육상 탄전의 탄층에서 생성된 원유와 가스들이 그 상부에 있는 사암 저류층으로 이동해 저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이러한 연안 해역의 석유자원 부존 가능성에 대한 조사와 탐사를 시도한 적이 없다.

역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선대로부터의 경험과 교훈이다. 무엇보다도 석유업계에서 자주 인용되는 명언 중 하나인 “석유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먼저 발견된다”는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 같은 명언은 석유자원을 발견하는 데 있어 석유자원을 탐사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는 지난 150여 년을 내려오는 석유자원 탐사의 역사가 증명한다.

정세 변화·노력에 따라 남북 공동개발 가능성도


이와 관련, 일본이 19세기 초 한반도를 강점한 후 만주로 전선을 확장한 이유에는 만주에 석유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나 만주에 석유가 없다고 판단한 후, 일본은 동남아시아로 전선을 확장해 태평양전쟁으로 확전시켜 나갔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49년 중국공산당 정부가 들어선 이후 당시 베이징대학 지질학과 학과장이었던 이수광 교수가 중국 정부와 석유업계에 던진 “만주에 석유가 있다. 만주로 가자”란 한 마디가 중국이 1959년 만주에서 ‘국가의 큰 경사’라는 대경(大慶) 유전을 발견하고 이어서 1970년대에 들어와 서한만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보하이만과 육상의 수베이 지역에서 연속적으로 유전을 발견하게 된 역사가 있다. 이런 역사를 배경으로 중국은 현재 세계 2위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대국으로 굴기했으며, 이러한 역사로부터의 교훈은 현재 전 세계를 무대로 전방위적으로 공격적인 석유탐사 활동을 벌이고 있는 중국 석유탐사 전문가들의 가슴속에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공명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새겨야 할 교훈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국내에서 석유자원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것은 자명하다. 시간을 25년 전으로 되돌려 지난 1998년 7월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순수한 우리의 기술과 자본으로 국내 대륙붕 울산 남동쪽 58㎞ 지점의 지하 2500m 깊이에서 경제성 있는 양질의 가스층을 발견한 바가 있다. 양질의 가스층이 발견된 동해-1 가스전은 2004년까지 6년 동안 생산정 시추 및 생산시설 건설 등의 개발 기간을 거쳐 2004년부터 2022년까지 18년 동안 약 330만 톤(약 1500억㎥)의 천연가스와 약 300만 배럴의 초경질원유를 생산·공급하면서 누적 매출 약 2조6000억원의 수입대체 효과를 기록해 왔다.

동해-1 가스전의 발견은 우리 정부가 국내 대륙붕에 대해 지속적인 석유자원 탐사사업을 수행해온 노력의 결과다. 1960년대 말 외국 석유회사의 자본과 기술에 의해 시작된 국내 대륙붕 석유탐사의 역사는 수많은 도전과 좌절이 함께했다. 그것은 국내 대륙붕에서 석유를 생산하는 꿈이 현실이 되기까지 멀고도 험난한 도전을 해온 값진 경험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고난과 영광의 역사를 뒤로하고 서한만을 포함한 서해 연안 해역에서 석유자원을 발견할 수 있다는 꿈을 이야기할 때다. 현 남북관계 상황에서 서한만의 석유자원 탐사를 어떻게 현실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지금까지의 남북관계 경험으로 보면 서한만 분지 석유자원의 남북 공동개발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정세 변화와 노력 여하에 따라 남북한 간 최후의 경제협력 과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서한만을 주목하면서 우리 서해 연안 해역에서도 ‘서해-1 가스전’의 발견이 가능하다는 믿음으로 탐사에 나서는 것이다.


유인창 경북대 지질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