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계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트럼프 임기를 넘어 미국 대학의 구조와 역할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1일(이하 현지시각) BBC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26일 하버드에 지급되는 3억달러(약 4120억원)의 연구비를 직업훈련학교로 전환하겠다고 밝혔고 이튿날에는 백악관이 연방정부 기관에 하버드와의 1억달러(약 1370억원) 규모 계약을 재검토하고 대체 공급처를 찾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어 28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하버드는 우리나라를 존중하지 않고 있다. 점점 더 깊은 구렁텅이로 빠지고 있다”며 “하버드는 스스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외국인 유학생 비자 중단 조치와 수십억달러 규모의 연구비 삭감 등도 연이어 단행됐다.
하버드 측은 연방법원에 잇따라 소송을 제기해 일부 조치를 중단시키고 있으나 이미 미국 전역의 대학사회는 흔들리고 있다. 전미대학교수협회 회장인 그레그 울프슨은 “지금 매일같이 벌어지는 일들은 사람과 문화를 바꾸고 있다”며 “대학의 정치적 중립성과 학문 자유가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는 하버드의 반이스라엘 시위 대응이 직접적 계기로 작용했다. 지난해 12월 당시 총장이던 클로딘 게이는 미 하원 청문회에서 ‘유대인 학살 구호가 규율 위반인지’ 묻는 질문에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답하며 거센 비판을 받았고 이후 사퇴했다. 백악관은 “하버드가 반유대주의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며 문제를 공식 제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부터 “좌편향된 대학이 미국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해왔으며 대선 유세 때는 반유대주의 선전을 하는 대학의 연방 지원과 인증을 박탈하겠다고 공언했다. 재임 후 이 공약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하버드가 핵심 타깃이 된 셈이다.
실제로 프린스턴대, 펜실베이니아대 등도 연구비가 대거 동결됐고 연방교육부는 10개 대학을 대상으로 반유대주의 조사를, 52개 대학을 대상으로 인종 기준 불법 프로그램 여부 조사를 벌이고 있다.
미국기업연구소 릭 헤스 선임연구원은 “엘리트 대학이 민주당의 상징이 되면서 반감이 커졌다”며 “트럼프의 전략은 기존 민주당 정부들이 쓰던 정책 수단을 훨씬 더 공격적으로 활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것은 진화이자 혁명”이라고 표현했다.
하버드는 법원 대응 외에도 대외 메시지 발신에 나섰다. 앨런 가버 총장은 NPR과 인터뷰에서 “하버드는 미국보다 오래된 기관이며 언제나 미국을 섬기기 위해 존재해왔다”며 “교육과 진실에 대한 약속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맞서 “하버드는 싸움을 원하고 있다. 똑똑한 척하려고 하지만 결국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지지층은 대부분 그의 조치에 찬성하는 반면, 일반 유권자 다수는 대학에 대한 자금 중단에 부정적인 의견을 보인다고 BBC는 전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