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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유하는 영화(56)] 사이코패스도 변화시키는 사랑의 힘, 영화 '유리고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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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유하는 영화(56)] 사이코패스도 변화시키는 사랑의 힘, 영화 '유리고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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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리고코로'
최근 1조 원 규모의 유산을 사회에 기부하고 떠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홍콩 영화배우 주윤발도 40대라는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수천억 원대 재산을 기부해 화제가 된 바 있다. 반면 우리 주변에는 남들에게는 인색하지만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유산으로 사랑을 대물림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실은 인간은 모두 혈족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잊고, 눈앞의 삶을 위해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벌인다.
영화 '유리고코로'에서는 삶의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어린 여주인공이 살인의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희열을 느끼는 사이코패스로 묘사된다. 영화 제목 '유리고코로'는 '요리도코'로, 즉 '의지할 곳'이 없어서 어린 여주인공의 이상행동이 나타난다는 정신과 의사의 말을 잘못 이해한 어린 여주인공의 시각에서 유래한다.

그녀는 운명적으로 어린 시절 자신 때문에 정신적으로 상처받은 남자와 만나 결혼하게 된다. 이 결혼을 통해 그녀는 그의 사랑으로 인해 정신적인 치유를 경험하고 모성애를 발전시킨다.

그러나 어느 날, 그는 그녀의 살인 고백 노트를 우연히 발견하고, 그녀가 자신을 정신적으로 상처받게 한 장본인임을 깨닫게 된다. 그녀는 그를 죽이려고 하지만 차마 그렇게 할 수 없고, 대신 멀리 도망가서 살아가라고 말하고 놓아준다.

그 이후, 그의 아들이 성장하면서 약혼자와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그로 인해 곤란한 상황에 처하자 여주인공은 그녀의 엄마임을 밝히지 않고 숨어서 도와준다. 그러나 다시 아들을 위해 살인을 시작하게 된다.

엠비씨씨앤아이의 김흥도 감독은 이러한 설정이 상당히 비현실적이지만, 그것을 능가하는 모성애와 가족 사랑의 본능을 강조하여 감동을 준다고 평가한다. 또한, 사이코패스 주인공을 추적하면서 남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기부자들을 떠올리게 하는 반전도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영화의 매력을 필자만이 느끼는 것일까?
비슷한 이야기는 김흥도 감독이 프로듀서로 참여한 일본 영화 '아이엠히어로'에서도 나타난다. 이 영화에서는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어린 소녀가 자신을 도와준 아저씨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는 갈등을 보여주는데, 이를 위해 소녀가 이미 감염된 한쪽 눈과 아직 멀쩡한 나머지 한쪽 눈을 대비함으로써 인간의 이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그린다.

일본에서도 이러한 사랑의 힘을 다룬 영화는 당시 최고의 관객을 모을 만큼 흥미로웠으며, 이는 인간 내면에 내재된 성공적인 이야기를 확인시켜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인간은 어린 시절에 대해 자세히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기억의 단편들이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사랑으로부터 얻어졌다는 사실을 대부분 알고 있다.

그 기억을 바탕으로, 나이가 들었을 때 손주들을 더욱 자신있게 사랑해주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가족의 사랑은 당연히 남들에게 전해지고 퍼져간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러한 사랑으로 묶여 있는 존재들은 서로가 영원히 함께하길 바라지 않을까? 그것이 내세에 대한 믿음과 바람으로 이어진다.

이런 측면에서, 김흥도 감독의 '두블레' 이야기는 정말로 놀랄 만한 것이다.

그는 새로운 작품을 기획하고 있으며, 이 작품은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기초 단어부터 공부하기 위해 유튜브를 켜놓고 운동하면서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유튜브에서 흘러나오는 러시아 발음과 뜻을 반복하면서, 어느 한 순간 그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두블레, 구두'라는 러시아 단어를 반복하다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고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에 그가 외가댁에서 살 때, 할머니와 어머니는 자신의 귀여운 구두를 알려주며, 그가 '두블레'라고 스스로 표현하며 그것을 신고 나가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했다고 한다.

성장하면서도 '두블레'라는 자신만의 단어 덕분에, 친척들 사이에서 어린 아이가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고 사용했다고 인정받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두블레'는 구두라는 러시아 단어였다.

김흥도 감독은 아마도 그것을 윤회의 사례로 간주하며, 전생에 러시아의 어느 마을에서 살았다고 믿고 있으며, 사후세계에 관한 시나리오를 열심히 작업 중이라고 한다.

또한 필자도 그러고보면 김흥도 감독의 얼굴을 보면 러시아의 특정 지역을 연상시키는 모습이 있는 것 같다.

영화 속에서 살인 본능을 가진 여주인공도 남편의 지극한 사랑에 감동되어,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인 가족을 어쩔 수 없이 얻어낼 것이라 생각한다.

필자의 관점에서 영화 '유리고코로' 역시 내용이 성악설에서 성선설로 돌아가는 숙명적인 결론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생각은 내세가 있다고 믿으면 더욱 강해지는 것 같다.

인간은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의 사랑을 받고 자라며, 성장하면서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을 경쟁자로 보고 적대적인 감정을 품는다. 그러나 나이가 더 들어가며 부모님의 죽음과 같은 죽음을 가까이 인식하면서 내세에 대한 기원을 갖게 된다. 이로 인해 남들에 대한 적대심은 점차 약화되며, 모두가 함께 죽어가는 공동운명체로 생각한다.

인간의 삶은 종종 운명적으로 사랑이 확장되어 그것이 내세를 기원하는 기폭제가 된다. 그러나 죽음을 인식할 때 사람들의 생각은 극단적으로 분화된다. 어떤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내세가 없다고 여기며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가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내세를 믿으며 자신을 넘어서 다른 이들을 배려하고 베푸는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분명한 것은 인간은 삶에서 집착하는 것들을 두고 가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학교에서든 사랑에서든 인생의 여러 단계와 성숙을 경험하며 각성하고, 마찬가지로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더라도 숨이 멎는 고통을 참고 조금 더 나은 세계로 진입할 것을 희망한다. 항상 삶에서 고통을 참고 행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처럼, 꿈속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깨어나듯이 말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슬픔은 내 삶이 지속되지 않는 것보다 더 견딜 수 없다. 하지만 언제나 마음이 힘들 때마다 믿는 말이 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다.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