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네기 국제평화기금에 따르면, 러시아는 지난해 2월부터 현재까지 1만3000건이 넘는 제재를 받게 됐다. 이는 카네기 국제평화기금이 집계한 역사상 가장 많은 제재를 받은 국가이다.
러시아인들이 제재로 인한 경제적 압박을 느끼면서 전쟁에 대한 지지도가 하락하는 등 그 영향이 전국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전쟁 발생 1년이 지난 시점에 발표된 모스크바의 한 독립 단체의 여론 조사에 따른 것이다.
크렘린 선전가들도 인정한 제재 효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대응으로 서방 국가들이 부과한 제재가 러시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사실은 크렘린의 선전가들조차 인정하고 있다.
러시아 국영 TV 채널 '러시아 24'의 TV 앵커 이반 트루슈킨은 지난해 12월 '메스토 브스트레치(만남의 장소)'라는 프로그램에서 "러시아는 달러와 유로 등 다양한 통화를 사용할 수 있지만, 바로 그 제재 때문에 원하는 곳에 쓸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영상은 우크라이나 내무부 고문 안톤 게라셴코가 트위터의 전신인 X에 공유하며 "우리는 원하는 것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필요한 것을 살 수 없습니다."라고 러시아의 곤경을 언급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이동 제한 조치가 9개월째 이어지면서 러시아인의 일상에 점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카고대학교 해리스 공공정책대학원의 러시아 태생 정치경제학자 콘스탄틴 소닌은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언론에서 보도되는 물량 부족 현상은 정부가 가격을 억제하려는 분명한 신호"라고 말했다.
소닌은 "서방 국가들이 부과한 제재가 러시아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며 "러시아 기업의 생산 비용을 증가시켜 경제 성장을 둔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제재로 인해 러시아 군수산업은 해외 투입에 대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며 "이는 생산 속도를 늦추고 러시아가 생산하는 제품의 양을 줄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소닌 교수는 또한 "제재는 미사일이나 폭탄처럼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지는 않지만, 경제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러시아, 세계 최대 산유국에도 연료 부족
세계 최대 석유 및 가스 생산국 중 하나인 러시아가 전국적으로 연료 부족에 직면하고 있다.
러시아 국영 언론도 일부 주유소에서 연료가 동이 나는 사례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군사 물류를 연구한 전 미 국방부 방위계약관리국 관리인 트렌트 텔렌코는 지난 9일 X에 기고한 글에서 "러시아에는 지속적이고 광범위하며 체계적인 연료 분배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텔렌코는 "러시아의 연료 부족은 러시아 경제와 군사력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달 러시아 신문 이즈베스티야는 전국 주유소에서 휘발유가 부족하다고 보도했다. 아스트라한, 볼고그라드, 사라토프, 랴잔, 노보시비르스크는 물론 칼미키아 공화국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했다.
지난 6일엔 드미트리 파트루셰프 러시아 농업부 장관은 이러한 연료 부족으로 가을 수확과 파종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파트루셰프 장관은"우리는 이미 연료의 가용성에 문제가 있다. 이제 수확을 중단하고 겨울 작물을 파종하지 않을 것이다. 재앙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내 시장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석유 제품 수출을 일시적으로 중단해야 할 때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석유 및 가스 분석가 미하일 크루티킨은 러시아 독립 신문 노바야 가제타에 제재로 인해 석유 회사들이 모든 것을 해외에 판매하는 것이 더 수익성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크루티킨 "가능한 한 많이 수출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다"라며 "이러한 현상은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극동 지역에서도 연료 부족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가능한 모든 것을 수출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러시아가 부족한 것은 연료뿐만이 아니다.
종이와 잉크가 부족해 대형 출판사들은 품질이 떨어지는 러시아산 종이 사용을 강제받고 있다.
합판 업체들은 합판 생산에 중요한 성분인 페놀 포름알데히드 수지가 부족해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특히 휴대폰 기지국은 부품 부족으로 휴대폰 통화 끊김 현상이 잦아지고 있다.
이 밖에도 타이어, 비행기 부품 등 거의 모든 부문에 부족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태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j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