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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디트스위스, 스캔들로 얼룩진 '167년 역사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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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디트스위스, 스캔들로 얼룩진 '167년 역사의 몰락'

스위스 국립은행으로부터 약 70조원의 자금을 지원받았지만 결국 크레디트스위스는 위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167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사진=로이터 이미지 확대보기
스위스 국립은행으로부터 약 70조원의 자금을 지원받았지만 결국 크레디트스위스는 위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167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사진=로이터
한때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든든한 버팀목 중 하나였던 스위스 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가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67년 동안 크레디트스위스는 스위스가 국제 금융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일조해왔다. 세계적인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는 월스트리트 거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지만 스캔들, 법적 문제, 경영상의 어려움이 계속되면서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었다.
20일(현지시간) 외신 보도에 따르면 주말 내 이어지던 긴 협상 끝에 스위스 최대 금융기관인 UBS는 스위스 연방 재무부, 스위스 국립은행, 스위스 금융시장감독청(FINMA)의 개입으로 32억5000만 달러에 크레디트스위스를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17일 종가 기준 크레디트스위스의 시가총액 74억 스위스프랑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앞서 UBS는 최대 10억 달러에 크레디트스위스를 인수하고자 했지만 크레디트스위스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이번 인수로 인해 크레디트 스위스의 170억 달러 규모 고위험 채권은 거의 가치가 없어졌다.

스위스 정부는 주주들의 동이 없이 은행 합병이 진행될 수 있도록 긴급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인수로 인해 UBS가 손실을 이는 경우 90억 스위스 프랑을 보장한다. 스위스 국립은행은 합병이 성사될 수 있도록 최대 1000억 스위스 프랑을 지원할 계획이다.

크레디트스위스는 지난 1856년 스위스 철도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세워졌다. 크레디트스위스는 2008년 금융위기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은 몇 안되는 은행 중 하나였지만 이후 조세회피 조사에 연루돼 2008년부터 2012년까지 26억 달러의 벌금을 납부했다.

1990년 당시 크레디트스위스의 CEO였던 라이너 구트는 미국 파트너 퍼스트보스턴을 인수했다. 인수과정에서 약간의 자본을 투입해 부실 대출을 막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되면서 크레디트스위스의 부흥과 몰락이 시작됐다.
지난 2015년 크레디트스위스의 전 직원 파트리스 레스카드론은 손실을 막기 위해 다른 고객의 서명과 거래내역을 위조해 사기행각을 벌였다.

레스카드론은 2008년, 2011년, 2013년 등 여러 차례에 걸쳐 은행 관리자로부터 경고와 규제를 받아왔지만 결국 2018년 사기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고 2020년 목숨을 끊었다.

FINMA의 조사 결과 크레디트스위스가 사기를 알고있다는 혐의는 밝히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를 묵인한 셈이다.

2019년 당시 CEO였던 티드잔 티암과 크레디트스위스 전직 임원이자 차기 CEO로 간주된 이크발 칸 사이에 불화가 터졌다. 불화에서 시작된 작은 사건은 기업 스캔들로 발전했고 칸은 승진에서 탈락한 뒤 회사를 떠났다.

이후 칸이 크레디트스위스의 경쟁사 UBS에 입사하자 핵심 인력을 빼돌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크레디트스위스는 사설 보안업체를 고용해 칸을 감시했다.

이후 2020년 2월 크레디트스위스 회장은 "모든 이해관계자 사이의 신뢰, 평판, 신용이 악화됐다"고 비난하며 티암을 강제로 해임했다.

2021년 스위스 규제당국은 칸 사건으로 촉발된 조사의 일환으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5건의 추가 감시 사례를 적발했다.

이후 크레디트 스위스는 투자 실패로 55억 달러의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잇따른 투자 실패와 탈세 혐의, 저조한 실적 등으로 크레디트스위스의 위기설이 떠올랐고 회사는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서 인력을 감축하고 비용을 절감해왔다. 크레디트스위스는 한때 1조 달러가 넘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수년간 이어진 스캔들 이후 자산이 약 절반 수준인 5800억 달러로 줄어들었다. 주가는 최고점 대비 95% 이상 하락했다.

크레디트스위스는 금융안정위원회(FSB)가 지정하는 국제 시스템적 중요 은행(G-SIB)중 하나로 지정되기도 했다. G-SIB는 전 세계적으로 금융시스템 전반의 안전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금융기관으로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금융안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중앙은행 등 정부기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지난 10일 실리콘밸리은행(SVB)가 갑작스럽게 무너지자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어온 크레디트스위스도 우려의 대상이 됐다. 크레디트스위스의 최대 주주인 사우디 국립은행이 더 이상의 재정 지원은 없을 것이라고 밝히자 금융시장에서 불안감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크레디트스위스는 지난 16일 재무건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스위스 중앙은행으로부터 500억 스위스프랑의 자금을 지원받았지만 결국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

카린 켈러 서터 스위스 재무장관은 "크레디트스위스가 스스로 어려움을 해결하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안타깝게도 고객의 신뢰를 잃는 것을 더 이상 막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콜름 켈러허(Colm Kelleher) UBS 회장은 "이번 인수는 긴급구조"라고 말했다.

금융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스위스는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UBS와 크레디트스위스의 자산을 합치면 스위스 국내총생산(GDP)의 약 2배에 달한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스위스 당국의 금융 시스템 안정화 발표를 환영한다"며 "미국 은행시스템의 자본과 자금 유동성은 여전히 견고하다"고 발표했다.


노훈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unjuroh@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