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개봉 15주년 만에 한국에서 다시 선보이는 '피나'는 “봄의 원초적 에너지와 생명력을 폭발시키는 '봄의 제전',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을 간결하게 그려낸 '카페 뮐러', 남녀 관계 속 욕망과 소외를 다룬 '콘탁트호프', 비바람 속 거친 춤사위로 사랑을 갈구하는 '보름달'” 등 피나 바우쉬의 혼이 깃든 4편의 걸작들로 감독의 영상적 화첩에 ‘피나 畵’로 각인된다. '피나'에 사랑과 자유, 슬픔과 환희라는 인간의 원초적 감정들이 감각적으로 담긴다.
영화 '피나'에는 4편의 작품과 피나의 작업 과정을 담은 아카이브 영상, 앙상블 단원들의 짧은 퍼포먼스가 담긴다. 피나의 작업 방식은 영화에서도 유효했다. 무용수들은 각자의 기억 속의 피나를 독연(獨演)했다. 이 장면들은 입체적이고 다층적인 울림을 만들어낸 부퍼탈의 다양한 공간에서 촬영되었다. “춤추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길을 잃는다.”피나는 여전히 작품 속에 살아 있다.
빔 벤더스(Wim Wenders)가 피나 바우쉬(Pina Bausch) 사후에 헌정한 '피나'(Pina, 2011, 103분)는 ‘몸과 공간의 미학’을 조망한다. ‘깊이’의 감각을 구현하는 3D 기술을 이용하여 무용수들의 몸이 전경과 후경을 오가며 이동할 때, 관객은 실제 무대 위에 있는 듯한 공간적 체험을 한다. 공간 속에서의 신체가 영화적으로 해석된다. 공간은 감정의 물질이 되며, 물과 흙, 바람 같은 요소들은 인간 내면의 상태를 넘어 작동하는 방식 자체로 기능한다.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피나'는 ‘춤을 찍은 영화’가 아니라, 사라진 예술가를 둘러싼 감각의 잔향을 공간 속에 재배치하는 시적 장치에 가깝다. 빔 벤더스는 카메라를 기록의 도구로 두지 않고 3D라는 입체적 심연을 통해 몸과 몸 사이, 몸과 세계 사이의 보이지 않던 간극을 물리적 거리로 환원시키며, 무용을 ‘보는 대상’에서 ‘들어가는 경험’으로 변형한다. 이때 화면은 단순 프레임이 아닌 감각이 침투하는 공간이 되고,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시간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으로 재탄생한다.
영화는 서사를 거부한다. 파편화된 춤의 순간들과 침묵 속 얼굴들을 병치하며, 의미를 설명하는 대신 감정이 머무는 시간을 길게 늘인다. 이러한 편집은 또 다른 안무가 되어, 무대적 움직임을 영화적 리듬으로 재구성한다. 춤은 편집과 시선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는 흐름이 된다. 공장, 숲, 철로 위로 확장된 무대는 현실과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일상의 질감 속에 침투한 낯선 몸짓을 통해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만든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중심에는 보이지 않는 결핍이 놓여 있다. 피나 바우쉬는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그녀의 부재는 오히려 모든 장면을 지배하는 중력처럼 작용한다. 무용수들의 몸은 기억의 매개가 되고, 반복되는 동작들은 애도의 형식으로 변주된다. 이때 춤은 표현이 아니라 잔존이며, 안무는 창작이 아니라 상실을 견디는 방식이 된다. 영화는 한 인물을 설명하지 않고, 그 인물이 남긴 감각의 구조를 체험하게 함으로써 전기영화의 문법을 해체한다.
이 작품에서 3D는 ‘깊이’의 기술이 아니라 ‘관계’의 기술이다. 관객은 더 이상 바깥에서 바라보지 않고, 몸들 사이의 거리 속에 놓인다. 가까움과 멂, 접촉과 어긋남이 물리적 감각으로 전달될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의 감정은 끊임없이 미끄러지고 흔들리며 발생하는 하나의 상태임을 깨닫는다. 물 위에서 균형을 잃는 몸들은 다가갈수록 더 불안정해지는 사랑과 관계의 본질을 은유한다. 영화는 조화가 아닌 ‘함께 흔들리는 상태’로서의 사랑을 제시한다.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피나'는 질문이 된다. 우리는 무엇에 의해 움직이고, 우리의 몸은 말하지 못한 채 얼마나 많은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가. 감독은 언어를 포기하고 몸을 선택함으로써 의미의 전달 대신 의미가 발생하는 순간을 붙잡는다. 이 영화는 어떤 답도 제시하지 않는다. 관객을 감각적 심연 속에 놓아두며, 우리가 잃어버렸던 원초적 감각—타자와의 거리, 세계와의 접촉, 살아 있다는 떨림—을 다시 체험하게 만든다. 춤은 스스로를 견디기 위해 선택한 가장 근원적인 언어이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제공=에무 아트스페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