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김진미 안무·최성신 연출의 '오르페우스', 오르페우스의 선율·하데스의 미학

글로벌이코노믹

김진미 안무·최성신 연출의 '오르페우스', 오르페우스의 선율·하데스의 미학

[나의 신작 연대기(68)] 김진미(한국무용가, 강원특별자치도립무용단 예술감독)의 '오르페우스' 탐구
김진미 안무, 최성신 연출의 '오르페우스'(2025)이미지 확대보기
김진미 안무, 최성신 연출의 '오르페우스'(2025)
10월 31일(금) 19:30,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강원특별지치도 주최, 강원특별자치도립무용단 주관, 김진미(예술감독 겸 상임안무자) 안무의 특별자치도립무용단 기획공연 '오르페우스'가 공연되었다.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물으며 전개한 5경(景) 구성의 '오르페우스'는 경(景)의 제목이 윤회적 구조를 암시한다. 선택(Ⅰ)→애도(Ⅰ)→기회→애도(Ⅱ)→선택(Ⅱ)에 걸친 구도는 단선적 서사가 아니라 사랑과 죽음, 신과 인간, 믿음과 의심의 순환적 구조를 보여준다.

'오르페우스'는 고전 비극이 가진 카타르시스를 현대적으로 변용한다. 안무가는 인간은 결국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존재라는 실존적 물음을 던진다. 순환성에 걸친 움직임은 반복 동작, 회전, 원형 동선으로 구체화 된다. '오르페우스'의 핵심 미학은 뜨거운 죽음이라는 역설적 표현으로 응축된다. 사랑은 생명을 불태우지만, 동시에 파멸의 시작이다. 이 작품은 사랑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죽음이라는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변증법을 무용 언어로 치환한다.

강릉에서의 초연이 청량한 생동감을 전달했다면, 춘천의 '오르페우스'는 심도의 감각적 몸체로 상상력을 풀어낸 무대였다. 경(景)마다 의미를 둔 빛과 그림자, 공간과 신체, 시간과 감정 교차의 시적 경이 되었다. 햇살을 받은 오르페우스(박용우)와 에우리디케(김아론)는 부드러운 곡선과 호흡으로 서로를 탐색한다. 팔과 몸의 선, 나선형과 원형의 움직임은 운명의 수레바퀴를 대신한다. 관객은 그 회전 속에서 사랑의 설렘과 죽음의 그림자를 직관적으로 체험한다.

김진미 안무는 전통춤의 호흡법과 장단 감각을 현대적 신체 어휘로 정교하게 번역해낸다. 팔 끝의 미세한 떨림, 허리의 유연한 호흡, 발 디딤의 무게를 통해 고전적 한국춤의 결을 숨결처럼 녹여내되, 그 표현 언어는 철저히 현대적이다. 특히 신체의 ‘공간을 여는 방식’, 비어 있는 공간을 몸의 선으로 길어 올리는 동작들은 무용수들이 존재 자체로 장면의 구조를 떠받치게 한다. 김진미의 수사는 스펙트럼이 넓고 대중성의 코드와 미학적 승급에 정통해 있다.
‘운명의 수레바퀴’ 장면은 공연의 미학적 정점이다. 중심에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가 서로를 붙잡고 사랑과 절망 사이를 오가며, 주변 군무는 원형으로 회전하여 운명과 선택의 불가피성을 상징한다. 단(團)의 젊은 기량은 푸른 기운 속에서 활짝 발산되었다. 무용수들은 개별적 동작 속에서도 전체적 회전과 공간적 흐름에 기민하게 호응하였다. 정지와 도약의 움직임은 호흡을 고르고 공간을 가로지르며 생명과 죽음, 자유와 필연의 긴장을 몸으로 증언하였다.

김진미 안무, 최성신 연출의 '오르페우스'(2025)이미지 확대보기
김진미 안무, 최성신 연출의 '오르페우스'(2025)
김진미 안무, 최성신 연출의 '오르페우스'(2025)이미지 확대보기
김진미 안무, 최성신 연출의 '오르페우스'(2025)
김진미 안무, 최성신 연출의 '오르페우스'(2025)이미지 확대보기
김진미 안무, 최성신 연출의 '오르페우스'(2025)
김진미 안무, 최성신 연출의 '오르페우스'(2025)이미지 확대보기
김진미 안무, 최성신 연출의 '오르페우스'(2025)
김진미 안무, 최성신 연출의 '오르페우스'(2025)이미지 확대보기
김진미 안무, 최성신 연출의 '오르페우스'(2025)

군무는 장식적 배경을 넘어, 오르페우스의 내면 갈등을 외화하는 심리적 장치로 작동한다. 군무의 원형적 흐름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미세한 높낮이 변화, 시선의 교차, 속도의 섬세한 호흡 조절을 통해 ‘보이지 않는 운명’을 기민하게 직조한다. 이는 김진미 안무가가 지닌 층위 깊은 공간 감각과 드라마투르기적 신체 구성 능력을 증명한다. 군무의 서사적 긴장은 오르페우스의 비극적 결단이 개인 감정이 아닌 집단적 운명의 필연으로 확장되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조명과 색채는 서사적 미학의 또 다른 언어였다. 웜 톤과 청색이 혼합된 빛은 햇살과 물 내음을 시각화하며, 전면 공간을 생명과 사랑의 영역으로 만들어낸다. 후방과 측면에서는 차가운 톤과 느린 페이드 조명, 희미한 안개가 죽음과 그림자의 영역을 은밀하게 드리우며 사랑과 생명력 위에 늘 따라다니는 운명의 그림자를 상기시킨다. 관객은 단순히 춤을 보는 것이 아니라, 빛과 색, 공간적 깊이 속에서 서사적 층위를 체험하는 경험에 몰입하게 된다.

정제된 '오르페우스'는 단순한 이야기 재현을 넘어, 서사·감정·공간·신체·빛·음악이 총체적으로 얽히는 미학을 구현하였다. 경을 통해 장면마다 의미적 구분을 명확히 하면서, 관객은 생명과 죽음, 사랑과 운명, 선택과 필연이라는 시적 주제를 신체적 경험으로 직접 체험하게 된다. 지난해 초연이 보여준 젊은 기운과 활력 위에, 이번 공연은 더욱 감각적이고 정제된 몸체와 상상력의 서정을 더하여, 무대와 관객 사이에 심미적 공명과 몰입의 공간을 만들어내었다.

김진미는 강원특별자치도립무용단 예술감독 겸 상임안무자이다. 그녀는 세종대 무용학 박사, 국가무형유산 태평무 이수자, 사)한영숙춤보존회 상임이사, 밀양검무 보존회 부회장이다. 그녀는 청주시립무용단 예술감독 겸 상임안무자 역임, 대전시립무용단 연습지도자 역임, 한국교통대 스포츠산업학과 외래교수 및 전임연구원을 역임했다. 또한 PAF 올해의 춤 작가상('태평청주圖', 2021), 제36회 서울무용제 안무상('거짓말쟁이 여자 영자', 2015), 한국춤비평가상 춤연기상('세치 혀', 2011), PAF 베스트 춤 레퍼토리상('세치 혀', 2011), SCF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 심사위원장특별상('갓 아래 신', 2009), PAF 안무상('갓 아래 신', 2008), PAF 올해의 춤연기상('잔의 울음', 2007), 제14회 전국무용제 금상 및 개인연기상('아이歌', 2005), 제10회 전국무용제 개인연기상('유월의 나비', 2001) 등을 수상했다.

김진미 안무, 최성신 연출의 '오르페우스'(2025)이미지 확대보기
김진미 안무, 최성신 연출의 '오르페우스'(2025)
김진미 안무, 최성신 연출의 '오르페우스'(2025)이미지 확대보기
김진미 안무, 최성신 연출의 '오르페우스'(2025)
김진미 안무, 최성신 연출의 '오르페우스'(2025)이미지 확대보기
김진미 안무, 최성신 연출의 '오르페우스'(2025)
김진미 안무, 최성신 연출의 '오르페우스'(2025)이미지 확대보기
김진미 안무, 최성신 연출의 '오르페우스'(2025)

김진미의 대표 안무작은 '발광의 사유'(2000), '설레임 그 낯짝에 씩워…'(2001), '본능의 수작'(2002), '씨나락 까먹는 소리'(2002), '방망아 방망아'(2003), '씨나락 까먹는 소리-지금'(2004), '꽃처럼 죽다'(2005), '아이가(歌)'(2005), '잔의 울음'(2007), '갓 아래 신'(2008), '항아리 닦는 어머니의 춤추는 딸'(2009), '風月 淸風에 明月 흐르난다'(2009), '세치 혀'(2011), '바라..보다'(2012), '독립선언문(아모르파티)'(2013), '月夢(월몽)'(2014), '거짓말쟁이 여자 영자'(2015), '금(琴)은 未乙을 타고'(2016), '父 마중'(2016), '뿔과 갈대'(2016), '핼러윈 신데렐라'(2017), '피노키오'(2018), '明朗소리 流水에 얹어'(2018), '영자歌.,..하얀거짓말'(2019), '아리바다'(2020), 'COSMOS'(2021), '태평청주圖'(2021), '쇠형본'(2021), '사랑풍정 춤: 시선'(2022), '鼓動舞'(2022), '융'(2023), '강곡(江曲)'(2023), '달천무'(2023), '오르페우스'(2024), '단오, 봄의제전'(2025), '강원뜨레'(2025), '오르페우스'(2025)에 이른다.

강원특별자치도립무용단(Gangwon State Dance Company)는 1999년 8월 창단되어, 강원도의 역사, 설화, 민속, 민요를 바탕으로 도민의 삶을 반영한 열정과 멋을 놀이와 춤으로 표현, 문화유산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 무용단이다. 무용단의 춤 작업은 사람과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며 나눔과 공존을 상징하는 무대를 선사한다. 한국 대표무용단으로서 새로운 가능성과 예술적 비전 제시로 강원도 문화를 국내외에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설 것이다.

단원들의 탁월한 기량과 예술성이 어우러진 독창적 무대를 통해 한국무용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키고 저변을 확장시키고 있다. 단(團)은 국내 및 미국, 독일, 일본, 중국 등과 해외교류를 이어오며 강원도의 문화예술을 세계에 알려왔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개·폐막식에 참여하여 전 세계에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렸으며, 무용을 전공한 전문 단원들로 구성되어 매년 정기공연, 기획공연, 찾아가는 공연, 행사 등을 통해 다채로운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오르페우스'는 신화적 서사를 통해 인간의 실존과 예술의 구원 가능성을 탐구한 고품격 현대 무용극이다. 무대는 소리의 재단(노래가 탄생하는 성소(聖所)), 푸른대지(삶과 죽음이 맞닿는 경계), 하데스(침묵과 어둠의 심연)로 구분되어 사랑은 선택의 윤회이며 예술의 불멸이라는 구조를 춤으로 구현하였다. '오르페우스'는 감각적 서정성과 형이상학적 깊이가 공존한 강력한 미학적 에너지를 분출하면서 사랑과 삶, 인간 존재의 본질을 성찰한 수작이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제공=강원특별자치도립무용단(촬영 김세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