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AA 위성자료와 국립수산과학원 관측이 포착한 해양열파
관측 이래 가장 뜨거웠던 한국 바다의 경고
관측 이래 가장 뜨거웠던 한국 바다의 경고
이미지 확대보기수천㎞ 상공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던 인공위성은 한반도 주변 바다에서 이상 신호를 포착하고 있었다. 제주 남쪽 바다에서 남해와 동해로 이어지는 해역 곳곳에 평년보다 높은 수온대가 나타났다.
바다는 매년 조금씩 따뜻해지고 있었지만 최근의 변화는 과거와 달랐다. 수온이 오르는 속도가 빨라졌고 고수온이 지속되는 기간도 길어졌다.
한여름 며칠 동안 나타났다 사라지던 이상 고수온은 이제 계절 전체를 흔드는 현상으로 바뀌고 있다. 명태는 러시아로 향했고 오징어는 홋카이도와 사할린 방향으로 이동했다. 꽁치는 북태평양 북부에서 더 자주 발견되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과 미국 해양대기청(NOAA), 국제 연구기관 자료를 종합하면 한반도 해역은 세계 평균보다 빠르게 뜨거워지고 있다. 최근에는 해양열파까지 반복되면서 바다 생태계 전체를 흔드는 압력이 커지고 있다.
2부에서 물고기들의 이동 경로를 추적했다면 이번 3부에서는 물고기들을 움직인 힘을 추적한다.
2024년, 바다는 관측 이래 가장 뜨거웠다
지난해 여름 남해안 곳곳에서는 고수온 특보가 장기간 이어졌다. 양식장에서는 양식어류 폐사가 발생했고 어민들은 평년보다 길어진 폭염과 뜨거워진 바다를 동시에 체감했다.
이미지 확대보기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2024년 한국 해역 연평균 표층수온은 18.74℃를 기록했다. 관측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동해와 남해, 서해 모두 기존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특히 동해는 평년보다 1℃ 이상 높은 수온 상태가 장기간 이어졌다.
문제는 최고 수온 자체가 아니다. 고수온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느냐다.
바다는 하루 이틀 뜨거워졌다고 곧바로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높은 수온이 수주에서 수개월 동안 이어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해조류와 플랑크톤, 어린 물고기, 양식생물, 회유성 어종이 동시에 영향을 받는다.
국립수산과학원이 1968년부터 수행해 온 정선해양관측(1968~2024년, 총 57년간) 자료를 보면 한국 주변 해역의 연평균 표층수온은 지난 수십 년 동안 1.4℃ 이상 상승했다. 같은 기간 전 지구 평균 해양 표층수온 상승 폭보다 훨씬 빠른 속도다.
해역별 차이도 뚜렷하다. 동해는 상승 폭이 가장 크다. 동해는 대한해협을 통해 유입되는 쓰시마난류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따뜻한 해수가 동해로 더 많이 들어오고 대기 온난화가 겹치면 해수면 온도는 더 빠르게 오른다.
2024년의 기록은 갑자기 나타난 예외적 현상이 아니다. 수십 년 동안 누적된 온난화 흐름 위에서 나타난 결과에 가깝다.
한국 바다는 이미 과거보다 훨씬 따뜻한 바다가 됐다.
바다에도 폭염이 찾아왔다
육지에 폭염이 있듯 바다에도 폭염이 있다.
평년보다 훨씬 뜨거운 바닷물이 수일에서 수개월 동안 넓은 해역에 머무르는 현상을 해양열파라고 부른다.
사람에게 폭염이 건강을 위협하듯 해양열파는 바다 생태계를 흔든다. 플랑크톤 군집이 바뀌고 해조류가 약해지며 어린 물고기의 먹이 환경이 달라진다. 양식장에서는 고수온 스트레스가 커지고 일부 어종은 더 적합한 수온을 찾아 이동한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과 국제 해양학계는 해양열파를 기후변화 시대의 대표적인 해양 재난으로 다루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1982년 이후 해양열파 발생 빈도가 두 배 이상 증가했고 강도와 지속 기간도 함께 커졌다고 평가한다. 바다는 지구가 흡수한 추가 열에너지의 90% 이상을 품어왔다. 대기가 뜨거워진 것보다 더 거대한 열이 바다에 축적된 셈이다.
북태평양에서 발생한 초대형 해양열파 '더 블롭(The Blob)'은 해양열파가 어떤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2010년대 북동태평양에서 장기간 이어진 고수온은 먹이망을 흔들었고 바닷새와 해양포유류, 어류 자원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해양열파는 특정 어종에만 영향을 주는 현상이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는 대규모 산호 백화 현상도 보고되고 있다. 부산대학교 기후과학연구소 이준이 교수는 "산호 백화가 진행되면 산호와 조류의 공생관계가 파괴되고, 결국 산호를 중심으로 형성된 해양 생태계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지 확대보기한국 해역에서 벌어지는 변화도 같은 흐름 안에 있다.
동해와 남해, 제주 해역의 고수온은 더 이상 여름철 일시 현상으로만 보기 어렵다. 고수온이 반복되고 지속 기간이 길어지면서 바다는 새로운 평균값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
해양열파는 바다의 일시적 열병이 아니다.
바다가 장기간 축적한 열이 생태계 위로 드러나는 현상이다.
물고기보다 먼저 플랑크톤이 움직였다
명태와 오징어, 꽁치가 이동하기 전 먼저 움직인 것은 플랑크톤이었다.
해양 먹이망은 플랑크톤에서 시작된다. 과학자들이 플랑크톤을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플랑크톤은 바다 생태계의 체온계이자 먹이망의 출발점이다.
식물플랑크톤이 태양 에너지를 이용해 유기물을 만들고 동물플랑크톤이 이를 먹는다. 작은 물고기는 동물플랑크톤을 먹고 자라며 큰 물고기는 다시 작은 물고기를 먹는다.
바다 생태계의 가장 아래층이 흔들리면 변화는 결국 어류와 포식자까지 이어진다.
이미지 확대보기고수온이 지속되면 플랑크톤 군집 구성이 달라진다. 냉수성 플랑크톤은 줄고 난류성 플랑크톤 비중은 커진다. 플랑크톤의 종류와 크기, 출현 시기가 달라지면 어린 물고기가 성장하는 환경도 변한다.
어린 물고기에게 먹이 시기는 생존과 직결된다. 알에서 깨어난 자어가 먹이를 필요로 하는 시기에 적합한 플랑크톤이 줄어들면 생존율은 낮아진다.
명태 감소를 이해할 때도 이 지점이 중요하다. 성체는 움직일 수 있지만 알과 자어는 움직이지 못한다. 산란장 수온이 맞지 않고 초기 먹이 환경까지 흔들리면 개체군 회복은 어렵다.
오징어도 마찬가지다. 오징어는 수명이 짧고 환경 변화에 민감하다. 산란장 수온과 어린 개체의 성장 해역이 조금만 바뀌어도 자원량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동해안 어민들이 체감한 변화는 위판장에 나타났지만 변화의 출발점은 바다의 가장 작은 생물들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물고기의 이동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였다. 먹이망의 바닥에서부터 바다가 바뀌고 있었다.
산소가 줄어드는 바다
수온 상승은 또 다른 문제를 만든다.
산소 감소다. 차가운 물은 산소를 많이 품을 수 있지만 따뜻한 물은 그렇지 못하다. 해수온이 상승하면 바닷물 속에 녹아 있는 산소량은 줄어든다.
실제로 여름철 남해안에서는 저층의 용존산소 농도가 3㎎/L 이하로 떨어지는 빈산소수괴(산소부족 물덩어리)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산소가 부족해지면 어패류의 호흡이 어려워지고 양식생물 피해도 커질 수 있다.
이미지 확대보기IPCC는 해양 저산소화가 표층부터 수심 1000m까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수온 상승은 바다의 산소 저장 능력을 떨어뜨리고, 표층과 저층의 혼합을 약하게 만들어 깊은 바다로 산소가 공급되는 과정에도 영향을 준다.
어류 입장에서는 먹이는 달라지고 대사 부담은 커지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따뜻한 물에서는 생물의 대사 활동이 빨라진다.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산소는 줄어든다. 성장과 번식에 필요한 조건이 동시에 나빠질 수 있다.
저층수의 산소 부족은 갑각류와 패류, 저서성 어류에도 영향을 준다. 바닥에 붙어 살거나 이동 범위가 좁은 생물일수록 저산소 환경에 취약하다.
양식장도 예외가 아니다. 여름철 고수온이 장기간 이어지면 양식어류의 스트레스가 커지고 질병 발생 가능성도 높아진다. 전복과 넙치, 우럭 등 양식생물은 고수온과 저산소가 겹칠 때 더 큰 피해를 입는다.
해양열파는 수온만 올리는 현상이 아니다. 바닷속 산소와 먹이, 생물의 생존 조건을 동시에 바꾸는 복합적 충격이다.
명태를 떠나게 만든 힘
2부에서 추적한 명태와 오징어, 꽁치의 이동 경로는 서로 달랐다. 그러나 방향은 같았다. 모두 더 차갑고 안정적인 환경을 향하고 있었다.
명태는 대표적인 냉수성 어종이다. 성장과 산란에 적합한 수온 범위는 대체로 2~10℃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동해는 명태가 살아가기 좋은 바다였다. 겨울철 차가운 수온과 산란 환경, 먹이 조건이 맞물리며 대규모 어장이 형성됐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이후 동해 연안 수온이 상승하면서 명태 산란장은 점차 기능을 잃어갔다.
성체는 수온을 따라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알과 자어는 그렇지 못하다. 산란장 환경이 무너지면 새 세대가 자라날 기반도 함께 약해진다.
국내에서는 명태 복원 사업이 추진됐고 어린 명태 치어 방류도 이어졌다. 하지만 자원 회복은 기대만큼 쉽지 않았다. 물고기를 다시 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명태가 살아갈 바다 환경이 함께 회복돼야 한다.
이미지 확대보기오징어와 꽁치도 비슷한 압력을 받고 있다.
수온 경계선이 이동하면 어장도 이동한다. 오징어 어장은 동해 중남부에서 일본 북부와 홋카이도, 러시아 사할린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꽁치는 북태평양 북부 해역에서 더 자주 관찰되고 있다.
반대로 방어와 삼치, 참다랑어는 한반도 해역에서 더 자주 등장하고 있다.
냉수성 어종은 물러나고 난류성 어종은 올라오고 있다.
지금 한반도 바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는 특정 어종의 흥망성쇠가 아니다. 수온과 해류, 산소와 먹이망이 동시에 움직이면서 바다의 지도가 다시 그려지고 있는 과정이다.
물고기들을 움직인 힘은 어선이 아니었다. 바다의 체온이었다.
바다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까
국립수산과학원과 국제 연구기관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전망은 신중하다.
일시적인 냉각 현상은 나타날 수 있다. 특정 해에는 평년보다 낮은 수온이 관측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온난화 추세 자체가 쉽게 되돌아갈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해양열파도 앞으로 더 자주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IPCC는 온실가스 배출이 계속될 경우 해양열파의 빈도와 강도, 지속 기간이 모두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과거 명태 어장이 형성됐던 환경이 자연적으로 회복될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오징어 어장 역시 과거처럼 동해 중남부에 안정적으로 머무를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바다가 바뀌면 생태계도 바뀐다. 생태계가 바뀌면 어장도 바뀐다. 어장이 바뀌면 어촌과 식탁도 바뀐다.
위성은 이미 변화를 기록하고 있다.
조사선은 바다의 수온과 산소, 플랑크톤을 측정하고 있다. 어민들은 위판장에서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장기 관측 자료 속에서 같은 방향의 신호를 읽고 있다.
문제는 물고기가 떠났다는 사실이 아니다. 바다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제주에서 시작된 변화는 남해를 지나 동해로 확산되고 있다. 수온이 오르고 해양열파가 반복되면서 남방계 생물의 출현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한반도 해역의 아열대화는 지금 어디까지 진행됐을까.
다음 회에서는 제주에서 독도까지 번지고 있는 아열대 생태계의 확산을 추적한다.
박근호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otkay8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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