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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메조소프라노 김민지 독창회…하이퍼 리얼리티 선사한 로맨티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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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메조소프라노 김민지 독창회…하이퍼 리얼리티 선사한 로맨티시즘

메조소프라노 김민지가 코로나 팬데믹 이후 3년 만에 무대에 섰다.이미지 확대보기
메조소프라노 김민지가 코로나 팬데믹 이후 3년 만에 무대에 섰다.
‘춘난화개’와 같은 자연 섭리로 세상에 활력을 주고 봄의 아름다움과 꽃내음이 대지를 적시며 자연의 생성과 성장은 어김없이 계절의 시곗바늘을 돌린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세계 여러 무대에서 오페라와 오라토리오 가수로 활동한 메조소프라노 김민지가 지난 3월 19일 팬데믹 이후 3년 만에 영산아트홀 무대에 섰다.

레퍼토리는 주로 명랑하고 원기에 찬 곡이며 힘찬 짧은 서주가 얼마 안 되어 Presto가 되고 발랄한 기운으로 연결된다. 전체적으로 힘에 충만하여 빛이 흐르는 것처럼 유연하다. 독일풍의 화성법과 대위법을 날쌘 솜씨로 결합했고 프랑스풍의 우아함을 곁들인 낭만적 기류를 타고 위엄을 내포한다.
1부는 피아니스트 김지훈이 작품 해설과 반주를 맡아 현장에 맞게 청중들과 소통의 벽을 좁혀 언어별과 시대별로 구분된 낭만파 시대의 전형적 곡풍을 간결하고 힘차게 해설한다.

낭만파 작품들은 장식음이 순간적인데 주로 원시음악에서 접한 비브라토와 트레몰로 현상이 주도적 음악 패턴을 이룬다. 이번에 초연된 작품은 류트 기법에서 나온 장식음들을 멈춤 한 특성을 갖는다는 것은 또 기교면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시사한다.

무대마다 물결 흐르듯 서정적 감흥을 담은 피아노는 베토벤<아델라이데 op.46>에서 김민지의 열정적 가창력과 가사 전달과 맞물려

극적이다. 유연한 노랫가락에 절제된 감정 묘사가 어우러져 베토벤 내면에 감춰진 암묵감이 느껴진다.

아델라이데에 대한 애정이 정교하게 표현되며 침묵의 박을 깨고 리듬은 유절 형식으로 분절되어 노래 선율에 긴장감을 유도한다. 이 곡은 노래 속에 완전히 융합되어 가수가 표정까지 곡의 성격을 반영하여 베토벤 기교와 색채의 정점을 이룬다. 후반부는 원기 왕성한 열정적 표현이 압도적이며 피아노 페달음에서 레치타티보를 끌어낸 것은 유희적이다.

리스트<페트라르카:3개의 소네트 S.270>은 페트라르카 시풍의 처절한 사랑의 노래를 음울한 영혼의 풍경으로 들어가듯, 고음과 저음을 반복하며 프리마돈나다운 역량을 보였고 피아노는 테크노의 고정된 시점을 규정하며 노래 가사에 서정적 분위기로 휘감는다.
<평화를 찾지 못하고>는 아다지오 템포에 비탄이란 근본적 상징성을 두고 암묵적이고 공상적 느낌을 준다. 반주는 자유로운

루바토와 장식음이 더해져 한 편의 타페스트리로 조명된다.

<모든 것이 축복이었네>와 <지상에서 천사의 자태를 보았네>는 고뇌하는 페트라르카의 시적 감흥이 강한 노래와 라우라가 죽은 후

처절한 심경을 표현한 대립성을 노래는 리스트의 문학성과 어두운 기분의 불협화음 위에 선율이 고조되고 공포심을 극복하려는 심연

의 가창력에서 프로다운 기질을 발휘했고 피아노는 렌토의 선율에서 감정을 압도한 아르페지오 풍이 밝고 담백한 여운을 준다.

메조소프라노 김민지.이미지 확대보기
메조소프라노 김민지.


로널드의 <인생의 순환>은 감상적이고 시적인 연가곡인데 주제와 대주제가 톱니처럼 연결되며 지속된 멜로디의 연결은 반음계 시퀀스를 조옮김하여 맥락 있게 보완해 가는 탄탄한 연주였다. 총 5곡 중, 1곡(Prelude)은 풍부한 성량과 가슴 벅찬 열창으로 해럴드 심슨의 꽉 찬 시풍을 담고 노래를 받친 피아노는 다양한 변주로 끈끈함과 긴장감을 유도한다.

<숲속 깊은 곳에서:봄>과 <내 사랑, 내가 원했던 그대:여름>에서 전자는 테마 가락에서 감정이 절제된 심화된 곡의 내면적 허무감을 담아냈고 후자는 불협화음을 내뿜는 반주부와 치솟는 노랫가락의 각진 끝과 맞물려 하나로 코드화된 앙상블이었다.

<바람이 부르네:가을>은 성악의 레치타티보는 단조로움을 주지만 영적 분위기가 짙게 표현되어 섬세하고 무게를 실어준다. <눈이 내리네:겨울>은 불길한 무엇이 일어날 예감을 기교적으로 끌어냈고 주제선을 각인시키는 가창력과 음색이 돋보인다.

2부는 해설을 시작으로 제이원 앙상블(바이올린:김정수, 첼로:안소연, 피아노:김지훈)의 반주로 한국 가곡의 멋을 품은 이원주 <묵향:조원숙 시>로 출발했다. 이 곡은 투박함 속에 애잔한 느낌을 주며 음악적으로 감정의 궤적들을 품는데 김민지는 작곡가의 내면세계를 차분하고 서정적으로 묘사했고 간결한 애수와 달관된 이미지는 성악적 음색(voice color)의 맥락과 닿아있고 노래를 통한 동양풍의 감각을 놓치지 않아 고담 서러운 색채감을 준다.

생상의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 중 1막: ‘데릴라’의 아리아는 드라마틱한 영감에서 생상의 로맨틱한 작풍에 접근했고 슬픔의 밑바닥에 깔려 폭발력이 느껴지는 도발적 선율을 거침없이 소화했고 피아노 트리오가 접목되어 이중적 데릴라의 마음을 응집력 있게 그려낸다.

타악기적 리듬이 빈번한 전율적인 이 곡에서 에너지 넘친 가창력과 열창으로 홀 안의 온도를 높인다. 김민지는 자신의 스타일로 가사에 멋을 낸 오페라 가수로 부분적 기교와 연기를 절묘하게 수행해 내는 예술적 기지가 연주 전반에 넘친다.

삼손을 유혹하는 ‘데릴라’의 아리아에서 격앙된 감정을 공감 있게 소화하며 빠르고 고음의 톤은 사랑이란 감정의 허무를 극적으로 전달한다. 노래는 슬픔이 노출되고 주선율의 감정 묘사(violin), 긴 선율의 흐름(cello), 리듬의 추진력을 도운(piano) 악기는 상호 연계성있게 주제선을 강화한다.

오페라 <아델손과 살비니> 중 1막, ‘넬리’의 아리아는 인간의 감정에 솟구치는 예리한 통찰과 비극성을 다룬 오페라의 서정성을 극적으로 표현했다. 벨리니가 구축한 감정의 분수령이 되어 노래 속에 반주는 마법처럼 스며들어 기하학적이며 성격 묘사에 집중하고 있다. 곡 초반에 조성면에서 순환 구도를 갖고 발랄한 리듬과 부점 리듬이 얽히면서 정열적 분위기를 조성한다.

노래의 굴곡을 뒷받침한 반주는 굴리는 코드로 격렬함을 주다가 포르타멘토의 파워풀한 선율이 절정으로 치닫는다. 장면마다 바뀐

희극성을 노래와 연기가 조합되어 슬픔의 제스처를 통한 극적 반전을 준 자신만의 기법에 무게가 실린 연주였다.

천천히 올라가는 바이올린의 상승 곡선은 상처 입은 살비니의 정신적 아픔과 쓰린 고독을 섭렵하면서 노래 속에 흡수된다.

이탈리아적 창법과 아리아의 묘미를 살린 ‘넬리’의 아리아는 벨리니가 직역한 낭만적 사랑의 좌표로서 극적 오페라를 주도한 곡인데 독창자는 넬리의 순정적 이미지를 살려 음색의 강렬한 멋과 변덕스러운 가락을 부각했고 저음 위의 반음계임이 미끄러지듯 굴곡 있는 감정선은 넬리의 움직임을 극치로 만든다.

이번 연주회는 표현의 공간에 대한 집중력이 첨예화되고 중음의 메조소프라노가 담아낸 폭발력 있는 무대이며 노래 가사와 반주는 한 편의 압축된 드라마를 연상한다. 로맨티시즘이 현대판으로 상징화된 연기력과 노래는 피아노 트리오와 어우러져 기술적 무대 이미지를 반영한 급진성과 하이퍼 리얼리티를 선사하였다.


정순영 음악평론가 겸 작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