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 로이터통신, CNN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순방 일정을 마무리하며 “미국 경제를 다시 강하고 부유하게 만들겠다는 내 공약이 빠르게 이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백악관은 이번 순방에서 체결된 각종 협정의 총 규모가 2조 달러를 웃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로이터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실제로 공식 발표된 계약들의 총액은 약 7000억 달러로 이 가운데 대부분은 항공기·방산 장비 구매를 포함한 비구속적 양해각서(MOU)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예컨대 사우디아람코는 미국 기업들과 90억 달러(약 12조2000억원) 규모의 인공지능(AI) 인프라 구축 관련 MOU를 34건 체결했다고 발표했지만 이들 대부분은 구체적인 금액조차 포함되지 않았다.
저스틴 알렉산더 칼리지 이코노믹스 대표는 “예상 지출이 실제 지출로 둔갑했고 대부분의 확정 계약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었어도 체결됐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카타르는 이번 순방에서 미국 대통령의 첫 국빈 방문을 받았으며 960억 달러(약 130조6000억원) 규모의 보잉 항공기 210대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이와 함께 자국 국부펀드를 통해 향후 10년간 미국에 5000억 달러(약 679조5000억원)를 투자하겠다는 약속도 내놨지만 역시 구체적 계획은 없는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카타르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방위 약속도 명확히 했다. 그는 “이 나라는 우리가 지킨다. 여러분은 이란과 너무 가까이 있다. 발걸음 몇 걸음이면 국경을 넘을 수 있는 거리”라고 말했다.
UAE는 트럼프 대통령과 5기가와트(GW) 규모의 AI 슈퍼컴퓨터 단지를 아부다비에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이 단지는 세계 주요 AI 인프라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시설 중 하나로 꼽히며 이를 위해 약 250만개의 고성능 반도체가 필요하다고 미 랜드연구소 소속 정보 과학자 레나르트 하임은 분석했다.
CNN은 “UAE는 이번 순방에서 미국의 최첨단 AI 반도체 수입 경로를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진전을 이뤘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 수출 제한 완화를 위한 ‘경로’를 열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사우디는 핵심 목표였던 미국과의 민간 핵협력 합의는 얻지 못했지만 시리아와의 외교 회복 국면을 주도하는 외교적 성과를 거뒀다. 트럼프 대통령은 순방 중 시리아 대통령 아흐마드 알샤라와 회동했으며, 이 자리에서 시리아에 대한 제재 해제를 발표했다. 이는 걸프 국가들이 시리아 재건에 적극 투자할 수 있는 길을 여는 조치로 평가된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이번 순방에서 제외하고 사우디·카타르·UAE 정상들과만 만남을 가져 중동 내 전통적 동맹인 이스라엘과의 거리감도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은 이슬람에 대한 기존 발언과는 달리 아부다비에서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모스크를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WSJ는 “트럼프 대통령의 걸프 방문은 이들 국가의 체면을 살려주며 미국과의 전략적 관계를 공고히 했지만 이스라엘은 뒷전으로 밀렸다”며 “가자지구 전쟁, 이란 핵 협상, 시리아 제재 해제 등 여러 이슈에서 트럼프와 네타냐후 총리 간 입장 차가 표면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