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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진, 방황하는 청춘에서 성숙함으로 가는 창대한 '춤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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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진, 방황하는 청춘에서 성숙함으로 가는 창대한 '춤의 꿈'

[나의 신작연대기(30)] 최효진 안무의 현대무용 '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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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진 안무의 현대무용 '제로'
높은 구름이 라벤더 향을 끌어올릴 때마다/ 푸른 하늘은 야구장의 함성을 몰고 왔다/ 아이들은 센터 필드의 주인이 되어/ 달걀 같은 봄을 피워 올린다/ 자목련 저만치 열정으로 달리고/ 무리 참꽃이 숨 가쁘게 봄을 가동한다/ 소쩍새 울 때마다 약간씩 흔들리며/ 장독대는 혁명을 꿈꾼다/ 그해 겨울은 시계 제로였다/ 비등점에서 떠올리는 빨간 체리/ 겨울비 사이로 무지개 떠오르고/ 나무 의자는 음계처럼 세월을 스친다/ 지나간 날에 후회는 없다/ 얘들아, 인생은 늘 장밋빛이어야 한다/ 힘내자, 먼 산 눈, 사라진 봄 아닌가!

지난 16일 저녁 5시, 로운 아트홀에서 최효진 안무의 'ZERO'(제로)가 공연되었다. 화곡에서 불어온 바람은 ‘제로’의 신비를 몰고 왔다. 최효진 안무가는 늘 그러하듯 청춘 담론을 경쾌하게 담아낸다. 성장기를 거치는 발화의 과정, 디테일이 가미된 움직임, 프로타고니스트적 상상은 유쾌하다. 최효진은 늘 명랑한 분위기를 고양하면서 청소년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왔다. 자신이 무용수로 나서서 엄청난 에너지로 주제 밀착의 연기력을 창출했다. 전작들의 이미지와 연상되는 '제로'의 구성과 수사학은 여전히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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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진 안무의 현대무용 '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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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진 안무의 현대무용 '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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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진 안무의 현대무용 '제로'


최효진은 ‘제로’라는 화두를 안고 작품을 전개시킨다. 시작은 아름다웠고, 과정도 순탄했다. 스며든 외부의 불량기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의 얼음장 같았다. 바람이 스쳐 간 뒤, 가슴속으로 한 줌의 모래가 쌓인다. 한 줌의 모래 속으로 사라진 청춘을 위한 다짐의 의식이 시작되었다. 가시적 성과를 위한 움직임은 아니었지만, 율곡의 차가운 머릿속 같은 ‘삭힘’의 재(齋)가 진행되었다. 내 안에 이는 불순물을 털어내고 봄을 맞이하는 긴 움직임이 있었다. 그미의 출발은 순환의 고리를 타고 있었다. 봄날의 꽃다발은 늘 장전되었다.

언제나 명랑한 분위기 연출…직접 무대 올라 에너지 발산


'ZERO'는 프롤로그: 야구장 풍경, 제1장: ‘Beginning’, 제2장: ‘Running’, 제3장: ‘Beginning again’이라는 구성의 틀을 갖춘다. 이 작품은 나이테 쌓기와 유사한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 안무가 최효진에 이르는 움직임의 비교를 통해 춤을 시작하여 전문 무용수로 성장하는 과정을 유추하게끔 만든다. 창대한 꿈에서 시작된 춤은 청춘의 열병이라는 필수 코스를 거쳐 성숙되고, 어른으로 숙성되는 순리를 거친다는 교훈을 가르친다. ‘최효진 현대무용단’의 미덕은 과도한 기교나 범주에서 벗어난 상상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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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진 안무의 현대무용 '제로'


삶은 영점(零點)의 연속이다. 혼돈이 정제되고 경쾌한 분위기가 주변에 퍼진다. 여명의 눈동자 위로 뭉게구름이 핀다. 경전의 사계는 사람들을 희망으로 몰아넣고 하루를 출발시킨다. 흔들리는 나무 사이, 풍경은 세월을 엮는다. 모든 가능성의 시원(始原)을 찾아 바람 부는 날에도 운동화 끈을 다시 묶고 청춘은 무지갯빛 희망을 찾아 나선다. 일렁이는 마음으로 회색빛 도회지를 서성인다. 그대가 있으므로 그대와 같이 호흡하는 이 도시는 갓 닦은 안경처럼 밝아지고, 갓 볶은 원두커피가 향을 발하는 장미 화원(花園)으로 읽힌다.

최효진 현대무용단 창단 11주년을 빛낸 'ZERO'를 휘감는 음악은 프롤로그의 어린이들의 축하공연에서 존 포거티(John Fogerty)의 ‘센터필드(Centerfield)’ 1장: 청소년 축하 공연에서 화사의 ‘I Love My Body’, 블랙핑크의 ‘붐바야(Boombayah)’, 화사의 ‘칠(Chill)’, Louise Gabriel Gonzalez의 ‘Paris Else’, Danheim의 ‘Hefna’ 2장: 선생님들 축하 무대에서 윤희섭 작곡의 ‘Running’ 3장: 안무가 최효진의 ‘Beginning Again’에서 영상 음악은 유키 구라모토의 ‘Lake Louise(Piano & Violin)’(루이스湖), 공연 음악은 윤희섭 작곡의 ‘Beginning Again’, 마무리 음악은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의 ‘Non, Je ne regrette rien’(후회하지 않아)가 사용되었다.

어린이•청소년•대학생 통해 무용수로의 성장 과정 유추


도시 이면의 풍경은 루소의 자연을 닮는다. 분주해도 쓸쓸한 이른 봄, 까치밥 선홍빛은 여전히 희망이다. 내딛는 발자국마다 에너지가 얹힌다. 여러 색깔의 오뚜기의 모성이 연상된다. 아이들이 휘파람을 불면서 달려올 듯하다. 누구의 백지(白紙)는 누구의 꿈이다. 내가 그리는 꿈은 내게서 온다. 통나무 의자 위에서 인생의 꿈을 꾼다. 그사이로 싱그러운 봄바람이 불어왔다. 풍경 너머 저편, 어제와 또 다른 희망이 숨 쉬고 있다. 개성을 드러내는 창의력, 차별화된 움직임, 기교적 우위로 '제로'는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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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진 안무의 현대무용 '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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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진 안무의 현대무용 '제로'

프롤로그, 1장, 2장의 축하는 제3장 ‘Beginning Again’에 대한 겸손한 예의 표현이다. 통나무 위에서의 진지한 사유는 현대무용의 특징을 표현해내며 무수한 움직임과 열정으로 세월을 관통한다. 통나무는 삶의 나이테다. 고단함을 모르는 안무가 최효진은 명료해진 삶의 부표를 향해 걷고 있다. 모든 역할을 완수해내며, 사계의 쳇바퀴를 빛의 수레바퀴로 만들면서 내 몫의 하늘(The Sky of My Share)을 만들어 가는 작업은 아름답다. 그 길이 만인을 대표하는 아이들(특별출연 김태헌, 김태윤)과 함께라면 더욱 즐겁다.

과도하고 월등한 기교 아닌 주변과 조화되는 나를 발견


안무가 최효진은 2장에서 조호열, 최종원, 권기현, 김현아, 김송은, 강하연, 오지은, 이재정의 심리적 표정 연기와 움직임을 확장시켰다. 아울러 1장에서 양정윤, 김지우, 김주현, 안지후, 송다인, 허진서, 이가현, 강희수, 김규리, 남궁윤서, 정가은, 고진경, 조혜령, 정예선, 김채율, 윤채원, 심재하, 김 민, 홍주아, 백윤아, 조혜리, 박서빈, 이나라에 이르는 현대무용 전사들을 실전에 투입해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녀는 월등한 기교가 아니라 주변과 조화되는 나를 발견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실력을 쌓으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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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진 안무의 현대무용 '제로'


화곡에 이는 바람, 여전히 샛강 사이로 좋은 바람이 분다. 화곡은 힘찬 바람으로 비행기를 띄워서 올리는 곳이다. 갑진년의 '제로' 이야기는 미당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의 서정을 닮았다. 몇 번을 다시 시작해도 세월은 넉넉한 마음으로 젊은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실수를 용서한다. '제로'는 늘 채울 수 있다는 희망 온도를 높이는 요소다. 최효진 안무의 '제로'는 버려야 할 것은 버리는 비움의 미학을 추구한다. 또한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새로운 각오로 극기할 것을 권장한다. 제로섬에서 읽는 '제로'를 존중한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한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