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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은희경이 김포에 떴다...“AI가 문학 같은 사유의 자유를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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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은희경이 김포에 떴다...“AI가 문학 같은 사유의 자유를 줄 수 있을까”

‘AI시대 문학으로 사람 읽기’ 북콘서트 200명 참석...“AI는 과정 없이 결과 중시”
요즘 AI 영향 문학상 응모 크게 늘어... 의외성 실험정신 상실, 빈약한 사유 초래
신간 장편소설 ‘시간의 감촉’ ... 몸과 시간 통해 인간 성찰과 연대 강조
5일 김포독서대전 북 콘서트에 참석한 은희경 작가(왼쪽)는 AI는 과정이 없는 결과만 보여쥐기에 결코 문학이 주는 사유의 자유를 줄 수 없다고 했다. 오른쪽은 평론가 김나영. 사진=엄정권 기자 이미지 확대보기
5일 김포독서대전 북 콘서트에 참석한 은희경 작가(왼쪽)는 "AI는 과정이 없는 결과만 보여쥐기에 결코 문학이 주는 사유의 자유를 줄 수 없다"고 했다. 오른쪽은 평론가 김나영. 사진=엄정권 기자
작가 은희경은 인간 내면에 얼마나 깊숙이 들어가 보았을까. 아니 들어가서 본 것은 무엇이었기에 차가운 손길과 가느다란 눈으로 글자 하나 문장 한 줄 직조한 것이 빛이 아니라 꺼지지 않는 시간이 됐을까. 분명 사건의 벽을 넘어 위선을 보았고 거기서 둥지를 틀어 사나흘은 또는 몇 달 몇 년은 느릿느릿 어떤 흐름을 분투하듯 보았을 것이다. 은희경은 그 꺼지지 않는 시간의 분투하는 모습을 김포에서 보여주었다.

지난 5일 오후 4시 김포시 모담도서관 다목적강당. 가파른 계단식 의자 속 200여 관객은 몸을 당기고 눈과 귀는 흰 끈을 규칙적으로 단정하게 맨 검은색 운동화를 신은 단상의 한 여성에 집중했다. 단발에 검은 테 안경, 그리고 통이 넓은 청바지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게 했다. 그가 이른바 한국 성장소설에 새 이정표를 세우며 한국 문학이 성장하는 디딤돌을 놓았다는 평을 듣는 은희경. 김포독서대전의 전야제 북콘서트 주인공으로 왔다. 가냘픈 몸매에 목소리도 알토와 소프라노 사이 어디쯤 되는, 다소 마르고 가느다란 그러나 기름지지는 않아 오래 들어도 물리지 않았다. 북콘서트 대담은 김나영 평론가가 맡았다. 제목은 ‘AI시대 문학으로 사람 읽기’. 다음은 대담 요약.

집에서도 책 가득한 방 문 열면 마음이 울컥


- 김나영 평론가 : 도서관에 오셨는데, 먼저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어떤 곳입니까. 책 읽기는 좋지만 익명의 사람들과 많이 섞여야 하는 곳인데요.

- 은희경 작가 : 저는 고양시에 살고 있는데, 거기 도서관은 거의 다 가봤어요. 저의 소설 쓰는 첫 단계는 집을 떠나는 것이에요. 살림을 하다보면 일상의 의무 같은 것들이 자꾸 생겨요. 공과금을 내야 하고 세탁소를 가는 일 등등이요. 어쨌든 책이 있는 공간을 사랑해요. 집에서도 가장 큰 방은 책 방이에요. 새벽에 책 방 문을 열면 그 많은 책들이 순간적으로 모두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 느낌에 울컥할 때도 있어요. 제 일상은 책에 많이 의존하죠. 도서관은 그런 점에서 마음이 안정되는 곳입니다. 여기 도서관 너무 멋있어요. 시설도 훌륭합니다.

- 김 : 책 안 읽는 세상입니다. 미래의 도서관, 어떤 역할을 할까요.

- 은 : 미국 시애틀에서 본 풍경입니다만, 한 공공도서관에 홈리스 같은 분이 책을 보는 걸 본 적 있어요.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고 다양한 방법으로 책을 접하는 공간이라는 걸 새삼 느꼈어요. 제 소설 속에도 도서관에서 만나 인연을 이어가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오기도 합니다.

AI가 주는 편리함 뒤에 무엇이 숨어 있을까


- 김 : AI시대 모든 것이 AI의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소설을 쓰시는 입장에서 AI와 어떻게 공존해야 할까요.

- 은 : AI가 너무 가까이 있고 또 많은 편의를 주고 있습니다. 바둑을 두는 지인이 있는데, 주변에 AI를 옆에 두고 바둑 두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반칙이라는 것이에요. 바둑은 서로 상대 스타일을 탐색하고 다양함을 보여주는 건데 AI는 정해진 길로만 간다, 효율은 좋지만 이게 최선은 아니잖느냐. 그리고 의사 선생님 한 분은 요즘 수술로봇이 아주 수술을 잘한답니다. 그런데 의사들에겐 직감이라는 게 있는데, 수술 로봇은 이게 없다, 그러나 로봇은 정확하다, 그러니 점차 의사는 수술에서 밀려나고 이제 판독에 집중하게 됐다고 합니다.
요즘 문학상 응모작이 무척 늘었습니다. 그런데 AI가 쓴 글은 너무 표시가 나요. (작품 속에) 과정이 없어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데 AI 과정이 없다 보니 의외성도 없어 너무 매끄럽게 체계화된 느낌이에요. 무엇보다 실험정신이 없고. 사실 AI라는 편리함을 만든 사람들의 의도는 무엇인가 물을 수밖에 없지요. 기업의 목적은 이윤 아닌가요. 자본의 논리를 따르지요.

AI 회사가 책을 몽땅 사들여 학습을 시킨 뒤 책을 모두 폐기할 수 있다는 (가상의 주장도 있는데)... 너무 두렵습니다. 학생들도 글을 쓸 때는 왜 글을 쓰는가 물어야 해요. 잘 쓰는 것보다 과정을 통해 느끼고 질문해서 도달하는 사유, 그리고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것. (이런 것들이 중요한데) 대신 글을 쓴다는 것, AI는 경계됩니다.

인간을 발견하고 실험을 하는 게 문학의 본질


- 김 : 오늘 주제는 ‘AI시대 문학으로 사람 읽기’입니다. 제가 얼마 전 학교 가는 셔틀버스에 학생과 같이 앉았는데, 그 학생이 친구에게 사과를 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AI에게 어떻게 하느냐고 묻더군요.

- 은 : 자신의 고민을 AI에 털어놓는 경우도 많아진 것 같아요. 문학은 독자에게 불편함을 주지만 또 자유로움을 준다고 합니다. 한나 아렌트 말입니다. 도스토옙스키 소설 주인공은 살인을 저지릅니다. 소설을 읽다보면 사회 부조리를 이해하고 타인의 사고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이상함을 발견하는 노력도 소설가는 합니다.

한 프랑스 소설가는 A를 쓰지 않고 책 한 권을 써보자는 시도를 합니다. 엉뚱한 시도입니다만 억압의 감정을 느끼는 가운데 인간을 발견하고 실험을 통해 더 나아간다고 봅니다. 이런 게 AI에는 없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문학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도덕적 규범, 사회적 통념을 직면하게 만들면서 작품 속 인물의 비극 부조리 또는 낯선 진실을 통해 우리를 심리적 도덕적 불편함 속으로 밀어 넣으며 기존 세계관을 흔들어 놓는다 했다. 그리고 이 불편이 곧 자유로움으로 이어진다며 이를 확장된 사유라 했다. 결국 문학을 통해 전혀 다른 사람들의 삶 내면으로 들어가고 그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는 주체로 거듭나는 정신적 자유를 얻게 된다고 함)

- 김 : AI는 과학의 극단으로 끌고 가고 문학은 그 반대로 끌고 가려는 시도 같습니다. 최근 은 작가님의 장편소설 ‘시간의 감촉’ 얘기를 해볼까요. 60대 자매 얘기인데, 몸이 키워드 같아요. 사실 ‘시간의 감촉’은 데뷔작 ‘새의 선물’과 ‘빛의 과거’를 잇는 이른바 시간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이라는 평입니다.

- 은 : 고맙습니다. 65세 자매 이야기인데요. 아주 상반된 자매로 얼굴도 예쁘고 그렇지 않고 태어나면서 환대받고 그렇지 못하고 등. 그런데 몸은 젊어서는 외모가 되지만 늙어선 병이되고 죽음에 이릅니다. 몸을 형이하학적으로 다뤄보고 싶었어요.

제가 제주도에서 글을 쓸 때 박경리 선생님 부고를 듣고 한 사람의 몸이 사라진다는 게 평생의 사유가 사라지고 경험치가 다 사라진다는 생각을 하며 몸에 대해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이젠 내 순번이구나 하는 생각, 죽음과 가까이 왔다는 생각, 그리고 어느날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다 건너기 전에 신호가 바뀌는 걸 보고 제가 늙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며 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77학번인 은희경 작가는 통이 넓은 청바지에 검은 운동화를 신은 단정한 패션이었다. 단발머리가 나이를 가늠키 어렵게 한다. 사진=엄정권 기자이미지 확대보기
77학번인 은희경 작가는 통이 넓은 청바지에 검은 운동화를 신은 단정한 패션이었다. 단발머리가 나이를 가늠키 어렵게 한다. 사진=엄정권 기자


'시간의 감촉'으로 연대의 힘 느껴보시기를


- 김 : 이번 소설 '시간의 감촉'에서도 남성 인물의 역할이 별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유가 있나요.

- 은 : 이유 있죠. 언니는 독신으로 교사였고 동생(같은 해 출생, 11개월 차이)은 결혼해 딸 낳고 이혼하고 손녀도 있습니다. 손녀와 두 할머니가 일본 여행을 가는 스토리 전개상 남성 개입은 약해집니다. 사위 이름은 영범인데, 왜 영범인 줄 아세요?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에서 이름 따왔어요. 자기 가족 이데올로기에서 못 벗어나고 결혼 생활에 문제 드러내는 영범이 주도적 역할은 아니죠. 손녀 다니엘이 중요한 몫입니다.

- 김 : 손녀 다니엘을 통해 세대간 연대 같은 것을 꾀했다고 볼 수 있나요

- 은 : 소설에 등장하는 77학번 때는 대학에 페미니즘 강의가 등장한 해입니다. 이 사회가 어떻게 여성의 틀을 잡고 왜곡했나 다루고 싶었어요. 워킹맘들의 현실도 말하고 싶었고요. 다니엘을 통해 연대의 힘을 보여주고 비록 유한한 존재이지만 매순간 새로움과 의미를 찾고 만드는 유대 또는 연대의 힘 말이죠.

- 김 : ‘시간의 감촉’ 제목에서 몸은 그대로인데 감촉이라는 게 어떤 생경한 느낌의 사건, 시간, 익숙하지 않은 것들의 감촉 아닌가 하는데요.

- 은 : 두 할머니가 다니엘 손녀와 일본 호텔에서 첫 경험 얘기를 합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경험을 통한 실감이 매우 중요해요. 미술관에 가서 거장의 그림을 직접 본다거나 하는 거요. 저는 축구장에 처음 갔을 때 TV 보던 거와 너무 달라 좀 충격이었어요. 공을 좇는 화면이 아니라 축구장 전체에서 공을 잡지 않은 선수의 움직임, 관중들의 다양한 모습 등을 보면서 이게 실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디에 빨려드는 모습 이게 실감이거든요, 저는 이 실감을 통해 몸과 마음이 작동하는 모습이 재미있었어요.

북콘서트를 마친 은 작가는 관객 질문에 답했다. 먼저 책을 읽지 않는 시대인데 글 쓰려는 사람은 늘고 있다면서 글쓰기 팁을 묻자, 은 작가는 “뭔가 쓰려는 건 매우 중요하다. 글을 쓰는 건 나를 객관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치유의 기능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잘 쓰려면 멋진 글을 쓰려고 하지 말고 자기가 아는 것을, 쉽게, 그리고 좁게 깊이 써보라”고 했다. 이어서 쓰다가 막히면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는 “지금 여기를 벗어나라, 그리고 생각을 짜내라. 술을 먹고 잘 때도 있지만 책을 읽으면 인풋(in put)이 된다. 책을 읽어야 한다.”고 답했다.

은 작가는 손으로 비벼볼 수 없는 객석의 공기를 데웠고 관객의 옷을 벗기고 살갗을 어루만졌다. 90분 동안. 짧지 않은 시간의 감촉이었다.


엄정권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astoday@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