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업계 관계자들은 현재 흐름이 계속된다면, 유럽 석유화학 공장의 20% 정도가 향후 5년 안에 문을 닫을 것으로 예상한다.
유럽의 석유화학 산업은 에너지 집약적 산업으로, 유럽은 천연가스 가격이 미국의 5배 이상으로 비싸 국내 생산 비용이 국외 생산 비용보다 높다.
이에 유럽은 석유화학 산업의 기초 원료로 플라스틱, 합성 고무, 섬유, 화학 약품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데 사용하는 에틸렌을 유럽에서 직접 생산하기보다는 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이는 유럽의 석유화학 기업들이 에틸렌 생산을 줄이고, 미국에서 에틸렌을 수입해 단가를 맞추고 적은 이익이라도 남기려고 한다.
유럽의 석유화학 기업이 미국에서 에틸렌을 구입하게 되면, 유럽 내의 경제활동은 큰 손실을 입게 된다.
유럽연합(EU)의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석유화학 제품에 대한 수요도 감소하고, 신규 투자를 어렵게 하는 요인들이 곳곳에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올해 유럽의 나프타(에틸렌 원료) 소비량은 48년 만에 최저치인 3420만t으로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코로나 이전 수준보다 약 18.5% 정도 감소한 수치다.
이런 변화로 유럽의 화학제품 무역수지도 악화되고 있다. 유럽의 화학제품 무역수지는 2022년 25억 달러로 크게 악화됐다.
이에 유럽 석유화학 기업들은 생산단가가 비싸지자 생산량을 줄이거나 아예 공장을 폐쇄하고 아시아 지역으로 투자를 돌리고 있다. 아시아는 천연가스 가격이 유럽보다 훨씬 저렴하고 환경 규제도 유럽에 비해 느슨하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석유화학 기업인 바스프(BASF)는 최근 중국 잔장에 100억 유로 규모의 새로운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이는 바스프가 유럽 외 지역에 단일 투자한 가장 큰 규모다. 이는 유럽 신규 투자를 중단하고 아시아로 생산 거점을 이동하는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유럽 석유화학 산업의 위기는 유럽 경제에도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석유화학 산업은 유럽에서 직간접적으로 약 100만 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으며, 연간 약 2000억 유로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큰 석유화학 시장 중 하나로, 유럽인들은 평균적으로 연간 약 150㎏의 플라스틱을 소비하는데, 이는 세계 평균인 60㎏의 두 배 이상이다. 플라스틱은 식품 포장부터 건축 자재, 휴대폰, 옷까지 어디에나 사용된다.
또한,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도 우려가 제기된다. 석유화학 산업은 원유와 천연가스를 기반으로 하는 산업으로, 유럽의 에너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
특히,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조정은 일자리의 축소를 의미하며, 신규 일자리가 마련되지 않을 경우 경제적인 문제를 떠나 정치적인 문제로 변질될 우려도 있다.
이런 이유로 유럽은 이 산업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보고, 유럽연합(EU)은 석유화학 산업의 몰락을 막기 위해 정책적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우선, 천연가스 가격 상승 문제 해결이다. 유럽은 천연가스 수입의 40% 이상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한 상황에서, 유럽은 천연가스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가격 상승을 완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음, 석유화학 산업의 친환경 전환을 지원하고 있다. 유럽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석유화학 산업도 친환경 전환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
끝으로, 석유화학 산업의 통합을 추진하려고 한다. 현 유럽 석유화학 산업은 수많은 기업이 경쟁하는 구조다. 통합을 함으로써 비용을 절감하고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EU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석유화학 산업의 위기를 완전히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있다. 천연가스 가격 상승이 구조적인 문제로 유럽산 석유화학 제품의 경쟁력을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유럽의 석유화학 산업이 경쟁력을 다시 회복하려면 에너지 가격 안정화와 탈탄소화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