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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벤처캐피털업계, '다양성 투자'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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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벤처캐피털업계, '다양성 투자' 뜬다

지난해 조지 플로이드 사건 후 비백인 창업 기업에 투자 10% 증가
흑인 창업 스타트업에 대한 미국 벤처투자업계의 투자 규모 추이. 사진=크런치베이스이미지 확대보기
흑인 창업 스타트업에 대한 미국 벤처투자업계의 투자 규모 추이. 사진=크런치베이스
미국 벤처캐피털 업계에서 이른바 ‘다양성 투자’가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백인 중심의 배타적인 투자 풍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벤처캐피털 업계에서 흑인을 비롯해 유색 인종이 창업하는 스타트업에 베팅을 하는 사례가 최근 들어 크게 있기 때문이다.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등을 계기로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 문제가 새롭게 부각되면서 유색 인종 창업자를 밀어주자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누가 주로 벤처투자 하나


글로벌 컨설팅업체 딜로이트가 최근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벤처투자업체를 통해 스타트업에 투자를 벌이는 사람들의 인종은 70% 이상이 백인이다. 그 다음은 아시아계와 태평양계 투자자로 15% 정도였고 흑인 투자자는 3%, 라틴계 투자자는 4%에 불과하다.

미국 전체 인구에서 흑인과 라틴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13%, 19%인 점을 감안하면 벤처투자 생태계가 얼마나 백인 중심으로 유지돼 왔는지를 쉽게 알 수 있는 대목.

◇조지 플로이드 사건과 벤처투자의 변화


WSJ에 따르면 배타적인 문화로 악명이 높은 벤처캐피털업계의 변화 움직임은 지난해부터 감지됐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미국 벤처투자업체들을 대상으로 지난해 벤처투자 현황에 관해 벌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업체의 43%가 “비백인이 창업한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업무의 최우선 순위”라고 답했다. 예년의 설문조사 때보다 10%나 증가한 수치다.

비백인 중심 벤처 창업에 대한 지원을 중시하게 된 배경과 관련해 응답업체의 61%는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유색인종 차별반대 운동에 영향을 받아 투자 전략을 조정했다”고 밝혔다.
또 시장조사업체 디퍼런트펀드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벤처캐피털업체들이 지난 1분기 새로 설립한 창업 관련 투자펀드 가운데 10.4%는 흑인이 주도해 공동창업한 기업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2019년 같은 분기와 비교할 때 배가 넘는 증가율이다.

◇흑인 창업자의 경우


다만 흑인 창업자에 대한 벤처캐피털업계의 지원은 여전히 인색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벤처캐피털업체들이 집행한 펀딩에서 흑인이 창업한 벤처에 지원한 경우는 평균 1% 수준. 이 수치가 올들어 1.4%로 소폭 증가하기는 했으나 이 자체를 의미 있는 변화로 간주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주목할만한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게 WSJ의 진단이다.

데이터 조사업체 크런치베이스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시행된 벤처투자 펀딩 가운데 흑인이 창업한 스타트업에 대한 펀딩이 역대 최고인 306건을 기록했기 때문. 4년전 자료와 비교해도 무려 2배에 가까운 큰 폭의 증가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재 벤처캐피털업체 슬로슨앤컴퍼니. 이 회사의 공동창업자인 오스틴 클레멘츠는 흑인이다.

그는 WSJ와 인터뷰에서 “우리의 메시지가 달라졌거나 전략이 달라진 적은 없다”면서 “다만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이 터진 지 한달 뒤부터 투자자들이 쇄도하고 실리콘밸리 전체적으로도 인종차별에 대한 반성으로 다양성 투자를 늘리자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생산성도 높은 편

유색 인종이 창업한 스타트업의 경영성적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도 벤처투자업계에 매력적인 대목이다.

벤처캐피털시장 조사업체 카우프만펠로리서치센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비백인 창업자가 경영하는 스타트업(창업자 가운데 비백인이 한명 이상 있는 경우)에 투자한 벤처캐피털업체의 수익성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30%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양성 투자에 특화된 식스티에잇캐피털의 켈리 존스 창업자는 “유색 인종이 창업한 스타트업의 통솔이 더 잘되고 노력한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이혜영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