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아기가 거실 한쪽을 가리키며 뭐라고 옹알거린다. 옆에 놓인 AI 스피커(애플 아이폰의 '시리(Siri)'나 아마존의 스마트 스피커 '알렉사(Alexa)'처럼 말을 걸면 대답해주는 AI 비서)에게 노래를 틀어 달라고 조르는 중이다. 스피커는 반응이 없다. 아이는 다시, 조금 더 크게 옹알거린다. 여전히 침묵. 결국 엄마가 대신 말해준다. "이 노래 틀어줘." 스피커가 곧바로 응답한다. 이 장면은 그 집에서 수십 번, 수백 번 되풀이된다. 아이는 그 반복 속에서 하나를 배운다. 세상에는 내 말을 알아듣는 존재와 아무리 애써도 알아듣지 못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이 흔한 장면의 이면에는 정작 아무도 제대로 물어본 적 없는 질문 하나가 숨어 있다. 두세 살 아이의 말을 AI는 실제로 얼마나 알아들을까.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심리학과 연구팀이 2025년 이 질문에 답을 내놨다. 연구에서는 같은 단어들을 아이가 두 살, 세 살, 다섯 살에 걸쳐 말한 녹음과, 같은 단어를 아이 엄마들이 말한 녹음을 함께 만들었다. 그리고 그 녹음들을 AI 스피커와 성인 청자들에게 각각 들려주며 얼마나 정확히 알아듣는지 비교했다.
이 결과 앞에서 두 번째 질문이 남는다. 설령 AI가 언젠가 아이의 말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알아듣게 된다 해도 그것만으로 아이의 언어 발달에 충분한 도움이 될까. 정확히 알아듣는 것과 아이의 언어가 자라도록 돕는 것은 다른 문제일 수 있다.
2013년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심리학과 연구팀이 내놓은 답은 부정에 가깝다. 연구팀은 여러 가정에 협조를 구해 아이 옷 주머니에 작은 녹음기를 넣고 하루 동안 집 안에서 오간 모든 말소리를 녹음했다. 부모가 아이에게 밥을 먹이며 건넨 말,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온 말, 부모끼리 나눈 대화까지 하루 치 소리가 고스란히 담겼다. 연구팀은 이 방대한 녹음을 하나하나 들으며 말을 두 종류로 나눴다. 아이의 눈을 보면서 아이를 향해 직접 건넨 말과 아이가 근처에서 그저 우연히 들은 말이었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텔레비전 소리든 어른들끼리의 대화든, 아이가 그저 옆에서 흘려들은 말은 아무리 양이 많아도 이후 아이의 어휘력과 별 상관이 없었다. 반면 부모가 아이를 바라보며 직접 건넨 말은 달랐다. 그 말을 많이 들은 아이일수록 몇 달 뒤 훨씬 더 많은 단어를 알고 있었다. 심지어 새로운 단어를 들었을 때 그 뜻을 알아채는 속도까지 더 빨랐다. 결국 아이의 언어 실력을 키우는 것은 하루 종일 얼마나 많은 말소리에 둘러싸여 있느냐가 아니라 그중 얼마만큼이 '너에게 하는 말이야'라는 신호를 담고 있었느냐였다.
두 연구를 겹쳐 읽으면 하나의 그림이 완성된다. AI 스피커는 우선 아이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다. 설령 알아듣는 수준이 더 나아진다 해도 그것만으로 아이에게 필요한 상호작용이 충분히 보장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원하는 노래를 정확히 틀어주는 것과, 아이의 웅얼거림에 반응해 "지금 뭐라고 했어? 다시 말해줄래?"라고 되물어주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대답이다. 아이의 말을 자라게 하는 쪽은 후자다. 더 마음에 걸리는 지점은 따로 있다. 알아듣지 못한 기계 앞에서 아이가 반복하는 그 몇 번의 헛된 시도다. 어른이라면 웃어넘길 그 순간이 아직 말을 배우는 아이에게는 다른 무게를 가질 수 있다는 우려를 할 수 있다. 말이 닿지 않는 경험이 쌓일수록 아이가 말을 거는 시도 자체를 줄이거나 더 세고 단순하고 명령하는 말투를 배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