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대중의 인지도를 상승시키는 음악 타입을 선호했고, 분위기에 어울리는 창작곡을 삽입했다. 열여섯 곡의 사운드트랙은 장면마다 아련한 풍경을 만든다. 불교 철학 바탕의 영화는 ‘전생’과 ‘인연’을 조율하며 흐름을 주도한다. 메인 주제곡 샤론 반 에튼(Sharon Van Etten) 작곡, <Quiet Eyes>는 노라(크레타 리)와 해성(유태오)의 유년 시절과 24년 후 재회 과정에서의 공감의 촉매제 역할을 한다. 애잔하고 풍미스러운 음악이 주 영상에 흡수되어 영화 이상의 가치로 남는다. 사운드는 영상에서 느끼는 긴박감 이상의 선율, 장면 전환에 친밀한 거리를 유지하며 시너지 효과를 창출한다. 음악을 맡은 베어와 로센은 영화 전반에 환각적인 사운드를 선사한다.
사운드 <Crossing>은 미국에서 노라와 해성이 첫 상봉할 때 묘한 감정의 불꽃을 일으키는 트랙이다. 고정된 인식과 감각의 틀을 넘어 심원한 의식마저 확장한다. 이야기를 받쳐준 몽환적 사운드는 환각제 이상으로 용해되어 영상에 마블링처럼 번져간다. 미국에 도착한 해성이 착잡한 심정에 담배를 피울 때 <Across the ocean>은 반복되는 짧고 굵은 기타 리프와 감정선을 날카롭게 찌르는 고음 의 보컬과 키보드는 감성적인 해성의 심리를 파헤친다. 스타카토 ,터치의 겹음과 반복 코드에는 숨은 열정이 느껴진다.
수시로 등장하는 <Quiet Eyes>는 노라와 해성이 만날 때마다 배경음악으로 도배되어 장면 곳곳에 회상적 분위기를 유도한다. 침실에서 노라가 생각에 잠길 때 <I remember you>는 내적 심연의 복고풍 매력을 안겨준다. 뉴욕에 가서 해성과 재회하려는 의도를 묻는 아서(존 마가로)의 영상에 <Why are you going to New York>는 재즈 기반의 타악기적 리듬이 교차 되며 블루스와 스윙을 섞은 섬세한 방식을 사용한다. 마술처럼 테마선을 연주한 기타, 록 메탈, 발라드까지 연계되어 영상의 몰입도를 높이고 말랑말랑한 소음을 유사한 장면에 끼워 넣는 음악 감독의 재치는 놀랍다.
노라와 아서의 잠자리에서 배경음악이 된 <Crossing Ⅱ>는 섬망에 빠진 듯한 사이키델릭의 전형적 무드가 영상에 삽입되고 타악기와 기타선이 맞물려 상반된 심리적 변화를 드러내며 무궁동 스타일로 분위기를 업그레이드한다. 노라와 해성이 회전목마를 배경으로 앉아 있을 때, 기차 안에서 서로를 응시할 때도 <Quiet Eyes>는 주제곡답게 존재론적 리얼리즘을 반영하며 영화의 성격과 맥락이 맞닿아 있다. 해성이 고심할 때 존 박의 <Too late>는 선율을 굴리며 포르타멘토 주법에 신비롭고 온화한 기운이 영상에 번진다.
반복적인 리듬은 줄거리의 궁금증을 유발하고 해소하는 식의 감독이 끌고 가는 축이며 집 앞 계단에서 해성을 배웅하는 아서의 장면에서 <We live here>는 크리스토퍼 베어식의 공간적 소음과 음악의 경계선이 구분되지 않는 음악이며 몽롱한 실험 음악이다. 미묘한 음형들이 타악기로 연타 되고 구르며 디스토피아적 환상을 도출한다. 단순한 1도 4도 5도를 순환하며, 애시드 록과 앰비언트를 넘나들며 과거에서 일상으로 복귀하는 노라의 본심에 주입된다.
셀린 송 감독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패스트 라이브즈」의 사운드는 사이키델릭한 다큐멘터리이며 초현실적 이미지가 각 영상에 절절히 녹아내려 이야기의 지배적 코드가 된다. 과거를 남겨둔 채 현실의 본질을 꿰뚫게 하는 역설적인 통로가 되며 ‘일탈은 주도적 현실이 될 수 없다‘는 여운과 함께 사운드트랙은 일정 간격으로 흡수되어 감정의 궤적 아래로 파고든다. 긴장감이 없는 화성적 음향으로 공간의 소리를 만든 크리스토퍼 베어와 다니엘 로센은 기존의 변증법적 기법을 초토화한 영화음악의 ‘신화적 발현’이었다.
정순영 음악평론가 겸 작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