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경제가 고금리·고물가 사태 속에서도 비교적 순항했으나 노조 파업, 정부 셧다운, 학자금 대출 상환 재개 등 3대 복병을 만났다. 이는 곧 미국 경제에서 3분의 2의 비중을 차지하는 소비 위축을 예고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인플레이션 통제를 위해 지난해 3월부터 연쇄 금리 인상을 계속하면서 소비 둔화를 유도해왔다. 연준은 19, 20일(현지 시간)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금리를 동결하고, 관망 상태로 들어갈 것이라는 게 월가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그사이에 노조 파업 등의 여파로 소비가 줄어들면 추가 금리 인상 필요성이 줄어들고, 내년에는 금리를 서둘러 내려야 경기 침체를 막을 수 있다.
로이터통신은 18일(현지 시간) 연준이 이번 FOMC 회의에서 소프트랜딩(연착륙)을 위협할 수 있는 요인을 집중적으로 점검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전미자동차노조(UAW)가 사상 처음으로 제너럴모터스(GM), 포드, 스텔란티스 등 빅3 완성차 업체에서 동시 파업을 계속하고 있다. 또 미국 정치권의 극한 대결로 오는 30일 시한인 예산안 협상이 타결되기 어려워 정부 셧다운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여기에 팬데믹을 이유로 지난 3년간 유예했던 대학 학자금 빚 상환이 다음 달부터 다시 시작된다.
로이터는 “UAW 노조 파업이 장기화하고, 연방정부가 셧다운되면 심대한 경제적 파장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올해 4분기 경제 성장이 예상보다 더 둔화할 수 있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소비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노조 파업으로 자동차 가격이 오르면 연준이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향해 치솟고 있고, 미국 내 휘발윳값이 올라 물가를 자극하고 있다. 미국 경제가 이에 따라 소트프랜딩이 아니라 침체에 빠질 수도 있다고 이 통신이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이날 미국의 소프트랜딩 시나리오가 전개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실업률의 급격한 상승이나 경기 침체 없이 인플레이션 2%대 목표를 달성하려면 최소 네 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WSJ가 지적했다. 우선 연준이 고금리를 장기간 유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경제가 과열되지 않아야 한다고 이 신문은 강조했다. 에너지 가격 급등 차단과 금융시장의 안정 등 나머지 조건도 충족돼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컨설팅업체 앤더슨 이코노믹 그룹은 자동차 3사 근로자들이 10일간 파업하면 미국 경제 손실 규모는 50억 달러(약 6조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UAW에 앞서 미국 영화의 중심지인 할리우드에서 장기간 파업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작가조합(WGA)이 이미 5월부터 파업을 시작했고, 배우·방송인노동조합(SAG-AFTRA)이 7월부터 파업에 동참했다. 이에 따라 워너브러더스는 올해 매출액이 최대 5억 달러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의회가 내년도 예산안 협상에 나섰지만, 현재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이 공화당 소속 강경파 의원들의 반대에 부닥쳐 쉽사리 중재안을 내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 2024년 회계연도 예산이 다음 달 1일부터 적용된다. 그전까지 의회가 내년도 예산을 통과시키지 못하면 연방정부의 업무가 중단된다. 연방정부가 셧다운되면 수십만 명의 연방정부 공무원이 당장 급여를 받지 못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여기에 보수파가 우세한 미국 대법원이 지난 6월 30일 4300억 달러(약 567조원)에 달하는 학자금 대출 탕감 계획에 제동을 걸어 미국 경제에 후폭풍을 몰고 왔다. 팬데믹으로 지난 3년간 학자금 대출 원리금과 이자 상환이 중단되면서 미 소비자들은 이 돈으로 주택 임대료, 자동차 할부금 등을 갚았고, 남는 돈을 저축하거나 소비에 사용했다. 그러나 다음 달부터 학자금을 대출했던 4400만 미국인들이 다시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한다. 웰스파고에 따르면 이들은 앞으로 매달 평균 210~314달러를 학자금 대출 원리금과 이자 상환 자금으로 따로 떼어놔야 한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