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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의 담대한 '뉴딜 전략' 성패, 국내외 지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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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의 담대한 '뉴딜 전략' 성패, 국내외 지지에 달렸다

미국이 직면한 4가지 도전
전략산업 기반 공동화 심각
권위주의 국가들의 급부상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왼쪽)이 지난 2월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한 박진 외교부 장관과 백악관에서 면담을 가졌다. 그들은 한미동맹 70주년 계기 한미동맹 강화, 한반도 문제, 경제안보ㆍ첨단기술 협력, 지역ㆍ글로벌 현안 등에 대해 심도 있는 의견을 교환했다. 사진=외교부이미지 확대보기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왼쪽)이 지난 2월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한 박진 외교부 장관과 백악관에서 면담을 가졌다. 그들은 한미동맹 70주년 계기 한미동맹 강화, 한반도 문제, 경제안보ㆍ첨단기술 협력, 지역ㆍ글로벌 현안 등에 대해 심도 있는 의견을 교환했다. 사진=외교부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이 공식 확인한,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비전의 신자유주의 질서에서 ‘신(新)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새로운 비전의 뉴딜 질서로의 미국 정치 질서의 이행은 바이든 행정부가 2021년 1월 출범한 직후부터 시작됐다.

사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도 정치 질서의 이 같은 이행을 언급한 바 있다. 물론 그가 설리번 보좌관처럼 신자유주의 질서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식의 많은 말을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 정치의 한 시대가 끝나가고 있으며 새로운 시대가 부상하고 있다.” 요컨대 신자유주의 질서가 끝나가고 있고 뉴딜 질서가 도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어 부상하고 있다는 새로운 시대가 그에게 “크게 생각하고 담대하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믿음을 표명했다.

실제 바이든 대통령은 이 같은 믿음에 따라 담대한 정책들을 추진해 왔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1933년 취임 후 첫 100일 동안 법으로 통과시킨 정책들에 필적할 만한 정책들을 참모들에게서 제안받았다. 대표적인 정책들로는 성인 미국인 과반수의 백신 접종,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는 개인들과 기업들을 돕기 위한 1900억 달러의 구제 계획, 미국의 사회간접자본을 개선하기 위한 4000억~5000억 달러 규모의 계획 등이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100일간 법으로 통과시킨 정책들은 15개 주요 법안을 통과시킨 루스벨트 대통령의 기록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바이든의 뉴딜 정책들은 인상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역동적인 백신 접종 캠페인에 착수한 데 이어 2000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미국 구제 계획’을 의회에서 통과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특히 그는 취임 첫해인 2021년 여름 국민 건강의 증진을 위한 모든 관련 기반 시설의 개선을 목표로 한 1000억 달러 계획을 민주당과 공화당이 함께 통과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같은 해 11월에는 1750억 달러 규모의 사회간접시설 향상을 위한 그의 계획이 하원에서 통과됐다. 이 계획은 근로 인구가 자녀들을 잘 돌볼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세금 인하와 고령 가족을 보살피는 근로자들에 대한 보조금 제공, 미국의 탄소 배출 없는 미래를 위한 녹색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 등을 포함하는 옴니버스 패키지 뉴딜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기후 변화 위기 전략 수립
미국 내 경제 불평등 심화
기득권층 반대 돌파 관건
바이든의 임기 첫해 승인된 연방정부의 지출 규모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그 자체를 위한 지출 규모보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컸다. 2차 대전 때의 수준에까지 거의 도달했다. 바이든의 뉴딜 이니셔티브들은 재정적 책임을 중시한 나머지 균형 지출에 집착했던 오바마 행정부의 기조로부터 과감한 이탈이었다.

설리번 보좌관은 미국이 이처럼 바이든의 취임 첫해부터 뉴딜 질서로 신속하게 전환한 배경으로 당시 행정부 출범 시기에 미국이 직면한 4개의 근본적인 도전들을 꼽았다.

첫 번째는 미국의 산업 기반이 공동화되었다는 것이다. 2차 대전 후 공공투자의 비전으로 미국의 패권을 뒷받침한 뉴딜 질서가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에 이어 1990년대 초 탈냉전 시대 들어서 세금 감면, 탈규제, 민영화, 교역 자유화를 내건 신자유주의 질서에 자리를 내준 결과였다. 탈냉전 시대 등장한 클린턴, W. 부시, 오바마 등 세 행정부 시기 정치 질서가 시장은 언제나 생산적이고 효과적으로 자본을 할당한다는 가정에 기초한 신자유주의 질서로 이행한 결과 전략 제품들의 전체 공급망이 해외로 이동했다고 설리번은 비판했다. 수출만 도울 것이라던 교역 자유화는 가정과 달리 미국인들의 일자리와 생산능력의 해외 이전까지 초래했다는 것이다. 성장의 형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가정에 기초한 신자유주의로 인해 금융 부문은 크게 성장했으나 반도체와 사회간접자본 등 다른 핵심적인 부문들은 생산능력이 해외로 이전되면서 쇠퇴하고 말았다고 그는 부연했다.

두 번째 도전은 중요한 경제적 영향들을 갖는 지정학적 안보 경쟁에 따라 규정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었다. 지난 30년간 미국이 신자유주의 질서에 따라 추구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핵심 이론은 경제적 통합이 국가들을 더욱 책임 있고 개방적인 국가로 만듦으로써 글로벌 질서가 더욱 평화적이고 협력적으로 바뀐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몇몇 경우 그런 결과를 볼 수 있었으나 많은 경우 안 그랬다는 것이다.

특히 설리번은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 한 커다란 비시장 경제가 상당한 도전들을 야기하는 방식으로 국제 경제 질서에 통합돼 있다는 현실과 씨름해야 했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한 커다란 비시장 경제'란 중국을 지칭한다. 요컨대 중국이 청정에너지와 디지털 간접자본, 그리고 첨단 생명공학 같은 미래의 핵심 산업들은 물론이고 철강 같은 전통적인 분야들에서까지 자국 기업들에 대규모의 보조금 제공을 계속함으로써 말미암는 도전들이 엄중한 시기에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이 같은 비시장 행위들로 인해 미국은 단지 제조업을 잃은 데 그치지 않고 미래를 결정하게 될 중대한 기술 부문들에서 경쟁력이 쇠퇴해 왔다고 그는 지적했다.

설리번은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따른 글로벌 경제적 통합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동아시아와 서태평양 지역에서 군사적 야심들의 확장을 멈추지 않아 왔으며 러시아도 민주적인 이웃 국가들을 침공했다고 비판했다. 이들 두 권위주의 강국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떠받쳐온 앞서의 이론과 달리 더 책임 있는 국가도, 협력적인 국가도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 번째 도전은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가 고조되면서 탄소 배출이 적은 청정하고 효율적인 에너지로의 이행이 긴급하게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바이든 대통령은 21세기 청정에너지 경제의 건설은 21세기에 가장 의미 있는 성장 기회들의 하나로서 그 같은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혁신을 주도하고 비용을 낮추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투자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설리번은 말한다.

네 번째 도전은 불평등의 심화와 그것이 민주주의의 손상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질서는 교역 주도 성장은 포용적인 성장이 될 것이라고 가정했으나 교역의 이득이 많은 근로자들에게 돌아가지 못함으로써 미국의 중산층이 기반을 잃은 반면 부유층은 이전보다 더 많은 부를 쌓게 돼 결과적으로 미국 민주주의가 크게 약화됐다는 것이 설리번의 지적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뉴딜 전략의 일환으로 칩스법 제정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뉴딜 전략의 일환으로 칩스법 제정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로이터


문제는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치 질서의 뉴딜 질서로의 전환이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신자유주의 질서의 뉴딜 질서로의 이행은 아직 형성 단계에 있다. 그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가 뉴딜 질서로의 확고한 이행을 지원하는 후원자들을 충분히 확보함으로써 여전히 부와 권력을 보유한 월가와 실리콘밸리의 저항에 따른 위험들을 담대하게 돌파해낼 수 있을지 여부를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거슬의 지적이다.

이와 함께 뉴딜 질서를 주도하는 두 축인 바이든 행정부와 미국 내 중도-진보 연합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거나 뉴딜 질서를 위협하는 국내외의 사태들이 발생할 때 바이든 대통령과 설리번을 비롯한 참모들이 뉴딜 질서를 지켜낼 만큼 충분히 강한지도 지켜봐야 한다.

이미 저항은 시작됐다. 최근 미국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미국의 대중 수출 통제로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손이 뒤로 묶여버렸다”며 “반도체와 과학법이 제 발등을 찍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반도체 업계 시가총액 1위 기업 대표가 공개적으로 자국의 정책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이 점에서 설리번 보좌관이 지난 4월 26일 브루킹스연구소에서 행한 발제를 통해 신 워싱턴 컨센서스를 공개하고 신자유주의 질서의 폐해와 뉴딜 질서로의 이행이 제조업 부활을 통한 경제 성장, 부의 양극화 해소, 기후변화 위기 대처 등 미국의 국익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한 것은 월가와 실리콘밸리의 반발 분위기를 읽었기 때문일 수 있다.

한국, 한·미 안보·경제 '21세기 비전' 확대해야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의 정치 질서가 이처럼 신자유주의 질서에서 뉴딜 질서로 이행해온 것과 관련해 한국의 대응 방향일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과 주요 경제 부처들이 행여나 신자유주의 질서를 마치 보수 정치의 올바른 경제 질서로 인식하고 있거나 지난 문재인 정부의 비시장적 정책에 대한 반격 차원에서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들을 옹호하고 있다면 그 같은 기조에서 신속히 탈피해 뉴딜 질서로 이행해야 한다. 그것이 4월 26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한·미 동맹의 21세기 비전을 안보 분야를 넘어서 경제 분야로까지 확대하는 길인 것이다. 경제 부처들은 윤 대통령이 강조하는 ‘자유’가 신자유주의 질서의 고수를 의미하는 것으로 오인해서는 안 된다.

최대 동맹국인 미국은 뉴딜 질서로 이행하는데 한국은 구시대적인 신자유주의 질서를 고수할 경우 북한과 중국의 핵공격 위협에 맞서 미국의 공감을 이끌어내야 할 전술핵 재배치나 자체 핵무장도 더욱 어려워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교관 CNBC KOREA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