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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연경, 일제강점기 아픈 기억에 다가가는 위로의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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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연경, 일제강점기 아픈 기억에 다가가는 위로의 몸부림

[나의 신작연대기(22)] 홍연경 안무의 '다가갈 수 없는, 다가오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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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연경 안무의 '다가갈 수 없는, 다가오는 것들'
붉은 열정 가을을 인다. 길목 들어서며 지난 강 건너던 님의 뜻과 마주했다. 타는 가을이 사연을 전한다.

그날의 슬픔 아는가/ 작은 소리마저 괴롭던/ 사랑과 행복 사이 두려움과 슬픔이 끼고/ 끝을 알 수 없었던 나날들/ 일렁이던 마음과 일상이 시소를 탄다/ 마주할 일들은 반드시 다가온다/ 시간 스칠수록 상실감 깊어지고/ 차마 얼굴을 돌린다/ 두려웠던 내일 서리처럼 내리고/ 사시나무로 떨었다/ 겹이 싸인 아픔 엄습해도/ 훈 짐으로 다가와 주던 그들/ 떳떳한 우리들은 따스한 삶으로 세상의 좋은 꿈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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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연경 안무의 '다가갈 수 없는, 다가오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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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연경(洪連卿, Hong Yeun Gyung)은 시인 윤동주를 존경한다. 그녀는 중고교 국어 시간 외에도 시인의 시를 자주 접하면서 시인에 관한 관심이 생겼고 그 가운데 ‘서시’는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던 일제강점기의 참혹한 삶을 ‘서시’를 통해 느끼면서, 바쁜 일상 한가운데에서도 그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홍연경의 '다가갈 수 없는, 다가오는 것들'은 보훈무용제 출품작이다. 시적 감성으로 접근한 역동적 현대감의 한국창작무용은 다양한 무용수들과 함께 일제강점기 시대로 진격한다.

시적 감성으로 접근한 역동적 몸짓


홍연경의 제13회 ‘보훈무용제’ 우수상 수상작 '다가갈 수 없는, 다가오는 것들'은 빼어난 무용수들과 작업한 결과물이며 그녀가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자신의 개성이 담긴 연출과 안무로 잘 표현한 작품이다. 많은 정성을 들여 무용수들과 머리를 맞댄 작품이며 앞으로도 아끼고 기억에 남을 작품이 되었다. 그녀는 ‘보훈무용제’를 통해 무용수들이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사실에 감동했고, 좋은 경험이 되었다. 앞으로도 자기 안무작이 좋은 무대를 만나고 소중한 경험으로 남기를 다짐한다.

시대적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연기한 '다가갈 수 없는, 다가오는 것들'은 지금까지 홍연경 무용가의 삶 가운데서 최애 안무작이 된다. 이 작품은 깊은 슬픔과 괴로움이 안개처럼 내린 가운데 그 긴 시간을 감당한 고통을 기억하게 하는 작업으로서 홍연경이 지향하는 춤의 방향성과 그녀의 작품을 가장 잘 표현한 한국무용이었다. 현대무용 같은 창작무용을 진행하면서 그녀는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한국무용은 고전적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한국무용이 대중적인 장르로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내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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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연경 안무의 '다가갈 수 없는, 다가오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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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연경 안무의 '다가갈 수 없는, 다가오는 것들'


홍연경은 한국무용 표현을 일반 무용선과 다르게 보다 자유로우며, 몸에 대한 선의 표현이나 동작을 다양하게 시도한다. 스승 이동숙·김영은은 홍연경에게 많은 작품에서 무대에 설 수 있도록 가르쳐 주고 배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녀는 여러 스승과 함께했던 작품들과 첫 무대를 떠올리며 늘 겸허한 마음으로 춤을 대한다. 한국무용이라는 험한 여정에서 무대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넣고 지도해준 스승들을 기억해 내며 용기를 낸다. 참여자들은 푸른 하늘의 기운을 늘 부러워했다.

홍연경은 갑술년 오월의 추억을 간직한다. 그녀는 예원학교 무용과, 서울예고 무용과, 세종대 석사 졸업 및 박사 과정을 졸업하고 세종대 미래교육원 강사·이동숙무용단 단원으로 착실하게 무업(舞業)을 수행하고 있다. ‘보훈무용제’(9월 14일, 국립극장 하늘)에 출품된 '다가갈 수 없는, 다가오는 것들'은 ‘보훈’을 주제로 한다. ‘보훈’이란 국가유공자의 애국정신을 기려 나라에서 유공자나 그 유족에게 훈공에 대해 보답하는 일을 한다. 홍연경은 그 뜻을 바탕으로 '다가갈 수 없는, 다가오는 것들'을 안무했다.

안개처럼 내린 슬프고 괴로운 나날


홍연경의 움직임은 화려한 기교와 자극적 움직임의 반복적 나열을 우회해 정서적 공감대 구축을 위해 숱한 노력을 기울였고, 인위적인 표현보다는 무용수에게 가해지는 에너지와 인간 본성에 의해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현상에 주목하는 방식의 움직임을 활용한다. 안무가는 한국무용과 함께 어머니에게 좋아하는 피아노를 오랫동안 학습했다. 무용 창작시에 음악적인 요소를 선택하고 악기 구사는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한 가지 예술 장르만 배우는 것 보다 다른 장르의 예술을 함께 배우면 무용 창작에 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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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연경 안무의 '다가갈 수 없는, 다가오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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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연경 안무의 '다가갈 수 없는, 다가오는 것들'


이 작품은 4장으로 구성된다. 1장: 어두운 바닥에 엎드린 무리, 흑백으로 나뉜 끈적한 움직임이 인다. 반복적인 구음이 상황을 암시하며 음향은 부드러운 타악으로 바뀐다. 무용수들은 선명한 움직임을 보인다(전쟁 중 끌려온 우리). 2장: 두 명의 남자 무용수가 붉은색 기하학적 바닥에 압도적인 분위기의 공간에서 서로를 흩뜨리며 지배하려고 한다(전쟁 중). 3장: 군무는 흔들리는 움직임 속에 소리 없는 아우성을 표현한다. 격렬한 타악, 사이키델릭 조명으로 상징되는 희생자들은 더미로 쌓인다(전쟁에 지친 우리). 4장: 빨간 원피스 여인의 독무(獨舞)가 희생자들을 위로하며 더미와 하나 된다. 듀엣이 전쟁의 종료를 안도하고 희망의 나라 만들기를 기원한다.

작품에 사용된 음악은 창작음악으로서 한국적인 요소를 가미해 편곡된다. 춤 가운데 우리 춤은 즉흥이 아니라면 형식과 내용에서 현대인들이 배우기에 번거롭고 어려운 부분이 많아 접근이 쉽지 않다. 우리 춤은 한민족이 예로부터 해오던 전통 춤이고 대한민국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춤이다. 대중적인 K-­POP 시대 속에서도 우리 춤을 음악에 접목한 뒤, 우리 춤은 더욱 유명해졌다. 홍연경은 "우리 춤이 수많은 지구촌 사람의 기억에 남고, 우리 춤을 배울 수 있는 문화로 이어갔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갖고 있다.

현대무용같은 한국창작무용 '지향'


조명은 최대한 어둡고 무용수 한 명 한 명이 다 보일 수 있게 탑을 떨어뜨렸으며, 남자 신에서는 뾰족한 칼날을 연상시키는 조명(고보)을 이용하고, 3장에서는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며 과거 회상을 연상시키고, 마지막 장에서는 전쟁 중에도 순수한 여인의 모습이 담길 수 있도록 탑 조명이 여인을 따라다닌다. 의상에서 여자·남자 무용수들은 파란색 쾌자와 검은색 쾌자, 빨간색 천, 여인의 빛바랜 하얀색 의상을 사용해 태극기를 연상시킨다. 홍연경의 신작은 창작의 짜임새와 기교에서 우월적 위치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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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연경 안무의 '다가갈 수 없는, 다가오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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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연경 안무의 '다가갈 수 없는, 다가오는 것들'

홍연경(한국무용가)이미지 확대보기
홍연경(한국무용가)


홍연경의 출연 및 안무에 걸친 인상적 작품은 '화이트 아웃'(조안무, 국립극장 달오름, 2023), '춤 시향'(조안무, 공감M아트센터), '춤 물꽃'(국립국악원 우면당, 2022), '또 다른 나'(조안무, 국립극장 달오름, 2022), '둘-끼리'(한국무용협회 락토 공연 선정, 로운아트홀, 2021), '가시연꽃'(조안무, 풍류사랑방, 2021), '미니문'(조안무, 서강대 메리홀, 2021), '아이덴티티'(세종대 광개토관, 2021), '청첩'(조안무, 서강대 메리홀, 2020),'해가 빛..춤'(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 2020), '설향'(한국의집, 2019), '울릴-향'(창무 포스트극장, 2018), '뭇-시선'(창무 포스트극장, 2016), '그땐 알지 못했던 말'(두리춤터, 2015), '하루-전'(창무 포스트극장, 2014)에 이른다.

홍연경의 춤은 다섯 살 때부터 한국무용으로 시작되었다. 어릴 때 명절이면 연경을 포함한 가족들은 한복을 입고 있었다. 연경은 한복이 좋아서 한복을 입고 춤을 추었다. 부모는 한국무용을 배울 수 있도록 춤길을 열어주었고,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춤이라는 콘텐츠는 단순하게 직업이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직업이다. 연경은 ‘춤을 즐기면서 많은 사람이 즐거움을 찾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런 바람으로 창작한 춤은 우리에게 희망을 꿈꾸게 하는 보훈의 춤이 되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