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최홍규의 AI 리터러시] AI가 이야기를 완성해줄수록 아이의 상상은 멈춘다

글로벌이코노믹

[최홍규의 AI 리터러시] AI가 이야기를 완성해줄수록 아이의 상상은 멈춘다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EBS 연구위원이미지 확대보기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EBS 연구위원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연구위원

"공룡이 우주비행사가 되는 이야기 해줘."
예전의 부모는 이 말 앞에서 잠시 멈칫했다. 공룡은 로켓을 어떻게 탈까. 헬멧은 어떻게 쓸까. 답을 궁리하는 몇 초 동안 아이의 머릿속에서도 같은 질문이 돌아가고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스마트폰에 문장 하나만 입력하면 5초 만에 완결된 이야기와 그림이 나온다. 부모가 멈추지 않으니 아이도 멈출 이유가 없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이다. 상상력은 누군가 멈춰 서는 자리에서 태어나는데, 그 자리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이야기에는 원래 틈이 있었다. 그림책 페이지가 넘어가는 사이, 부모가 다음 문장을 고르며 잠시 말을 멈추는 사이. 아이는 그 틈을 자기만의 상상으로 채워왔다. 완벽하게 그려진 그림, 매끄럽게 이어지는 문장은 그 틈을 없앤다. 인공지능(AI) 동화는 이 틈을 순식간에 아름답게 메운다. 친절해 보이지만 사실은 아이가 채워야 할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셈이다.

이 짐작은 실제 실험으로도 확인된다. 중국전매대학교(Communication University of China) 애니메이션디지털아트대학 연구팀은 2026년, 7~12세 아동 40명에게 이야기를 두 가지 방식으로 만들어 보게 했다. 한 번은 AI의 도움을 받아서, 한 번은 종이에 혼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서. 그러자 이야기를 원래 잘 못 만들던 아이들이 확 달라졌다. 상상력이 풍부해지고 이야기도 훨씬 풍성해졌다. 그런데 원래 이야기를 잘 만들던 아이들에게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기발함이나 풍성함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내는 짜임새와 흐름은 원래 실력이 좋았던 아이일수록 AI와 함께 지었을 때 오히려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연구팀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AI가 이미 이야기의 틀을 정해서 던져주다 보니 원래 자기만의 방식으로 탄탄하게 이야기를 짜던 아이일수록 그 틀에 맞춰야 했고, 정작 자기 실력을 발휘할 자리를 잃었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개성으로 이야기를 만들던 아이들이 AI 앞에서는 다들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짓게 됐다.

멈춤은 이야기를 만드는 순간에만 일어나지 않는다. 듣는 순간에도 일어난다. 이번에 멈추는 것은 아이의 손이 아니라 눈이다. 지금 보고 있는 이 이야기가 사람이 지었는지, AI가 지었는지 가려보려는 판단 자체가 작동을 멈추는 것이다. 미국 템플대학교 심리·신경과학과 연구팀이 2026년 6월 발표한 연구에서는 6~10세 아동 37명에게 글과 사진·그림을 여러 개 보여주며 간단한 게임을 했다. 절반은 사람이 쓰고 찍고 그린 것, 절반은 AI가 만든 것이었는데, 아이들에게 어느 쪽이 사람이 한 것인지 골라보게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아이들의 정답률은 평균 49%. 동전을 던져서 찍는 것보다도 낮았다. 같은 게임을 한 성인들의 정답률 59%에도 크게 못 미쳤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아이들이 틀리는 방향이었다. 그냥 무작위로 헷갈린 게 아니었다. AI가 만든 글이나 그림을 보면, 아이들은 하나같이 "이건 사람이 만든 거야"라는 쪽으로 판단이 쏠렸다. 반대로 사람이 만든 것을 AI가 만든 줄 착각하는 경우는 훨씬 드물었다. 이 말은 곧 아이의 눈에는 AI가 지어낸 세계가 이미 사람이 지어낸 세계만큼 어떤 순간에는 그보다 더 '진짜'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그리고 집에서 스마트 기기를 많이 쓰는 아이일수록 이런 착각은 더 심했다.

이 두 연구를 이어 붙이면,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문제였다는 게 드러난다. 아이는 AI가 지어낸 세계를 사람이 지어낸 세계와 잘 가려내지 못한 채 받아들인다. 구별하는 감각이 무뎌지니 그 앞에서 생각도 쉽게 멈춘다. 이야기를 만드는 동안에도 마찬가지다. 이야기를 잘 만드는 아이일수록 AI가 정해준 틀 안에서 자기 힘이 뻗어나갈 자리를 찾지 못하고 멈춘다. 상상력은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 주어진 것과 채워야 할 것 사이의 긴장에서 태어난다. AI는 그 긴장을 없앤다. 너무 잘 만들고, 너무 빨리 완성해서 아이가 멈춰 설 이유가 남지 않는다.

AI로 동화를 만드는 일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이미 AI는 일상적인 교육의 도구가 됐기 때문이다. 다만 완성본을 받아 드는 것과 미완성본을 함께 다듬는 것은 다르다. AI에게 이야기를 끝까지 만들어 달라고 하는 대신, 중간에서 멈춰 달라고 부탁하고 나머지는 아이에게 넘겨보자. "공룡이 로켓 문 앞에 섰어. 그런데 헬멧이 너무 커. 어떻게 됐을까?" 하고 물음을 던지는 순간, 틈이 만들어진다. 삽화를 보여주기 전에 아이에게 먼저 그 장면을 말로 그려보게 하고 나중에 비교해 보는 것도 좋다. 이야기를 다 읽어보고 나서 "이건 사람이 만든 이야기일까, AI가 만든 이야기일까"를 함께 짚어보는 짧은 대화도 필요하다. 정답을 찾는 게 목적이 아니다. 이야기 앞에서 생각을 멈추지 않는 습관을 심어주는 것이 목적이다.

동화는 원래 아이의 상상이 들어올 빈틈을 남겨두는 문학적 도구였다. "옛날 옛적, 어느 숲속에"로 시작하는 동화는 처음부터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 숲이 어떻게 생겼는지, 주인공의 얼굴이 어떤지 굳이 그려주지 않는다. 그 여백을 채우는 것은 원래 듣는 아이의 몫이었다. 부모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동화는 그 여백을 한 번 더 넓혔다. 같은 이야기라도 어제와 오늘의 말투가 달랐고, 그림도 매번 다르게 그려졌다. 그 흔들림 속에서 아이는 매번 새로 상상해야 했다. AI가 만드는 동화는 이 빈틈을 없앤다. 숲의 색깔도, 주인공의 표정도, 사건의 다음 장면도 이미 다 그려져 나온다. 애초에 상상하라고 비워둔 자리를 AI가 먼저 채워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더 좋은 이야기가 아니다. 동화 속에 일부러 남겨둔 그 빈틈이다. 이야기를 짓다가, 혹은 듣다가 아이가 문득 멈칫하는 그 짧은 순간이다. 상상력은 바로 그 순간에 자란다. 이야기가 빈틈없이 완벽해질수록 아이는 구경꾼이 되고, 빈틈이 남아있을수록 아이는 그 이야기의 주인이 된다. 공룡이 헬멧을 쓰다 말고 멈춰 선 그 자리에서 진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이의 상상도 그렇게 시작된다.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