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작 연대기(69)] 김호은(카시아무용단 예술감독, 계원예고 무용부장, 무용학박사)의 'BEYOND DISTOPIA', 공동체적 신체의 재탄생을 지향하다
이미지 확대보기'BEYOND DISTOPIA', 탈 디스토피아적 입장은 암울한 체제나 억압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어떠한 절망의 구조 속에서도 새로운 감각·존재·공동체의 가능성을 사유한다. 이것은 몸의 회복, 관계성의 재구성, 시간의 재감각화로 나타났다. 이는 디스토피아를 직시하는 용기로부터 출발하여 춤으로 창조되는 유토피아를 꿈꾸며 다시 ‘살아있는 몸’을 복원하는 미학적 전환을 의미한다.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마음으로, 청춘은 전통을 이음하는 길을 찾아 나선다.
디스토피아적 세계에서 신체는 감시의 대상이자 통제의 매개였지만, 탈 디스토피아적 미학에서 신체는 감각과 타자성의 복귀를 통해 재생하는 존재로 갱신된다. 무용수의 움직임은 명령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세계와의 관계 맺기로서의 움직임이다. 이 움직임은 완벽한 조율 대신 균열, 망설임, 실패의 리듬을 포용하며, 그 불완전함 속에서 인간적 존엄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춤은 과거의 상처를 망각하지 않고, 다른 리듬으로 전환하는 기억의 안무로 변모한다.
'BEYOND DISTOPIA'는 ‘상상하지 못한 순간’, ‘향, 손끝의 울림’, ‘육현(六弦)이 나르샤’에 걸친 3개의 장(場)으로 억압 속의 미세한 해방, 정지 속의 운동, 침묵 속의 외침의 형식을 보인다. 이 작품은 통제와 균열이 교차하는 경계 지점에서 발생하는 정신적 흔적을 추적하며, 파괴된 질서 속에서 인간 내면의 회복 가능성을 탐색한다. 나아가 절망과 침묵의 국면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생성되는 미세한 운동과 감응의 층위를 통해, 새로운 존재론적 서사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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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상상하지 못한 순간’ : 세상이 무너진 자리, 청춘은 다시 움직인다. 파편이 된 시간 속에서, 더 나은 세계를 향해 길을 나선다. 처음엔 같은 방향을 바라보지만, 욕망과 불안은 서서히 균열을 만든다. 흩어지고, 멈추고, 흔들리던 그때, 어둠 속에서 빛의 파편이 깨어난다. 작지만 단단한 빛은 변화의 시작이며, 정지된 몸은 다시 호흡을 찾는다. 주저하던 손끝이 서로를 향해 닿을 때, 함께 걷기 시작한다. 유토피아는 지금, 청춘과 함께 만들어가는 움직임 속에 있다.
‘향, 손끝의 울림’ : 시간의 내적 흐름을 신체로 사유한다. 한국무용의 미학적 전통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며, 신체의 미세한 진동을 통해 ‘향(香)’이라는 비물질적 이미지를 시간적 사건으로 변환한다. ‘향’은 사라짐을 통해 존재를 드러내는 감각적 은유로 기능한다. 향은 불에 닿으면서 소멸을 향해 나아가지만, 그 사라짐 속에서 공간을 점유한다. 유미주의적 미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가 '공간의 시학'에서 말한 ‘감각의 지속’ 개념과 상통한다.
'향, 손끝의 울림'은 장구·향발·호적이라는 세 악기의 음향을 통해 신체의 리듬을 ‘호흡의 구조’로 전환시킨다. 장구의 양면적 타격은 음양(陰陽)의 구조를 상징하며, 향발의 금속성 울림은 리듬과 정적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작동한다. 호적의 관악적 선율은 인간의 호흡과 가장 유사한 진동으로, 신체의 움직임에 시간성을 부여한다. 이 세 악기의 공명 속에서 몸은 더 이상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소리와 빛, 시간과 공간이 교차하는 매개체적 신체로 재구성된다.
향은 사라짐의 이미지, 손끝의 울림은 신체의 언어로서 이 두 개념은 시간과 감각, 신체와 존재의 경계를 해체한다. 춤은 동작의 연속이 아니라, 감각과 기억이 교차하는 시간의 시학이다. 한국무용의 전통적 품격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적 신체 미학의 장 안에서 감각적 철학으로 재탄생한다. 이때 향은 신체가 시간 속에 새기는 존재의 흔적이 된다. 한국무용이 ‘멈춤 속의 흐름, 정적 속의 생명’에 있다면, 향은 그 ‘정적의 결’ 속에서 피어나는 미세한 생동의 징후이다.
향은 몸의 흔적이자 사라짐 속에 남는 감각의 지속이다. 장구의 맥박은 인간의 심장을 닮아 있고, 향발의 미세한 울림은 리듬과 정적 사이를 잇는 다리처럼 작동한다. 호적의 호흡은 그 사이에 스며들어 춤의 시간성을 확장시킨다. 이 세 악기와의 호흡 속에서 무용수의 몸은 더 이상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공간-소리-시간을 매개하는 흐름이 된다. 이 장은 한국무용이 지닌 근원적 사유, ‘움직임은 멈춤 속, 울림은 침묵 속에서 태어난다’라는 역설을 시각화한다.
‘육현(뉴)이 나르샤’ : 궁중의 흐름을 차고 나와 우주 질서와 조화, 인간과 자연의 균형을 기원한다. 몸의 움직임과 리듬으로 북을 치는 춤이다. 한 가락씩 선율이 되고 한 자락씩 시공을 이룬다. 전통의 풍미를 담은 음악과 춤이 ‘육현이 나르샤’를 만났다. 저마다 여섯 개의 북에 무용수들이 중앙에 서서 사방의 북을 두드리며 춤(몸짓, 동작)과 타고를 수행한다. 동선은 원형으로 균형감을 주며, 채의 움직임과 한복의 소매·치맛자락의 흐름이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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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높은 집중력으로 팔·어깨·허리·다리 등 전신을 균형 있게 쓰며 여러 북을 정확한 타이밍에 치는 기술이 돋보인다. 복합 리듬의 표현력과 회전·도약·팔 동작을 입체적으로 무대 공간 활용을 극대화한다. 채를 교차하거나 회전시키며 북을 치는 동작은 기교의 묘를 보이고, 북을 치는 순간의 소리와 동작이 시각적 효과가 두드러진다. 힘 있는 북 타격 속에서도 손끝, 발 디딤, 시선 등 전통 무용의 미세한 요소들을 동시에 표현하며 전통 춤사위의 섬세함을 유지하였다.
김호은(카시아무용단 예술감독, 계원예고 무용부장, 무용학박사) 총안무, 신성철(아트프로젝트 노마드 대표) 총연출의 'BEYOND DISTOPIA'는 공동체적 신체의 재탄생을 지향하였다. 타자와의 관계적 호흡을 통해 새로운 윤리적 공간을 창출하였으며, 풋풋한 청춘은 ‘관계’를 말하며 흔적 없이 감각의 층위를 확장하였다.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피워올린 움직임은 파괴된 세계의 잔해 위에서 다시 피어나는 하나의 생명적 언어였다. 'BEYOND DISTOPIA'는 시간과 공간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몸의 시학(詩學)으로서 우리춤을 감각적·존재론적 사유로 확장한 수작(秀作)이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제공=카시아무용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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