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력만 따져도 비교 불가할 정도로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오히려 전 세계의 관심은 전쟁이 어떻게 끝나든 하마스의 본거지인 가자지구를 어떤 식으로 통치하느냐에 모아져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번 전쟁을 계기로 전쟁까지 발발할 정도로 극히 불안정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를 ‘2국가 체제’로 안정화시키는 방안이 다시 거론되면서 벌써부터 주목받고 있다.
서방국들 사이서 급부상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2국가 체제’ 해법
2국가 체제 해법이란 버락 오마바 미국 행정부 시절 처음 제기된 해법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모두 거부하면서 현실화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이 터지면서 팔레스타인을 독립국가로 인정하는데 국제사회가 합의하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서로 이웃한 독립국가로서 공존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 2국가 해법이 다시 관심을 받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전쟁이 끝나더라도 (공존에 관한) 전망이 있어야 한다”면서 “미국의 입장은 2국가 해법”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이번 전쟁이 끝난 뒤 2국가 체제를 수립해야만 지속적인 평화 체제를 이룰 수 있다며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에 가세하고 있다.
미국 유력 일간 뉴욕타임스도 “가자 전쟁을 계기로 그동안 비현실적 방안으로 간주돼왔던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을 통해 중동평화를 달성한다는 2국가 건설 방안이 새롭게 힘을 받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그러나 서방사회의 일방적인 노력만으로 2국가 해법이 현실화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팔레스타인 주변인 아랍국가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언감생심일 수 밖에 없는 방안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행보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전쟁 발발 후 사우디-이스라엘 외교 정상화 협상 ‘물거품’ 분위기
사우디에 시선이 집중되는 첫째 이유는 아랍 이슬람권의 맏형 격이자 수니파의 맹주라서다.
둘째 이유는 이번 전쟁이 터지기 직전까지 사우디가 미국의 중재 속에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 정상화에 한참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중동의 오랜 숙적으로 통해왔던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서 고위급 교류까지 구체화됐었다.
하이 카츠 이스라엘 관광부 장관이 관광 관련 유엔 기구 회의에 참석한다는 명목으로 지난 9월 사우디를 방문한 것이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스라엘 정부 각료가 사우디를 공식 방문한 것은 전례가 없었던 일이라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백악관은 직접적으로 두 나라의 관계 정상화를 기대한다는 입장까지 밝히고 나섰다. 사우디는 지난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뒤 대다수 아랍국들과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며 이스라엘을 적대시해왔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주도로 이스라엘이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등 일부 아랍국가들과 관계를 정상화한데 이어 사우디까지 관계 정상화에 나설 수 있다는 매우 희망적인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전쟁이 터지면서 평화를 모색하는 분위기가 하루아침에 반전됐다.
전쟁 발발 직후 사우디가 그동안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진행해 오던 수교협상, 중동 평화를 위해 매우 중요한 협상을 중단하겠다는 뜻을 미국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다만 파이살 빈 파르한 사우디 외교부 장관이 최근 사우디 리야드에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은 입장을 전달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관측됐으나 공식적으로 확인된 적은 아직 없다.
사우디 국방 장관의 방미가 시사하는 점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의 최근 발언에 시선이 쏠리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커비 조정관은 지난달 3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사우디는 가자지구의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에 여전히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백악관 고위관계자의 이같은 발언은 이스라엘과 사우디 사이에서 진행됐던 수교 협상이 아직 완전히 물거품으로 끝난 것은 아님을 강하게 시사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커비 조정관의 발언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칼리드 빈 살만 사우디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30일 워싱턴DC를 방문해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 등 바이든 행정부의 고위 관계자들을 잇따라 만났거나 만날 예정이라서다.
칼리드 장관이 이 미묘한 시점에 미국을 방문한 것이 이목을 끌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과거 주미 대사를 지낸 바 있는데다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동생이기 때문이다.
백악관은 실제로 칼리드 장관이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과 30일 만난 자리에서 가자 전쟁 이후 평화체제 수립 방안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칼리드 장관과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번 회동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ㅣ에 지속가능한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데 입장을 같이 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백악관은 “이는 그동안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위해 미국과 사우디 사이에서 최근 진행돼온 일의 연장”이라고 설명해 사우디와 이스라엘 간 관계 정상화를 전제로 사우디를 매개로 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방안이 여전히 추진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