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슬람 국가들 사이에 이스라엘에 대한 대응에 견해 차이와 긴장감이 아직 존재하지만, 가자 학살이 중동의 지정학적 질서와 안보 구조에 주는 영향은 상당한 파괴력을 가질 수도 있다.
이는 유가 상승, 테러 위협 증가, 난민 문제 악화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으며, 특히 이번 전쟁이 중동에서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개선, 미국이 아닌 중국이나 러시아와 교감을 더 두터이 하는 장기적이고 기본적인 국제 질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이 중동에서 점차 발을 빼는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가 그 공백을 채우려는 움직임이 관찰되어 왔다. 이는 미국이 아닌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관계가 더 강화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란은 이미 러시아와 가자 대학살 문제를 협의하기 시작했다.
가자지구의 학살과 이란-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지난 10월 7일 하마스 공격 이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폭격을 가하면서 가자지구에서 최소 2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됐다.
특히 사망자 가운데 어린이가 많아 '대학살'이라는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이스라엘 군사작전이 테헤란-리야드 관계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두 가지 주요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중동에서 테헤란의 행동과 야망이 촉발한 각종 갈등과 충돌, 전쟁이 야기한 혼돈과 희생에 대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두 정부가 즉각적인 휴전을 요구하고 가자지구의 인구와 기반 시설에 대한 이스라엘 군사작전을 함께 비판한 점이다. 중동 지역의 국가들이 전례 없는 파괴를 규탄하고 평화와 안정을 보존하려는 결의를 통해 ‘범이슬람’ 연대가 형성되면서 두 나라 사이를 더 가깝게 만들고 있다.
최근에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외교관계를 회복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들 국가는 중동 지역에서 주요 라이벌로서, 서로를 지역 지배를 추구하는 위협적인 세력으로 간주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잠시 반목(反目)을 거두고 손을 잡았다. 이들의 관계 개선은 중동 지역의 정치적 균형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다만,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는 가자 위기에 대한 우려를 공유하고 있지만, 리야드는 왕국과 아랍 이웃 국가에 잠재적으로 해를 끼칠 수 있는 방식으로 이 분쟁을 이용하는 테헤란의 의도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이란과 사우디는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그리고 가장 노골적으로는 예멘을 포함해 중동 전역의 양쪽 종교 분파 경쟁 세력을 지원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기습 공격 이후 이란에 경제 투자를 전제로 가자지구 분쟁을 진정시키는 데 힘을 보태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이란은 이 분쟁을 이용해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고, 이에 사우디와 그 이웃 국가에 잠재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란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후티 반군의 홍해에서 이스라엘과 연계된 선박 공격은 중동은 물론 전 세계 경제에 피해를 주고 있다. 이로 인해 아시아에서 유럽까지 왕복하는 비용이 기존보다 약 30%인 100만 달러가 추가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석유 수출국에 큰 불이익이 된다.
이란과 하마스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역사적 평화 협정이 점점 더 현실화되는 것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또한,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모두 가자지구의 휴전을 원하지만, 오랫동안 포위된 지역의 전후 통치와 관련해 두 나라는 서로 다른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이란은 전후에 가자지구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자치를 지지하고 이스라엘의 관여를 반대한다. 반면,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여전히 바라고 있어 이 문제에 대해 이스라엘 입장을 배제하지 않는 등 이란보다는 신중한 입장이다.
이란과 사우디는 가자 전쟁으로 앙숙이었던 관계가 개선될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되어, 양국 고위 관리들이 같이 모여 회담을 하는 등 실질적인 진전도 있었지만, 여전히 세부 사안을 들여다보면 이견이 존재한다.
가자지구 휴전, 이스라엘 군사작전 반대, ‘범이슬람’ 연대 형성에 공통된 견해를 보이지만, 가자지구 전후 통치, 분쟁 악용 우려,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평화협정에 대해서는 여전히 견해차가 존재해 갈등은 당분간 이어질 수도 있다.
이란이 러시아와 혹은 중국과 협력해 핵개발 속도를 높일 경우, 중동지역 사태는 다시 혼돈 속으로 빠져들 수 있고, 사우디도 핵개발에 나설 것이다. 중동의 질서 변화는 국제 에너지 가격의 변동 폭을 키울 수 있을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