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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중국의 속국"…중·러, 숨겨진 셈법 '제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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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중국의 속국"…중·러, 숨겨진 셈법 '제각각'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말이 불러온 파장 분석



이란과 사우디를 화해시킨 중국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중재에 나섰다. 이미지 확대보기
이란과 사우디를 화해시킨 중국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중재에 나섰다.

“러시아가 사실상 중국에 합병되는 과정이 시작됐다.”

외교무대에선 말 한 마디가 일파만파를 불러온다. 러시아가 중국의 속국이라는 이 말은 중국 전랑(戰狼) 외교관의 발언이 아니다.

파리에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한 말이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 나카자와 가쓰지 중국 총국장은 베이징 통으로 불린다.

그는 칼럼을 통해 중국과 유럽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마크롱의 말 속에 감추어진 행간의 의미를 분석했다.

마크롱의 발언은 중국에서 더 주목을 받았다. 마침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중재를 위해 파견한 대표단이 우크라이나에 입국하기 직전이었다.

러시아는 중국의 아래에 있기를 원할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각종 제재로 심각한 경제 침체를 겪고 있다. 러시아가 정치적·경제적으로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서구 학계에서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마크롱의 발언은 오히려 중국 공산당 내부에 강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서방 지도자의 말이 중국과 러시아의 밀월 관계를 해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섣불리 러시아를 자극하지 말자는 뜻이다.

대만과 전쟁을 치러야 할지도 모르는 중국 공산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패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론 러시아의 약화가 상대적으로 중국의 위상 강화를 의미한다는 쾌감을 놓치길 싫어한다.

구소련은 미국과 냉전을 치른 세계 양대 강대국 중 하나였다. 그 후계자인 러시아가 중국의 속국이라는 마크롱의 평가는 이제 미국과 대등한, 말 그대로 G2가 됐다는 공인이나 다름없다.

히로시마 G7 정상회담에 맞서


중국의 시급한 과제는 서구 자유주의 국가들이 형성한 중국 포위망을 깨뜨리는 일이다. 중국은 19일부터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 주목하고 있다. G7이 미국의 깃발 아래 어떻게 중국을 질식시키려 들지 지켜보고 있다.

중국은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사이를 중재해 주목을 받았다. 이번엔 보다 껄끄러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솜씨를 발휘하려 든다. 우크라이나에 파견한 중국 대표단을 이끄는 리후이는 구소련 블록에서 오랜 경험을 가진 베테랑 외교관이며 유라시아 문제 특별대표직을 맡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대표단을 파견한 것은 지난 4월 시 주석과 젤렌스키 대통령의 전화 회담 결과였다. 중국 측은 요란하게 이를 홍보하고 있다. 대표단은 우크라이나에 이어 러시아를 방문하는 것으로 마무리할 예정이다.

우크라이나가 시진핑 주석의 특사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 지켜보는 것은 대단히 흥미롭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중국 대표단이 우크라이나를 향해 떠날 때 영국에서 수낵 총리를 만나고 있었다.

중국이 히로시마 G7 정상회담 맞대응 전략을 고심하고 있다. 이미지 확대보기
중국이 히로시마 G7 정상회담 맞대응 전략을 고심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수낵 총리로부터 수백 개의 방공미사일과 사거리 200㎞ 이상의 장거리 공격 드론 수백 대를 포함한 추가 보급품을 받기로 했다. 얼마 전 그는 파리에서 프랑스산 AMX10RC를 포함한 수십 대의 장갑차를, 또한 숄츠 독일 총리로부터 27억 유로(약 3조9366억원)의 군사 지원을 약속받았다.

현재 국제사회는 젤렌스키가 어느 단계에서 전면적인 역전 공세를 펼칠 것인가에 주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군 지휘자는 수낵을 만난 후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추가 무기 지원을 약속받은 우크라이나가 역전 공세를 모색하고 있는 현 상황을 감안할 때 중국의 중재 노력이 성공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전랑 외교’에 찬성하는 중국의 유명한 매파 학자도 중국 대표단이 우크라이나로 떠나기 직전 "(중국의 평화 프로세스를 중개하는 임무에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마라"고 경고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시진핑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표단을 파견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중국의 국내외 문제에 정통한 전문가의 냉정한 분석에 따르면 "중국의 실제 목표는 G7 히로시마 정상회담과 경쟁하기 위해서다."

중국은 18, 19일 이틀간 중국 중앙아시아 정상회의를 중국 시안에서 개최한다. 크게 주목을 끌지 않는 뉴스지만 두 가지 유의할 대목이 있다. 이 회의에 시진핑 주석이 참석한다는 것과 G7을 하루 앞둔 개최 시기다.

중국의 숨겨진 속셈


중국이 구소련 블록 중앙아시아 국가의 지도자들을 초청하려는 의도는 다분히 히로시마 G7 견제용으로 보인다. 적어도 중국에서는 이 뉴스가 매일 크게 보도될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에 의해 졸지에 '중국의 속국'으로 전락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러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꾸준히 늘리고 있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푸틴의 지위를 짓밟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냄비 속에 넣은 개구리를 서서히 삶아 죽이겠다는 의도다.

구소련과 중국의 위상은 지금과 정반대였다. 마오쩌둥은 스탈린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했다. 그 시절의 권력 회복에 대한 향수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이 시진핑의 중재를 고분고분 받아들일 것 같지는 않다.

만약 그렇게 되면 러시아는 진정한 의미에서 중국의 속국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반면 유럽 국가들로부터 무기 원조를 받은 젤렌스키는 전면적인 역전 공세와 미래를 위한 전략에 몰두할 전망이다.

시 주석은 G7 히로시마 정상회담에 앞서 중국 대표단을 우크라이나에 파견했다. 특사의 방문으로 실질적인 결과를 얻기는 어렵다. 그래도 중국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제비 한 마리를 보았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다. 그러나 봄이 곧 올 것이라는 신호로 삼기엔 충분하다.


성일만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exan509@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