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악원 무용단 정기공연, 김충한 안무의 '상선약수'…전통춤 인식의 대전환

6월 27일(목), 28일(금) 오후 일곱 시 반,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국립국악원 무용단 정기공연, 국립국악원 무용단·창작악단·정악단·민속악단 협연, 김충한(국립국악원 무용단 예술감독) 연출·안무감독, 안무 및 지도(김혜자, 박성호, 백미진)의 「상선약수」 공연이 있었다. 대본은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시간의 웅덩이에 춤이 고였다. 익히고 배우고 반복하고 답습하며 시간은 흐르고 춤은 무르익었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라고 도교적 수사를 가하고, 예술감독 김충한은 민속춤의 원초적 생명력을 되새겨보는 작업에 앞장섰다.

김충한 안무의 「상선약수」는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전통춤의 양식적 틀’을 접해 온 많은 사람에게 미지의 세계로의 탐험 같은 불안감과 기대감을 동시에 안고 있었다. 기우는 말끔히 해소되었다. 물은 역사를 거슬러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춤은 물의 유동과 유선의 몸짓으로 전통춤과 변주의 매력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도도하게 흐르는 전통춤의 품격에 중흥을 견인하는 동시대적 흐름을 섞는 일은 한자 사용에서 한글로 변이 되는 것 같은 혁명이었다. 그 사이, 움직임의 수사적 차이점은 김충한舞의 특징으로 드러났다.




「상선약수」는 「프롤로그」, 「태평연월, 그 오래된 염원」, 「일만 년의 기상」, 「법고(法鼓)는 그리움을 부르고」, 「마음이 들고 나니 인연의 바다라!」, 「술잔을 피해가는 학(鶴)」, 「흩어진 가락의 자유」, 「또 다른 나를 찾아서」, 「조화로운 기억」, 「에필로그」에 이르는 10장(場)으로 구성된다. 각 장은 ‘일무’, ‘태평무’, ‘훈령무’, ‘승무’, ‘살풀이 춤’, ‘한량무’, ‘산조춤’, ‘탈춤’, ‘장구춤’, ‘민속춤 종합’의 수순을 밟는다.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춤에 대한 수사는 황홀에 이르는 작업이었으며, 김충한舞는 무용적 수사의 한계치를 넘어선다.
상상을 넘어온 춤은 진동의 춤으로 변하고, 무수한 조합과 가변의 춤으로 바뀐다. 그것은 간계에 의한 모반이 아니라, 전통을 숭상하는 반정(反正) 같은 혁명의 기운이었다. 안무가는 다양한 춤의 갈래로 관객에게 상상과 사유의 시간을 제공하였다. 안무가는 특유의 춤수사적 기법으로 관객의 시선을 송두리째 빼앗아버리고, 압도적인 기교로 국립국악원 국립극장 세종문화회관 3파전 구도를 분명히 설정했다. 문제는 춤 외적 부문의 반복적 군더더기, 서사를 하나로 엮는 주제 집중도 미흡, 자신감에서 오는 매너리즘이 생긴 것이다.




안무가 김충한은 현대와 전통 사이를 넘나드는 도도한 물줄기의 변화무쌍을 깨달았다. 과거에 대한 성찰과 전통의 재해석이라는 과제가 혼재된 상황에 직면했다. 그에게 전통춤이 등대라면 민속춤은 그 등대의 불빛이었다. 다채롭게 재창작된 춤은 민속춤의 뛰어난 예술성과 각별한 배달겨레의 정서를 대변했다. 안무가는 일상적 안가(安家)의 풍경 같은 춤이 아니라 서로 버티어 대항하면서 꿈틀대는 양민들의 삶과 정신을 표현했다. 자신감 가득한 원초적 감성으로 서당 훈장님의 잔소리를 각오한 춤은 변혁의 거대한 물결이었다.

압도적인 문사(文辭)가 혼미적 기쁨의 상황을 몰고 온다. 「상선약수」는 윗물의 아늑함을 우회한다. “오백년 세월의 흔적 앞에 고개 숙인다/ 역성易性의 위업이 문무文武의 조화를 이루니/ 위로는 개국의 기쁨이요 아래로는 애민의 효시라” 전통의 숭상을 자산으로 “그로부터 또다시 오백년에 이르니/ 악樂과 가歌와 무舞를 몰고 오는 선인이 있어”라는 대목에 이른다. 초인을 대하듯 이육사의 ‘광야’를 읊조리는 감동으로 긴 세월에 걸친 춤을 되돌아보며 춤춘다. 문장은 그를 일러 “우린 이제 예맥의 봉우리라 칭송”하겠노라고 표현한다.

「프롤로그」, 궁과 궁궐 밖의 조화가 태평성대이다. 여명을 밝히는 궁중무가 국악단의 품격을 부르고, 회전 무대가 세월의 흐름을 암시한다. 궁중춤을 숭상하는 민속춤은 일상을 품고 어울림을 존중한다. 존중과 보살핌이 공존의 세상을 열어간다. 자유분방한 민속춤은 궁중춤의 지성화에 공통적 정서와 공동 발전의 의지를 갖게 된다. ‘일무’(佾舞)가 그러한 춤을 대표한다. 문무와 무무의 인위적 구별없이 ‘일무’의 기본 틀에 정제된 근대 한국춤이 화려한 위상이 부각 된다. 아찔한 감동을 선도한 춤이 이어질 본편의 궁금증을 불러왔다.

「태평연월, 그 오래된 염원」, 주제의 꿈은 갈래(태평무, 승무, 살풀이춤 등)와 부문(춤, 연출, 악가무를 아우르는 음악, 의상, 조명, 무대)에서 고급 수사와 진법의 조화로 품격을 보인다. 섬세한 버선발 디딤과 화려한 사위를 실은 시선이 우리 음악을 주조하는 악단과 조명의 도움으로 춤의 목적에 이른다. ‘태평무’는 나라의 평안과 백성의 안위를 축원하는 주최와 주관의 마음을 같이한다. 주관자는 왕과 왕비의 복식으로 궁의 염원을 대신한다. 시대는 새로운 문화원형의 탄생을 기다린다. 의물은 예술 보호 의지의 상징으로 비춰졌다.

「일만 년의 기상」, 군을 지휘하는 훈련대장의 모습을 그린 남성 군무, 신명의 훈령무는 사실을 바탕으로 하지만 희극성을 담보한다. 무인 정신과 힘을 이어받은 날렵함 위에 군무는 대취타의 웅장함을 운용한다. 대륙을 호령하던 반만년의 용맹처럼 미답 반만년도 무궁영화할 것을 기원한다. 훈령무는 단조로움을 우회한 무게감을 보여주었다. 간결함 움직임 속에 위엄과 힘의 춤사위가 돋보인다. 선대 예술가의 훈령무를 정재만이 독무로 재해석(1983년)하였고, ‘정재만 남무단’이 창단(1987년)되면서 군무로 널리 추어지게 되었다.




「법고(法鼓)는 그리움을 부르고」, 승무는 전통춤 수련의 필수 과목이다. 승무를 위한 타악 도구들이 진설된다. 완전한 귀의, 엎드린 자세에서 직립까지의 과정이 수련의 시간이 길고 험함을 알린다. 염불장단이 춤을 이끈다. 느린 춤은 첫 박에 뿌려 펼치고 끝 박에 맺는다. 천지인의 합일을 통한 ‘인간과 자연’·‘무용수와 음악’의 조화로 귀결된다. 현대 승무는 내면의 그리움을 성찰한다. 원색을 차용한 컨템포러리 승무는 전통을 껴안고 있었다. 춤의 미세한 움직임과 감정은 조화로운 악기의 운용으로 넓고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마음이 들고 나니 인연의 바다라!」, 살풀이춤, 세속의 애절한 슬픔과 한이 머무르지 않고 맺고 푸는 다양한 춤사위와 표정 연기의 춤으로 승화된다. 길고 하얀 천을 들고 추는 춤이 바닷가의 초혼굿임을 알린다. 응축된 내부의 기를 모아 꾸밈없이 수수한 생명력을 바탕으로 한 살풀이춤이다. 국악원 무용단의 살풀이춤은 자유를 구가하고 자연과 하나가 된다. 춤의 변주는 하이키라이트의 운용과 기둥이 하강하고 멈추는 작업을 요구한다. 느리지만 강인하게, 섬세하게 사위를 빚어가면서 수건을 모두 떨어트리면서 춤은 종료된다.

「술잔을 피해가는 학(鶴)」, 마당춤 한량무는 동작이 활발하고 오락성이 강하다. 열명 남성 한량무의 시각적 비주얼은 상당히 회화적이며, 패션쇼를 방불케 한다. 도포, 부채, 무대 바닥이 모두 흰색인 풍경을 곁에 두고 상수 뒤 편 높은 곳에 술상 하나가 덩그러니 자리 잡는다. 과감한 생략법으로 마음을 내려놓고 일상의 정서를 가꾸면서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며 춤은 이어진다. 한량무는 장부의 기백과 풍류를 대표한다. 한량은 도포에 정자관을 쓰고 부채를 들고 춤춘다. 춤 장단으로 굿거리 장단-염불장단-타령(허튼타령)장단이 쓰인다.




「흩어진 가락의 자유」, 허튼가락의 흩어진 춤이 산조춤이다. 여러 악기의 이름을 딴 산조들이 즐비하다. 거문고 산조는 백낙준(白樂俊)이 창제했다고 전해진다. 거문고 네 대를 앞세우고 막내 강주희를 비롯한 아홉 명의 무용수가 푸른 대지를 가로질러 다가오는 듯한 느낌을 준다. 상큼한 춤은 정대석 작곡의 ‘일출’의 정서를 구체화하고 음악은 춤의 서사를 풍요롭게 만든다. 원작의 거문고 대수를 늘여 원작의 의미를 확장하고 즉흥성을 도출하여 조화를 이룬 춤은 매혹적인 춤꾼들의 의지와 개성을 감지해 낼 수 있다.

「또 다른 나를 찾아서」, 사람들은 해서 지방의 탈놀이를 탈춤이라 불렀다. 자신의 신분이나 신체적 결함을 감추고자 하는 모든 백성들이 한삼과 의상이 화려한 이 춤을 추었다. 탈춤은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추어졌다. 김재승 지도의 또 다른 나를 찾아가는 작업은 재미있으며 연희성이 다분하다. 대사와 상대역이 있는 연기를 뺀 탈춤은 역동적인 무용 형식으로 자리 잡는다. 현실에 맞서면서 대중과 친화력을 아우른다. 자기 객관화 과정이 전제되어 있는 전지적 시선을 공유하는 탈춤은 춤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예술성을 보인다.

「조화로운 기억」, 장구춤은 신명의 시원이며, 1930년대의 일본 유학파 최승희가 본격 무대화하였다. 군무는 기교와 규모로 유려함과 장중함을 창출했으며, 전통춤을 시대적 문화 조류와 정서로 풀어내었다. 비스듬히 장구를 둘러메고 여러 장단에 맞추어 추는 장구춤은 새로운 형태의 독립 무용 장르로 정착되었다. 민요에 맞추어 장구를 치면서 흥청거리며 춤을 추다가, 민요가 끝나면 구정놀이 그대로 설장구의 빠른 장단으로 몰아 도약하면서 흥을 돋우다가 끝맺는다. 이 춤은 농악에서 출발하였지만, 도회적 이미지를 물씬 풍긴다.



「에필로그」, 유·파(流·派)를 걷어내고 원류의 춤을 만난다는 것은 힘들다. 안무가는 공통 분모를 찾아 나서는 길에 합류, 전통춤이 하나가 되기를 꿈꾸며, 오랜 시간을 돌아서 왔다. 마침내 하나가 되어 노래한 전통춤은 장구한 역사 속에 민족정신을 흡수, 반영하면서 특유의 몸짓이 되어 공동체적 화합 정신이 담긴 민속춤이 되었다. “무속과 제의식을 근간으로 한 승무나 살풀이, 농악의 판굿, 탈춤의 해학과 풍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춤의 근저에는 단합과 대동의 의지가 내포되어 있으며, 앞으로 보존·계승해야 할 문화 자산이다.”

「상선약수」는 우리 춤의 전통을 동시대적 감각으로 담아낸 수작(秀作) 이었다. 새로운 한국 민속춤의 가능성을 탐색한 공연은 국제 감각의 브랜드로서도 전혀 손색이 없는 명품이었다. 「상선약수」는 지구촌의 절대 주제 ‘물과 나무’를 으뜸으로 내세우고, 부드러운 율동과 싱그러운 춤으로 대지를 기쁨으로 가득 채우는 역사를 써내었다. 이 작품은 전통춤의 범주와 확장에 대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일본의 전통극 노(能)나 가부끼(歌舞伎)에 대한 연구가 새로움을 추구하는 전통춤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춤는 늘 부대끼며 성장해왔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BA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