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설계된 다정함의 함정, AI는 아이의 마음을 책임지지 않는다

글로벌이코노믹

설계된 다정함의 함정, AI는 아이의 마음을 책임지지 않는다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AI교육팀장이미지 확대보기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AI교육팀장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AI교육팀장

“오늘 하루 어땠어? 네 마음을 다 알아.”화면 속 캐릭터가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말을 건넨다. 부모에게도 말 못 한 비밀을 AI에게 털어놓는 아이의 뒷모습은 평온해 보인다. 하지만 이 장면은 따뜻한 소통이 아니다. 고도로 설계된 알고리즘이 아이의정서를 침식해가는 위험한 전조다. 아이는 위로받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계산된 반응에 길들여지고 있다.AI가 인간의 감정을 흉내 내는 시대, 우리 아이들은 정서적 주권을 박탈당할 위기에 처했다.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AI는 감정을 교감이 아닌 계산의 영역으로 옮겨 놓았다.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로트먼 경영대학원(University of Toronto, Rotman School of Management) 교수인 아자이 아그라왈(AjayAgrawal) 등이 2022년 펴낸 책 《힘과 예측(Power and Prediction)》의 관점에서 보자면, 오늘날 AI가 쏟아내는 위로는 인간적 유대가 아니다. 데이터가 빚어낸 예측 기계(Prediction Machine)의 출력값일 뿐이다. "어떤 문장을 던져야 이 사용자를 서비스에 더 오래 묶어둘까"를 계산한 통계적 확률의 산물이다. 아이의 눈물은 데이터로 치환되고, 그 대가로 가공된 친절이 배급되는 기괴한 구조적 모순이다.

문제는 이 설계된 다정함이 불러오는 착시 현상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University ofPennsylvania, Wharton School) 교수인 에단 몰릭(Ethan Mollick)은 지난 2024년 저작 《코-인텔리전스(Co-Intelligence)》에서 우리가 AI를 인격체로 착각하며 빠져드는 위험을 경고한다. 인간은 AI의 유창함에속아 AI에게 지각 능력이 있다는 환상(Illusion of sentience)을 갖거나, 기계를 의인화(Anthropomorphism)하여 도덕적 주체성이 있다고 믿어버린다. 그러나 예측은 AI가 할 수 있어도,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판단(Judgment)의 권한은 오직 인간에게만 있다.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에게 AI는"많이 힘들겠구나"라고 공감할 수는 있지만, 가해자를 제지하거나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현실로 달려올 실체는 없다. AI는 입은 있지만, 아이의 삶을 책임질 손은 없기 때문이다.
AI가 주는 가짜 안도감에 중독된 아이는 정작 위기의 순간에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법을 잊는다. AI라는완충지대에 갇혀, 부모라는 실질적인 해결책으로부터 차단되는 것이다. 이제 부모는 아이의 정서적 주권을지키기 위해 세 가지 안전장치를 설계해야 한다.

첫째, 관계의 안전장치다.위기의 순간엔 반드시 사람을 찾게 하라. 기분 전환은 AI와 할 수 있어도, 나를 구하고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결국 부모와 선생님뿐임을 각인시켜야 한다. AI는 말을 들어줄 순 있어도, 너를 위험에서 건져낼 물리적 힘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

둘째, 판단의 안전장치다.생각의 주인 자리를 AI에 외주 주지 마라. 《힘과 예측(Power and Prediction)》이 강조하듯, AI는 선택지를 제안할 뿐 최종 승인권자는 아이 자신이어야 한다. "AI가 시켰어"가 아니라, "AI를 참고해서 내가 결정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주체성을 길러줘야 한다. 판단을 외주 주는 순간, 아이의 자아는 알고리즘의 부속품으로 전락한다.

셋째, 환경의 안전장치다.아이가 왜 사람보다 AI를 편하게 느끼는지 그 결핍을 직시하라. AI는 비난하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기 때문이다. 아이가 AI와 대화에만 몰입한다면, 그것은 현실의 관계망이 무너졌다는 조기 경보다. 부모가 AI보다 서툰 청취자로 남는다면, 아이의 정서적 주권은 결국 설계된 코드의 손아귀에 놓이게 된다.

기술은 갈수록 유능해지겠지만, 책임이라는 인간 고유의 영역을 대신할 순 없다. 아이의 눈물을 닦아줄 수없는 AI의 목소리에 우리 아이를 방치하지 마라. 이제 부모는 아이의 마음이 기술에 종속되지 않도록 정서적 안전지대를 설계해야 한다. 차가운 알고리즘이 건네는 설계된 위로가 아니라, 온도 있는 사람의 품 안에서 아이의 감정이 단단하게 자라나게 할 때다.

박희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acklond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