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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이 짠 진실의 진실이란? 아이에게 '경로 의심법' 가르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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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이 짠 진실의 진실이란? 아이에게 '경로 의심법' 가르치기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AI교육팀장이미지 확대보기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AI교육팀장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AI교육팀장

내 아이가 매일 마주하는 화면이 사실은 조작된 경로라면 어떨까? 지난 2024년 1월, 세계적인 팝스타 테일러스위프트(Taylor Swift)의 정교한 딥페이크 이미지가 SNS를 점령한 사건은 단순한 연예계 가십이 아니었다. 짧은 시간 동안 수백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알고리즘의 추천 기능을 타고 번진 이 사태는,플랫폼이 특정 검색어를 통째로 차단하고서야 겨우 멈췄다.

이미 2년도 더 지난 이 사건을 지금 다시 소환하는 이유는, 여전히 똑같은 일이 벌어져도 우리에게는 이를 막을 뚜렷하고 완벽한 예방책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어온 진실의 바탕은 이토록 취약하다.이제 정보의 가치는 내용의 진실성이 아니라, 정보가 인공지능(이하 AI)의 선택을 받아 얼마나 효율적으로배달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노출의 확률이 의미의 무게를 대체해 버린 것이다.

이처럼 AI 기술이 주도하는 환경에서 진실은 더 이상 우리 스스로 발견하는 대상만이 아니다. 시스템이 정교하게 설계해 놓은 유통 경로를 통해 우리에게 주입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기서 말하는 경로란 정보가생성되고 선택되며, 노출과 수정을 거치기까지의 모든 과정의 흔적을 의미한다. AI가 짜준 매끄러운 진실뒤에 숨겨진 이 조작된 경로를 읽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기술이 보여주는 세상만을 실재라고 믿게 될 위험이 크다.
전 구글 차이나 사장 리카이푸(Kai-Fu Lee)와 SF 소설가 천추판(Chen Qiufan)은 저서 《AI 2041》에서이러한 기술적 은폐가 가져올 미래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책 속의 시나리오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섬뜩한 진실 하나를 깨닫게 된다. AI가 우리의 무의식을 분석해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정보만 골라 맞춤형으로 보여줄 때, 그것은 친절한 서비스를 넘어 우리의 사유를 가두는 울타리가 된다는 사실이다. 알고리즘이쳐 놓은 이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울타리 너머에 다른 목소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잊게 된다. 결국 우리는 자신이 선택한 정보만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게 되는 일종의 정보 감옥에 갇힌 채, 외부와 단절된 고립된 인지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인지적 고립은 단순히 성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채 자리 잡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더욱 치명적인 위협으로 다가온다. 화면 너머에서 작동하는 설계도를 읽지 못한다면, 우리 아이들이매일 접하는 뉴스나 영상은 결코 중립적인 정보의 집합체가 될 수 없다. 그것은 공학적으로 철저하게 계산된 결과물이며, 아이들의 관심사를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려는 의도적 환경일 뿐이다. 가짜 콘텐츠 그 자체보다 경계해야 할 것은, 시스템이 직조한 경로를 유일한 진실의 통로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다. 이에 우리는 아이에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경로 의심법’을 가르쳐야 한다.

첫째, 정보의 '배달 목적'을 묻는 훈련이다. 아이와 함께 유튜브를 볼 때 "이 영상은 왜 하필 지금 우리에게 나타났을까?"라고 가볍게 물어보자. 단순히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앞서 검색했던 단어나 시청기록을 통해 AI가 '좋아할 만한 것'을 예측해 배달한 결과임을 인지시켜야 한다. 정보가 나에게 도달한 이유를 파악하는 순간, 아이는 수동적인 시청자에서 알고리즘을 관찰하는 주체로 변모한다.

둘째, '보이지 않는 조각'을 상상해 보게 하는 것이다. AI가 요약해 준 뉴스나 추천 영상을 볼 때 "이 이야기에 반대하는 사람은 뭐라고 말할까?" 혹은 "이 영상 다음에 나올 법한데 나오지 않은 내용은 뭘까?"라고 질문해 보자. 추천 시스템이 나의 편향을 강화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누락시킨 반대편의 목소리를 스스로찾아보게 하는 과정이다. 추천되지 않은 빈틈을 메울 때, 아이는 비로소 알고리즘이 쳐 놓은 정보 감옥의창살을 발견할 수 있다.

셋째, 정보의 '나이와 흔적'을 추적하는 놀이다. 하나의 뉴스가 시간이 흐르며 어떻게 수정되고, 댓글이나다른 매체를 통해 어떻게 반박되는지 함께 살펴보자. 정해진 결론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정보가 만들어지고 변해가는 '생애 주기'를 지켜보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공부가 된다. 특히 특정 플랫폼에서 오류가 발생했을 때 기업이 이를 어떻게 수습하고 감추려 하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기술 이면의 통치 구조를 감각적으로 체득하게 된다.
결국 이 시대의 문해력은 믿지 않을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는 지점에서 완성된다. 이제 교육은 무엇이 맞는가를 가르치는 것에 앞서, 왜 이것이 나에게 도착했는가를 묻는 훈련에서 시작해야 한다. AI가 쳐놓은 인지적 울타리를 부수고, 매끄러운 화면 뒤에 숨겨진 의도를 읽어내는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자. 진실은 정보의 내용이 아니라, 그 정보를 나르는 경로를 향해 끈질기게 질문을 던지는 아이의 주체적인 태도 속에 있기 때문이다.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AI교육팀장


박희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acklond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