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작 연대기(53)] 이해니(발레블랑 단원, ‘해니쉬발레’ 아트디렉터), 혜지(惠智)의 예작(藝作) 창출의 발레리나

이해니(Haenee Lee, 李해니)는 동시대 발레를 새롭게 구성하는 안무가이다. ‘시대성’과 ‘차별화’를 창작의 중심에 두고, 익숙한 무대 위에 새로운 시각과 구조를 축조한다. 고전 발레의 형식을 넘어 미디어아트·실감음향 등 기술을 접목해 공감각적 무대를 구현하고, 제한된 공간을 관객의 인식 너머로 확장한다. 포스트 휴머니즘적 관점으로 인간 중심의 관념을 재해석하고 춤의 의미와 형태를 재문(再問)한다. 미학 이론을 춤에 도입한 ‘이대 학파’의 이지적 모습이다.
이해니의 예술가로서의 장점은 열정과 성실함으로 예술 작품을 지속적으로 발표하는 것이다. 그녀는 'Pan&Opticon', '되돌이표: 두 개의 숨', '서바이벌 게임 2.0' 등 자신의 ‘혜지(惠智)의 발레’를 통해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 왔으며, 아르코댄스 오픈콜, 서울국제발레축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청년예술가지원 등 주요 플랫폼의 초청으로 주목받고 있다. 아직도 여운을 가슴에 새기고 있는 'Pan&Opticon', '되돌이표: 두 개의 숨'은 그녀의 최애작이다.
'숨의 경계'(2025)는 ‘숨’을 동인으로 삼아 생성과 소멸의 관계를 탐구한다. 숨을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 존재의 연속성과 단절을 형상화하며, 무대 공간과 장면 재구성을 통해 순간적 생성과 소멸의 경계를 시각화한다. 'Pan&Opticon'(2024)은 알고리즘의 감시통제 특성을 판옵티콘에 비유며, 알고리즘에 의해 파생되는 위험성과 모순을 다룬다. ‘보다’ 의미의 Opticon을 키워드로 카메라, 3D비주얼, 이머시브 사운드 기술과 무용을 융합한다. 인간 신체 움직임으로만 표현하는 춤을 넘어 기술의 눈으로 표현되고 바라보는 작품을 통해 감상 즉, 시각적 행위의 의미를 재발견한다.






발레 안무가 이해니는 ‘시대성’과 ‘차별화’로 특징화된다. 이해니는 작품에 동시대적 코드를 심는 것을 중시하며, 자신만의 관점과 독자적인 방식으로 작품을 펼친다. 관객은 그 안에서 새로운 시선을 발견하고, 깊은 영감을 얻는다. 이해니는 자기 작품이 고전 발레 형식을 넘어, 미디어아트와 ‘실감음향’ 등 다양한 기술을 결합해 무대의 감각을 확장한다. 이해니의 창작 방식은 한정된 공간을 넘어, 관객의 인식 너머까지 도달하도록 공감각적 경험을 설계한다.
이해니는 다양한 동서양의 다양한 춤 이외에도 건축을 포함한 현대미술을 좋아한다. 세월이 숙성되면 대표작도 많아지고 변화될 것이지만, 현재까지 이해니의 대표작 10선은 '숨의 경계'(2025), 'Pan&Opticon'(2024), '되돌이표: 두 개의 숨'(2024), '두 개의 숨'(2023), '서바이벌 게임 2.0'(2023), 'Call me 'Ze''(2021), '알파걸: 서바이벌 게임'(2020), 'The table'(2029), 'Dawn the rabbit hole'(2018)로서 감각과 현상에 걸친 탐구작이다.
이해니는 슬립노모어나 푸에르자 부르타처럼 언젠가는 이루게 될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을 만들고자 한다. 그녀는 무용을 예술 창작의 중심에 두되, 공간, 기술, 감각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몰입형 공연으로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면서 세계 여러 도시를 순회하는 공연 예술가를 꿈꾼다. 그래서 그 꿈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고 있다. “돈키호테처럼 현실 너머를 상상하며, 그 가능성을 향해 한 걸음씩 가다 보면 또 다른 꿈을 마주할지도 모를 일이다”라고 말한다.
이해니는 이근민·손동자의 장녀로 기사년 따뜻한 봄날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명당초 예원학교 서울예고 졸업, 이화여대 무용학 학사·석사·동 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엄마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던 어린 시절, 모친을 따라 처음으로 배운 동작이 ‘에이샤페’ 였다. 자연스럽게 모친의 움직임을 따라 하며 발레와 처음 인사를 나눴고, 그 시간이 지금의 이해니를 예술로 이끈 첫 기억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몸짓을 따라 걷듯, 그렇게 그녀는 춤을 시작했다.
이해니에게 늘 조용히 힘이 되어준 사람들이 있었다. 가족과 선생님, 친구들 덕분에 어둠 속에서도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언젠가 그녀도 누군가의 빛과 그늘이 되기를 기원한다. 이해니를 조련시킨 스승들은 참으로 많다. 어린이 시절 김동곤, 윤미란, 안재선 선생이 지도해 주었고 예원학교 시절에는 김나영, 김향좌, 윤정림, 서울예고 시절에는 안윤희, 김정은, 이고은, 이민정 선생의 학습을 거쳐 대학 시절의 신은경, 현재 고현정 교수의 지도를 받고 있다.
이해니는 이화여대 우등졸업상(2013) 이후 인천예고, 서울예고, 상명대, 전북대, 한양대 ERICA 등에 출강했다. 한국발레협회 신인안무가전 ‘최우수 안무가상’(2021), 제16회 서울국제발레축제 K-발레레파토리 선정(2023),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청년예술가 생애첫지원사업 선정(2023), Seoul Arts 전국무용콩쿠르 지도자상(2023), 춤과 사람들‘ 전국무용경연대회 공로상(2023), 제14회 KABA 발레 콩쿠르 공로상(2023)을 받았다.





이해니는 펠릭스 바렛, 맥신 도일 공동 연출의 'SLEEP NO MORE', 오하드 나하린의 '데카당스', 피에르위그展, ‘teamLab Planets TOKYO’ 조형물에 감동한다. 그녀는 경쟁적 저력을 발휘하여 인천시립무용단 ‘춤추는 도시’ 인천 폐막공연(2024),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청년예술가도약지원사업 선정(2024), 아르코 댄스 & 커넥션 오픈콜 선정(2024) 및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협업 레벨업 작업에 최종 선정(2025) 되는 성장을 거듭하고 있으며, 다가오는 7월 크리틱스초이스댄스페스티벌(2025)에 초청되어 신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해니는 초록별 아래 짙은 열정 발레의 단(壇)을 쌓고 있다. 덕수궁에서 세종문화회관 분수대에 이를 때까지 서역의 꿈을 펼친다. 그녀가 만들어 내는 발레 비경은 거칠 것 없는 상상으로 단 하나뿐인 창의적 구도와 색상을 환상으로 몰아넣고자 한다. 그녀의 서사는 황홀에 이르는 시각적 비주얼을 부르고 바람 부는 날에도 날쌘 현(絃)이 우주를 희롱할 것 같다. 그녀는 늘 여러 마음이 하나 되어 우주를 향한 화평의 나날이 지속되기를 기원해 왔다. 이루어질지어라.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