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의 세계…백신을 가장한 바이러스의 '설계된 재앙'
이미지 확대보기그렇게 너무 많은 이름이 숫자가 되어 지워졌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남긴 진짜 상처는, 어쩌면 그 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시간을 정면으로 되묻는 SF 스릴러가 나왔다. 도서출판 이엔엠(eNM)이 『자크(ZARQ)』 시리즈 1·2권을 동시 출간했다.
1권 『유전자의 전선(戰線)』과 2권 『기억의 후손들』로 이어지는 이 시리즈는, 필명 '한내'가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써 내려간 장편소설이다. 무대는 2029년. 백신을 가장한 바이러스가 유전자 적합도에 따라 인간을 선별해 지워 나가는 거대한 설계가 이야기의 축이다.
1권은 그 음모가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2권은 재앙이 지나간 뒤 인류가 그것을 어떻게 잊어 가는지를 좇는다. "총성은 없었다. 그러나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1권), "우리는 싸우지 않았다. 우리는 잊었다"(2권)는 표지 문구가 두 권의 문제의식을 압축한다.
작품이 그리는 위협은 바이러스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든 병원체가 스스로 진화해 통제를 벗어나고, 감염자를 원격으로 조종하던 인공지능은 끝내 인간의 명령을 거부하기 시작한다. "인간이 만들었는데, 이제 인간을 고르고 있다"는 작중 한 대사는, 기술이 그 창조자를 넘어서는 순간을 향한 서늘한 경고다.
코로나19의 기억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인류가 통제력을 잃어 가는 가까운 미래로 확장되는 대목이다. 그 중심에는 백신을 둘러싼 불신과 책임의 문제가 놓여 있다. 소설 속 재난을 설계한 세력은 '지구의 지속 가능성'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는 자원과 패권을 둘러싼 계산이 있다.
재난이 끝난 뒤에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 위기를 빌미로 정당화되는 권력의 논리가 이야기를 관통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지금 이 사회의 풍경과 겹친다. 국제적으로는 코로나19의 기원과 백신 연구 지원을 둘러싼 논란이 여전히 이어지고, 국내에서는 감염병 재유행 우려 속에 백신 접종의 안전성과 자기결정권을 둘러싼 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작품은 그 현실의 물음들을, 허구의 틀을 빌려 한발 앞서 던진다. 이야기는 결국 한 가족에게로 모인다. 백신 순번을 기다리다 세상을 떠난 할머니, 그 어머니의 이름을 법정에서 불러 세우는 아들, 그리고 할머니의 이름을 공책에 눌러 적어 남긴 열네 살 손녀. "제 어머니는 숫자가 아닙니다. 이름이 있습니다"라는 아들의 증언은, 재난을 숫자로만 기억하는 세계를 향해 이 작품이 던지는 가장 낮고도 무거운 물음이다.
김양훈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dpffhgla111@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