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DA 승인 약물 '트라메티닙·라파마이신' 병용 상승 효과 확인
세포 성장·노화 신호 동시 조절… 수명 연장 넘어 건강 개선까지
세포 성장·노화 신호 동시 조절… 수명 연장 넘어 건강 개선까지

주목받는 약물은 '트라메티닙(trametinib)'과 '라파마이신(rapamycin)'이다. 이들은 이미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아 실제 암 치료 현장에서 사용하는 약물이다. 연구팀은 이 두 약물을 각각 따로 투여했을 때와 함께 투여했을 때의 효과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트라메티닙만 투여했을 때 쥐의 수명은 약 5~10% 늘어났고, 라파마이신만 투여했을 때는 15~20%가량 수명이 늘어났다. 주목할 점은 두 약물을 함께 투여했을 때다. 이 경우, 쥐의 수명은 최대 29~30%까지 늘어나, 각 약물을 따로 사용했을 때보다 훨씬 강력한 상승 효과를 나타냈다. 이러한 결과는 단순히 두 약물 효과의 합을 넘어선 것으로, 약물 조합이 특별한 몸속 반응을 만들어낸다는 점을 시사한다.
린다 패트리지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및 독일 쾰른 막스 플랑크 노화생물학 연구소 교수(유전학자, 공동 주저자)는 "쥐에서 발견한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인간 수명이 늘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연구하는 약물들이 사람들이 노년기에 더 오랫동안 건강하고 질병 없이 지내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연구 뜻을 설명했다.
◇ 세포 성장·노화 경로 동시 공략, 작용 원리는?
그렇다면 이 약물들은 어떻게 생명 연장 효과를 내는 것일까? 트라메티닙과 라파마이신은 우리 몸속 세포들이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방식인 '세포 신호 전달 경로'에 작용한다. 이 신호 전달 경로는 세포의 성장, 분열, 사멸 같은 생명 현상 전반과 노화, 그리고 암 같은 질병 발생에 핵심 역할을 한다.
라파마이신은 'mTOR'라는 단백질 기능을 억제한다. mTOR 단백질은 세포 성장과 분열을 조절하는 중요한 스위치와 같은데, 이 단백질이 지나치게 활성화하면 암 발생은 물론 노화 촉진과도 연관된다. 라파마이신은 이 mTOR 활동을 줄여 세포 성장을 늦추고 수명을 늘리는 효과를 낸다. 실제로 라파마이신은 이전부터 다양한 동물 실험에서 수명 연장 효과가 입증됐다.
트라메티닙은 'RAS/Mek/Erk'라는 또 다른 세포 안 신호 전달 경로를 방해한다. 이 경로는 주로 세포 증식, 즉 세포 수를 늘리는 과정에 관여하며, 특히 암세포가 빠르게 자라고 퍼져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트라메티닙은 이 경로를 차단해 암세포 성장을 억제하는 항암 효과를 나타낸다. 이전 연구에서 트라메티닙이 초파리 수명을 늘리는 효과를 관찰했지만, 포유류에서 라파마이신과 함께 사용해 노화 연구를 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팀은 쥐의 조직 샘플을 채취해 유전자 활동을 분석한 결과, 두 약물을 함께 사용했을 때 각 약물을 따로 사용했을 때와는 다른 독특한 유전자 활동 변화가 나타남을 확인했다. 이러한 발견은 두 약물 조합이 단순히 각각의 효과를 더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생화학 반응을 통해 수명 연장과 건강 개선 효과를 크게 높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 인간 적용 가능성과 '노화 방지제' 개발 전망
물론 이번 연구 결과가 곧바로 인간 수명 연장으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연구팀도 "쥐는 인간이 아니다"라며 지나친 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기존 약물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인간 대상 임상시험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희망적이다.
과학자들은 이런 약물을 '노화 방지제(geroprotectors)'라는 개념으로 부른다. 노화 방지제는 단순히 특정 질병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노화 자체 속도를 늦추고 노년기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종류의 약물이다. 이번 연구에 사용한 트라메티닙과 라파마이신 조합은 이런 노화 방지제 개발의 유망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제바스티안 그뢴케 막스 플랑크 노화생물학 연구소 선임 박사후 연구원(공동 주저자)은 "트라메티닙은 특히 라파마이신과 함께 사용할 때 노화 방지제로서 임상시험에서 시험할 좋은 후보다"라며, "우리 결과가 다른 연구자들에게 받아들여져 인간에게 시험되기를 바란다. 우리 초점은 동물 모델에서 트라메티닙 사용을 최적화하는 것"이라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 넘어야 할 산: 부작용 최소화와 임상 연구
연구팀은 앞으로 트라메티닙의 가장 좋은 투여량과 투여 방법을 찾아내고, 쥐 실험에서 나타난 체중 감소나 간 손상 같은 부작용을 줄이는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린다 패트리지 교수 역시 "앞으로 몇 년 동안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추가 연구는 이런 약물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유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누가 혜택을 볼 수 있는지를 명확히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록 갈 길은 멀지만, 이번 연구는 암 치료제가 노화라는 인간의 근본 생명 현상에 개입해 건강 수명을 늘릴 수 있다는 흥미로운 실마리를 제공했다. 과학자들이 노화 비밀을 풀고 건강 장수를 이루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이번 약물 조합 연구가 그 여정에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