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B 발명가 등 학생 출신 이민자들이 美 기술혁신 견인...OPT 프로그램 폐지 검토

월스트리트저널은 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온 이민자들이 USB포트를 비롯한 수많은 혁신 기술을 창조해온 역사를 고려할 때, 이번 정책 변화가 미국의 기술 경쟁력에 치명타를 줄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지난 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실제로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샤이 번스타인 교수와 공동 저자 4명이 2022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이민자들은 1990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 특허의 23%를 작성했다. 또 다른 연구 결과 이민자들은 미국 내 10억 달러(약 1조3500억 원) 규모 신생기업의 절반 이상을 설립하거나 공동 설립한 것으로 나타났다. 엔비디아, 알파벳, 테슬라의 초기 설립자들도 이민자 출신이거나 주요 역할을 담당했다.
◇ USB 발명가부터 배터리 혁신까지, 유학생 출신들의 성과
이러한 혁신의 대표 사례가 바로 아자이 바트다. 1981년 인도를 떠나 뉴욕 시립대학교에서 대학원 학위를 취득한 그는 범용직렬버스(USB)를 발명해 현재 수십억 명이 사용하는 기술의 아버지가 됐다. 바트는 130개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 5월 그의 과학 업적을 인정받아 인도 대통령 자유 훈장에 상응하는 훈장을 수여받았다.
바트는 "아버지는 제가 가는 걸 정말 원치 않으셨다"면서도 "이곳은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나라였고, 모두가 환영해 주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제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미국에서 받은 기회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바트는 1991년 아내와 딸이 프린터 때문에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USB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당시 프린터나 키보드 같은 외부 기기는 컴퓨터의 특정 포트에 꽂는 독특한 케이블과 함께 제공됐는데, 그 중 일부는 모양이 비슷하고 특정 브랜드와만 호환됐다. 이렇게 복잡하게 얽힌 케이블은 컴퓨터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사용하기 어려웠다. 바트가 최근 입사한 인텔의 상사는 USB에 회의적이었지만, 그에게 작업할 시간을 주었다. 1년 반 후 회사 경영진은 바트의 설득에 동의했고, 바트는 마이크로소프트, IBM, HP, 그리고 결국 애플을 포함한 제조업체들로 구성된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보편적 표준에 합의하기 시작했다.
소련 출신 재료과학자 글렙 유신도 마찬가지다. 1999년 F-1 비자로 미국에 온 그는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실라 나노테크놀로지스를 공동 창립했다. 이 회사는 투자자들로부터 13억 달러(약 1조 7600억 원) 이상을 모금했고, 캘리포니아주 알라메다와 워싱턴주 모세스 레이크에 약 400명의 직원을 고용하며 배터리 개발 분야에서 획기적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유신은 "유럽에는 보이지 않는 천장이 있었다. 이민자들이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장벽이 있었다"고 말했다.
독일 출신 안젤리카 프레첸은 1998년 하버드 대학교 박사후 연구원으로 왔다가 과민성 대장 증후군 치료제 선두주자인 린제스(Linzess) 개발을 주도했다. 이 회사는 최대 500명의 직원을 고용하는 기업으로 성장했으며, 전국의 제조업체와 공급업체, 연구소 등에서 수백 명의 추가 고용을 창출했다.
◇ OPT 프로그램 폐지 검토로 인재 유출 우려 가중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정책은 이러한 성공 사례들의 재현을 어렵게 만들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시민권 이민국 국장으로 지명한 조셉 에들로는 지난달 21일 인준 청문회에서 "F-1 학생의 재학 기간 이후 취업 허가를 취소할 수 있는 규정을 마련하고 싶다"고 밝혔다.
현재 미국정책재단(National Foundation for American Policy)을 운영하는 스튜어트 앤더슨은 에들로가 제시한 변화가 선택실무훈련프로그램(OPT)을 사실상 폐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로 인해 많은 외국인들이 졸업 후 미국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유학생들에게 미국 대학의 매력이 상당히 약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제교육연구소(Institute of International Education)에 따르면 미국은 2023-24 학년도에 110만 명이 넘는 유학생을 수용했다. 2024 회계연도에 정부는 OPT 프로그램을 통해 외국인 졸업생 26만3000명의 임시 취업 신청을 승인했고, 5만2000명이 H-1B 취업 비자로 전환했다.
앤더슨이 2022년 실시한 연구에서는 스트라이프, 인스타카트, 에픽게임즈를 포함해 10억 달러 이상의 가치를 달성한 미국 신생기업 582개 중 319개를 이민자들이 설립하거나 공동 설립했다고 밝혔다. 이 중 거의 절반은 미국 대학에 유학했던 이민자들이 설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스타그램은 스탠퍼드 대학교 출신의 브라질인 마이크 크리거가 공동 설립했다.
앤더슨은 "많은 유학생들이 결국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기질에는 분명 위험 감수 성향이 있기 때문"이라며 "그들은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다른 나라에서 공부하기 위해 먼 길을 여행한다. 기업가 행동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5월 트럼프 행정부는 학생 비자 신청자들의 소셜 미디어 활동을 심사하기 위해 인터뷰를 중단하고 미국 대학에 재학 중인 중국 학생들의 비자를 '공격적으로 취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하버드 대학교의 외국인 학생 입학을 금지하려 했으나, 이 명령은 연방 판사에 의해 집행이 중단됐다.
지난 3일 밤 트럼프 행정부는 쿠바, 베네수엘라, 라오스 등 12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을 금지했고, 이들 국가 국민의 학생 비자 신청도 금지했다.
지난달 29일 뉴스맥스와의 인터뷰에서 JD 밴스 부통령은 외국인 유학생 감소가 미국의 기술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를 일축했다. 밴스는 '미국 시민들이 위대한 일을 할 재능이 없고, 이런 일을 하려면 외국인 하인이나 교수들을 수입해야 한다는 생각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외국인 학생 비자와 관련 남용에 대한 단속은 '미국 시민들이 진정으로 번영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달 "하버드나 다른 대학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외국인 학생들이 있기 때문에 입학이 불가능하다"며 "저는 그 외국 학생들이 우리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하버드대가 외국인 유학생 수를 전체 등록 학생의 15%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악관 대변인은 "하버드와 같은 소위 '엘리트' 교육기관들은 너무 오랫동안 과도한 수의 외국인 학생들을 받아들였고, 반유대주의 폭력이 캠퍼스를 휩쓸도록 방치해 왔다"며 "이는 유대인 학생들의 교육을 저해하고, 간첩 활동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키며,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트는 최근 고국 방문에서 많은 부모들이 이제 미국 대신 영국, 캐나다, 호주, 싱가포르 등으로 자녀들의 유학을 희망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그는 현재 환경이라면 자신의 아버지를 설득해서 미국 유학 허락을 받을 수 있었을지 의심스럽다며 "그가 나를 허락했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프레첸은 "만약 제가 지금 우리 젊은 학생들이 겪고 있는 것과 같은 역경에 직면했다면, 아마도 독일로 돌아가 제약 회사에서 정규직으로 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