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인공지능(이하 AI)은 모두에게 답을 내놓는다. 그 답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아이는 극소수다. 어떤 아이는 AI가 뱉어낸 첫 문장에 안주하며 사고를 멈추는 반면, 어떤 아이는 답변의 허점을 찾아내 후속 질문을 던지며 지식의 핵심으로 파고든다. 바로 이 지점에서 AI 시대의 새로운 불평등이 시작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교육 격차의 성패는 지식의 소유 여부에 달려 있었다. 소위 '일타' 강사의 강의를 수강하거나 특정 지역의 입시 정보를 선점하는 행위가 학업 성취를 가르는 결정적 잣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AI와 에듀테크 플랫폼이 보편화한 지금 지식의 장벽은 현저히 낮아졌다. 기술이 학습 콘텐츠 양의 평준화를 이뤄내며 누구나 수준 높은 교육 자료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결과다.
콘텐츠의 보편화가 곧 교육 불평등의 해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보가 흔해질수록 이를 다루는 개인의 역량에 따라 격차는 이전보다 더 미묘하고 견고한 방식으로 벌어진다. 과거의 격차가 '콘텐츠를 가졌느냐'의 문제였다면, AI 시대의 격차는 주어진 '정보를 어떻게 소화하느냐'에서 비롯되는 까닭이다. 누구나 정답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AI 답변의 빈틈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으로 재구성하는 인지적 인내심이다. 필자는 이를 '문해 지구력(文解 持久力 )이라 명명하고자 한다. 지식의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정보를 끝까지 읽어내고 그 이면의 의도를 파악하는 비판적 뒷심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전통의 문해력, 즉 리터러시(Literacy)의 개념은 AI 시대에 발맞춰 새롭게 정의돼야 한다. 과거의 문해력이 활자화 한 정보를 정확히 수용하고 해석하는 수준이었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AI 리터러시는 기계가 생성한 확률적 결과물에 인간의 맥락을 투사해 '해석의 주도권'을 탈환하는 일에 가깝다. AI의 답변은 엄밀한 진실이 아니라 방대한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조합한 결과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한 AI 리터러시는 단순히 지시어를 잘 입력하는 기술을 넘어, 알고리즘이 가린 이면의 맥락을 추론하고 기계가 만든 매끄러운 문장 속에서 논리의 균열을 찾아내는 고도의 비판적 사유 활동을 포괄한다. 결국 이러한 리터러시 역량을 실질적으로 증명해내는 힘이 바로 필자가 강조하는 문해 지구력인 셈이다.
AI가 정제된 지식을 저렴하게 보급할수록, 역설적으로 그 정보를 검증하고 사유할 수 있는 문해 지구력은 일부 계층만이 누리는 비싼 자산이 되어간다. 가정 환경에 따라 우리 아이가 알고리즘의 안락한 수용자로 남을지, 혹은 기술을 통제하는 주체로 거듭날 지가 결정된다는 사실은 AI 시대의 교육 불평등이 지식의 격차를 넘어 사유의 양극화라는 더 깊은 구조적 결함으로 고착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공교육은 이제 단순한 지식 전달의 장을 넘어, 이러한 불평등의 고리를 끊어내는 최후의 공적 안전망으로거듭나야 한다. 가정의 자원 차이가 아이들의 문해 지구력을 결정하도록 방치하지 않기 위해 정책적 맥락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때다. 질문 설계 역량을 정교하게 가늠하는 평가 시스템으로의 전환, 그리고 아이들이 AI와 논쟁하며 사유의 논리를 정립할 수 있는 공공 플랫폼 구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환경적 제약 없이 누구나 사유의 훈련 기회를 보장 받을 수 있는 공적 인프라에 대한 논의가 시급한 시점이다.
정답이 도처에 널린 시대일수록, 사고의 깊이는 정보를 맹신하지 않고 끝까지 성찰하며 탐색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우리 부모들은 고성능 AI 학습 도구를 구비해 주는 것만으로 책임을 다했다는 안도감을 경계해야 한다. 기술이 주는 편리함이 아이의 주체적인 사유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음을 인지할 때, 비로소 교육기회의 평준화라는 외양 뒤에 숨은 문해력 격차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다. 교육의 본령은 매끄러운 답변을 삼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답변에 거칠게 질문할 줄 아는 아이의 끈기를 끝까지 지켜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박희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acklondon@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