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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급 중심 '뉴딜 질서'로 국제정치 체제 확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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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급 중심 '뉴딜 질서'로 국제정치 체제 확 바꾼다

설리번 美 안보보좌관 '신 워싱턴 컨센서스' 공개

중국이 탈냉전 이후 30년간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주요 첨단기술 분야에서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신자유주의 질서 덕분으로 분석된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중국이 탈냉전 이후 30년간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주요 첨단기술 분야에서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신자유주의 질서 덕분으로 분석된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이념과 정책, 지지층의 합으로서의 미국 ‘정치 질서(political order)’가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시장의 자율성을 우선시해온 ‘신자유주의 질서(Neoliberal Order)’에서 정부 주도의 공급 중시 체제의 ‘뉴딜 질서(New Deal Order)’로 본격 이행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00년간 세계 경제의 방향을 선도해온 미국 정치 질서의 이 같은 이행은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4월 26일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에서 행한 ‘미국의 경제 리더십 개선에 관하여’라는 제하의 발제를 통해 드러났다.
설리번 보좌관은 동 발제에서 중국이 탈냉전 이후 30년간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주요 첨단기술 분야에서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신자유주의 질서를 꼽았다. 냉전 종식 이후 출범한 클린턴, W. 부시, 오바마 등 세 행정부가 시장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한 결과 주요 전략 산업들의 공급망이 중국으로 이동함에 따라 미국의 산업 기반이 공동화(空洞化)될 정도로 쇠퇴한 결과 중국이 패권 도전을 할 만큼 강국이 됐다는 것이다.

설리번 보좌관은 위의 세 행정부가 신자유주의 질서에서 시장이 항상 생산적이고 효율적으로 자본을 배분하고 그에 따른 경제 성장이 부의 불평등을 없애고 민주화와 개방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으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금융 산업은 커졌으나 제조업이 공동화됨으로써 반도체 품귀 등 전략물자의 공급망 혼선이 초래됐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설리번 보좌관은 바이든 행정부가 추구하는 정치 질서가 뉴딜 질서임을 분명히 했다. 이는 그가 지난 30년간 신자유주의 질서와 동의어로 사용돼온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와 달리 공급 중시 비전의 ‘신 워싱턴 컨센서스(New Washington Consensus)’를 공개한 데서 확인된다. 그는 신 워싱턴 컨센서스의 큰 방향은 적극적인 산업정책으로 제조업 기반을 공고히 한 다음 동맹들과 협력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신자유주의질서 추진 결과 전략산업 공급망 중국 이동


설리번 보좌관의 이 같은 언급은 게리 거슬 영국 케임브리지대 미국사 교수가 지난 2월 출간된 ‘신자유주의 질서의 흥망’에서 내놓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거슬의 주장은 미·중 패권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신자유주의 질서는 끝이 났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1991년 구소련 해체에 따른 냉전 종식 이후 등장한 클린턴, W. 부시, 오바마 등 세 행정부 기간 정치 질서로서 뿌리를 내린 신자유주의 질서가 2010년 월스트리트 금융위기로 인한 글로벌 대침체와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사태를 거치면서 제조업 쇠퇴가 본격화함에 따라 중산층이 무너지고 중국이 반도체로 대표되는 첨단기술 패권 경쟁을 중심으로 미국의 글로벌 패권에 대한 도전에 나서면서 종언을 고했다는 것이다.

거슬의 주장은 바이든 행정부가 2021년 1월 출범하자마자 미국 내에서는 물론 전 세계 동맹국들과 함께 ‘신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이름의 새로운 합의를 추구하게 된 배경과 일치한다. 설리번은 거슬이 말한 바와 같이 신자유주의 질서를 무너뜨린 도전과 위기가 바이든 행정부로 하여금 새로운 산업과 혁신 전략을 추구하도록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설리번이 거슬의 주장에 덧붙인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인류의 생명과 생활을 위협하는 기후변화 위기이고, 다른 하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드러난 세계화에 따른 과도한 의존의 위험들이다.

산업·혁신 4대 전략 소개…글로벌 패권 공고화 총력

설리번은 새로운 산업과 혁신 전략의 주요 내용도 공개했다. 미국만의 경제력과 기술력의 근원들에 대한 투자 강화, 다양하고 지속적인 글로벌 공급망 구축, 노동과 환경에서 신뢰받는 기술과 훌륭한 통치구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의 수준 제고, 기후와 건강 같은 공공재들을 제공하기 위한 자본의 투입 등이 동 전략의 4대 방향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새로운 산업과 혁신 전략이 미국의 정치 질서가 시장 만능주의의 신자유주의 질서에서 정부 주도 공급 중시의 뉴딜 질서로 이행했다는 것을 입증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공화당이 매카시 하원의장을 앞세워 바이든 대통령에게 예산 감축을 압박했던 배경도 뉴딜 질서의 저지와 관련 있을 개연성이 크다.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 추진해온 부의 양극화 해소 등 민생 회복 노력과 제조업 회복을 통한 실업 해소 노력이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는 만큼 공화당으로서는 뉴딜 질서로의 이행 저지가 내년 대선 승리의 관건이라고 보고 예산 감축을 압박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교관 CNBC KOREA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