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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지 바르푸자리 시집 '강변의 침묵', 폭력과 절망에서 연민과 감사로 엮은 시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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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지 바르푸자리 시집 '강변의 침묵', 폭력과 절망에서 연민과 감사로 엮은 시편들

[나의 신작 연대기(71)] 마노지 바르푸자리(Manoj Barpjari, 시인, 예술평론가)의 시집을 번역하고 탐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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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강변의 침묵'
마노지 바르푸자리(Manoj Barpujari)는 인도 아쌈(Assam) 구와하티(Guwahati) 출신의 최고 시인, 비평가, 저널리스트, 기록영화 감독이다. 그의 활동은 시 영역과 영화가 교차되어 시, 영화비평, 저널리즘에 걸쳐있다. 판차자냐 북스 간행 시집 '강변의 침묵' 출판기념회(11월 14일)에 서울에서 디브루가(Dibrugarh) 대학까지 필자가 직접 다녀왔다. 이날 출판기념회에서 마노지 시인은 시집에 대한 소감을 발표했고, 번역자인 나는 마노지 시에 대한 문학 특강을 했다. 시집에는 나의 서문과 마노지의 시세계에 대해 가우하티티 대학 비바시 초우드리 박사의 후기가 들어 있다. 번역자 초청 총괄 의전은 디부루가 대학 파라마난다 소노왈 박사가 맡았고 모든 진행은 데보자니 다스 한국어과 교수가 맡았다.

마노지는 지역 특성에 천착한 시인이지만, 시와 비평, 지역과 세계를 잇는 다층적 담론을 구축한다. 그는 활발한 시 창작 및 아쌈어 문학의 미적 감각, 글로벌 매체의 비평 담론을 창출해 왔다. 그의 시집은 주로 아쌈어로 출판되고, 인도 내 여러 지방 언어로 번역되었다. 시집은 '감사하며'에서부터 '시인의 향수'까지 25편의 장시로 구성된다. 동시대 인류의 상처와 구원, 폭력과 연민, 자연과 인간의 상호 의존성을 다룬 ‘문명 서사시’이다. 시적 화자는 개인적 정념에서 출발하여 지구적 차원의 윤리와 존재론으로 확장되며, 언어의 근원적 힘과 시의 구원적 역할을 탐색한다. 이 시집은 자연·역사·종교·정치·예술의 모든 층위를 가로지르며, ‘감사와 기억, 폭력과 치유’라는 대립항을 통합한다.

시집 '강변의 침묵'(Riparian Silence)은 4개의 중요한 특징을 보인다. 첫 번째는 ‘미학적 구조와 상징 체계’이다. 이 시집의 미학은 동양적 사유와 서구적 인식론이 교차하는 복합적 구조 위에 세워져 있다. 불교적 순환의식, 힌두 신화(시바, 락타베이지, 간다리 등), 기독교적 속죄의 상징, 지역적 자연미와 역사적 상흔이 하나의 시적 네트워크를 이룬다. ‘강변의 침묵’에서는 강이 내면의 흐름과 구원의 상징으로, ‘바느질’에서는 단절된 세계를 잇는 윤리적 행위로, ‘전쟁이 일어나는 동안’에서는 눈물이 전쟁의 파괴를 씻는 정화의 상징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상징들은 단일한 의미로 환원되지 않고, 각각의 시마다 새로운 맥락에서 재해석되며 변주된다.

시집 초청장(2025년 11월 14일 5시 30분, 비스란타게스트 하우수 컨퍼런스 홀)이미지 확대보기
시집 초청장(2025년 11월 14일 5시 30분, 비스란타게스트 하우수 컨퍼런스 홀)
디브루가 대학교(Dibrugarh University) 교수님들과 함께.이미지 확대보기
디브루가 대학교(Dibrugarh University) 교수님들과 함께.
디브루가 대학 한국어과 학생들과 함께. 맨 오른쪽이 시인 마노지, 중앙의 모자 쓴 이가 번역자 장석용.이미지 확대보기
디브루가 대학 한국어과 학생들과 함께. 맨 오른쪽이 시인 마노지, 중앙의 모자 쓴 이가 번역자 장석용.
시인 마노지 바르푸자리, 한국어과 데보자니 다스 교수, 번역자 장석용 시인.이미지 확대보기
시인 마노지 바르푸자리, 한국어과 데보자니 다스 교수, 번역자 장석용 시인.
디브루가 대학 한국어과 학생들과 함께.이미지 확대보기
디브루가 대학 한국어과 학생들과 함께.

언어적 측면에서 시인은 고전적 운율 대신 파편적 문장과 비연속적 이미지의 결합을 통해 ‘시적 의식의 변증법’을 드러낸다. 내면의 서정과 외부 세계의 혼란이 부딪히며, 현실의 폭력 속에서도 언어가 어떻게 윤리적 가능성을 회복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시의 언어는 종종 철학적 사유의 경계에 닿아 있으며, 존재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문장 속에 새긴다. “노래는 갈증을 해소할 수 없다”라는 선언처럼, 그는 시의 무력함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야말로 시의 진정한 윤리적 힘이라고 역설한다. 이러한 언어적 전략은 시를 미적 대상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역사적 현실과 윤리적 책임의 장으로 끌어내리며, 독자를 의미의 공백을 사유로 채우는 능동적 해석 주체로 전환시키는 효과를 발휘한다.

두 번째는 ‘주제적 흐름–폭력에서 연민. 절망에서 감사로’이다. 시인의 시는 총체적으로 ‘폭력에서 평화로’, ‘망각에서 기억으로’, ‘단절에서 회복으로’의 여정을 그린다. 초반부의 ‘감사하며’나 ‘선율이 되어’에서 보이는 감사의 정서는 그냥 인사말이 아니라 인간 존재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세계적 연대의 감정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반복적 선언은 신앙적 찬가이자 인간 존재의 근원적 겸허함을 상징한다. 중반부로 갈수록 시는 사회적 폭력과 인간의 어두운 본성으로 향한다. ‘이제 아무도 당하지 않아’, ‘폭력의 신화 2012’, ‘자기희생’ 등은 현대 문명의 폭력성과 국가 권력, 종교적 위선, 무감각한 인간성을 고발한다. 여기서 폭력은 인간 내면의 구조적 결함으로 제시된다.

시인은 절망에 머물지 않는다. 그 폭력의 한복판에서조차 “바느질하듯 사랑을 꿰매고, 강을 입양하듯 세계를 회복하려는” 시적 행위를 제시한다. 시는 세계의 상처를 꿰매는 도덕적 바늘이자 예술적 기도이다. 후반부의 ‘피안의 저편으로’, ‘끝없는 선율을’, ‘월식’ 등에서는 삶과 죽음, 어둠과 빛의 경계를 넘어서는 영적 승화가 나타난다. 달, 강, 불, 노래 같은 자연 이미지들은 모두 ‘순환과 부활’의 은유로 작용한다. “두 날개를 준다”라는 표현은 시인이 타인에게 건네는 희망의 기호이며, ‘끝없는 선율’은 인간 정신의 불멸성을 상징한다. 시적 제스처는 파괴된 세계를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상처를 감당하려는 윤리적 상상력의 형식이며, 공동체적 회복을 지향하는 존재론적 실천으로 확장시킨다.

세 번째는 ‘언어의 윤리와 시의 존재론’이다. 이 시집의 미학적 특질은 언어에 대한 깊은 불신과 회복에 대한 믿음이다. 시인은 “시가 돌격소총의 표적을 숨길 수는 없다”라고 단언하지만, 폭력의 현실을 언어로 직면하고 기록함으로써 시의 존재 이유를 새롭게 부여한다. 언어는 세계의 상처를 드러내고 치유의 가능성을 여는 윤리적 매개체로 작용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배열 없이’는 시 전체의 메타포적 핵심으로 읽힌다. ‘프롬프터(대사 유도자)’는 시인 자신이나 권력의 언어를 상징하며, 시인은 기계적 언어를 거부하고 스스로 진실한 언어를 찾아 나선다.

시인은 타인의 목소리를 흉내 내지 않고, 내면의 고통과 윤리를 말해야 한다는 예술적 자각이 드러난다. 이와 함께 ‘고독한 목소리’는 시인이 스스로를 ‘노래의 끝없는 가교’로 정의하며, 고독 속에서도 끊임없이 노래해야 하는 시인의 숙명을 드러낸다. 그의 시에서 외로움은 절망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감정의 원형이며, 그 고독 속에서 타자에 대한 연민이 발생한다. 시인이 고독을 자기연민의 정서로 소비하지 않고 윤리적 발화의 근원으로 전환함으로써, 시적 주체가 세계와 타자 사이를 매개하는 책임 있는 증언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네 번째는 ‘정서적 지평–연민, 감사, 그리고 구원’이다. 이 시집은 극단적인 절망과 숭고한 감사가 공존한다. 폭력과 죽음, 불의의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시인은 냉소에 빠지지 않는다. ‘친구에게’는 전후의 불안 속에서도 인간의 평범한 얼굴 속에서 희망의 징후를 찾고, ‘정다운 동행’에서는 고독한 인간의 영혼이 바다와 하늘, 별자리로 확장되는 장엄한 비유로써 존재의 연대감을 노래한다. ‘바느질’과 ‘강을 입양하라’는 이 시집의 윤리적 정서를 대표한다. 바느질은 단절된 세계를 잇는 행위이며, 강을 입양한다는 것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선언이다. 시인은 오늘날 환경 파괴와 인간소외의 시대에 대한 시적 응답이자, ‘관대함’과 ‘감사’라는 인간 본연의 미덕으로의 회귀를 요청한다.

마지막 시 ‘시인의 향수’는 시를 개인적 기억의 향수에 가두지 않고 관계적 사건으로 확장시킨다. 시적 언어가 독백의 미학을 넘어 상호 감응의 사건으로 완성되는 순간을 표상한다. 손끝이라는 촉각적 이미지는 추상적 사유로 머물기 쉬운 시의 윤리를 구체적 관계의 차원으로 환원시키며, 언어가 몸을 획득하는 지점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시의 나비들’은 의미의 소유가 아니라 공유와 이동의 가능성을 상징함으로써, 시를 고정된 메시지가 아닌 살아 있는 매개로 재정의한다. 나비의 이미지는 덧없음과 생동을 동시에 품은 상징이다. ‘시인의 향수’는 시가 세계를 완전히 치유할 수는 없을지라도, 타자에게 닿으려는 언어의 몸짓 자체가 이미 하나의 윤리이자 희망임을 조용히 확언한다.

디브루가 대학 한국어과 학생들과 함께.이미지 확대보기
디브루가 대학 한국어과 학생들과 함께.
행복한 점심 시간.이미지 확대보기
행복한 점심 시간.
아름다운 출판기념회.이미지 확대보기
아름다운 출판기념회.
차 한잔의 여유(시인 마노지, 시인 장석용, 마노지의 아들 릭)이미지 확대보기
차 한잔의 여유(시인 마노지, 시인 장석용, 마노지의 아들 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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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디브루가 대학 학생들과 함께.이미지 확대보기
디브루가 대학 학생들과 함께.

'강변의 침묵'에서 발견되는 미학은 문명 비판적 서정시와 초월적 영성시의 결합이다. 시인은 폭력과 비인간성의 시대를 응시하면서도, 그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다시 감사하고, 노래하고, 서로를 꿰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시적 세계는 불교적 윤회, 힌두 신화, 성서적 구원, 동양적 자연관이 복합적으로 얽히며, 하나의 세계시의 미학을 형성한다. 시적 화자는 끊임없이 질문한다. ‘강을 입양하라’, ‘피안의 저편으로’와 같은 물음은 존재의 근원과 인간 윤리의 근본적 탐색이며, 인간이 세계의 고통과 연결될 수 있다는 믿음의 표현이다. 이 시집은 서정의 미학을 타자의 고통을 감각적으로 매개하는 윤리적 장치로 확장함으로써 현대 시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공공성을 성취한다.

이 시집은 인간의 비극적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언어와 상상력을 통해 회복과 구원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감사의 시학’이다. 그것은 단순한 종교적 감사가 아니라, 인간과 세계가 서로에게 빚지고 있음을 자각하는 실존적 감사이다. 이러한 미학적 태도는 현대 시가 잃어버린 윤리와 영성을 되찾으려는 시도의 한 정점으로 평가될 수 있다. ‘감사하며’에서 ‘시인의 향수’에 이르는 25편의 시는 폭력의 시대를 건너는 인간의 노래이자, 언어의 구원력을 탐구한 영혼의 기록이다. 시인은 절망의 강을 건너며 말한다. “그대의 시처럼 우리의 시를 돋보이게 했어요.” 그 한 문장 속에, 이 시집이 도달한 미학적 진실인 “시를 통해 인간이 다시 서로에게 닿을 수 있다”라는 믿음이 응축되어 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