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계인 기술을 다룬다는 소문 뒤에는 스텔스 전투기 등 극비 무기 프로그램을 감추기 위한 조직적 기만 작전이 있었으며 이는 냉전기부터 최근까지 이어져온 것으로 확인됐다며 WSJ는 이같이 전했다.
WSJ의 취재 결과에 따르면 미 국방부 산하 전담조직이 최근 수년간의 조사를 통해 미 정부가 외계 기술을 은폐해왔다는 주장의 상당수가 사실이 아니며 그 배경에는 군의 기밀 무기 프로그램을 보호하기 위한 ‘의도된 기만’이 있었다.
이번 조사는 지난 2023년부터 국방부 산하 '전영역 이상현상 해결실(AARO)'이 주도했다. 이 조직은 미 의회 명령에 따라 지난 2022년 신설됐으며 첫 책임자는 미사일·우주정보센터 출신 과학자 션 커크패트릭이었다. 그는 비밀예산을 배정받은 채 펜타곤 인근 사무실에서 약 30명의 직원과 함께 UFO 관련 역사 기록을 검토하고 수백건의 목격 보고를 분석했다.
커크패트릭이 주목한 사건 중 하나는 1980년대 네바다주 ‘에어리어 51’ 인근에서 벌어진 일이다. 당시 미 공군 소속 대령이 바 인근에 외계 비행물체처럼 보이는 사진을 제공했고 이 사진은 곧 현지 전설로 퍼졌다. 그러나 이 대령은 2023년 AARO 조사에서 “사진은 조작된 것이며, 실제 목적은 F-117 스텔스 전투기 시험 비행을 은폐하기 위한 기만 작전이었다”고 자백했다. 그는 “소련이 해당 기체를 포착할 가능성을 우려해, 차라리 외계에서 온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사례는 1980년대에 국한되지 않았다. AARO는 1950년대부터 미군이 UFO 괴담을 고의로 방치하거나 증폭시켜온 정황을 포착했다. WSJ은 "국방부가 외계인 존재를 은폐하려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괴담을 퍼뜨림으로써 자국민을 상대로 기만 작전을 벌인 셈"이라고 전했다.
특히 공군은 외계 기술을 다루는 것으로 위장된 허위 기밀 프로젝트 ‘양키블루(Yankee Blue)’를 장교들에게 소개하고, 입막음을 위해 ‘누설 시 처벌’이라는 경고까지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프로그램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지만, 수백 명의 군 관계자들이 수십 년 동안 이를 실제로 믿고 침묵해왔던 것으로 조사됐다. 국방부는 이 관행이 2023년까지도 일부 이어져 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같은 해 봄 관련 관행 중단을 명령한 바 있다.
조사단은 또 1967년 몬태나주 핵미사일 기지에서 발생한 이른바 ‘UFO 출현 후 미사일 무력화’ 사건도 재조사했다. 당시 해당 기지를 지키던 로버트 살라스 전 공군 대위는 붉은 빛의 비행체가 기지 상공에 떠 있었고 이로 인해 10기의 미사일이 작동을 멈췄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AARO는 “실제 원인은 당시 핵미사일의 전자기파(EMP) 내성 실험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미군은 이를 외부에 알릴 경우 소련이 미국의 취약성을 파악할 수 있다고 판단해 사건을 은폐했고 당시 장병들에게는 외계 개입이라는 설명 없이 입막음을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수 고프 미 국방부 대변인은 WSJ에 “AARO가 외계 관련 가짜 기밀자료와 장난성 문건을 확보했으며 이 내용은 곧 발표될 두 번째 역사 보고서에 포함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내용을 포함하지 않은 2024년 보고서는 ‘조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커크패트릭 전 국장은 퇴임 전 정보당국 수장인 애브릴 헤인스 국가정보국(DNI) 국장에게 직접 이같은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헤인스 국장은 “그렇다면 미국에 외계 기술 은폐 프로그램이 있다는 집단적 믿음은 이 같은 장기간의 허위 정보에서 비롯된 것이냐”며 충격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미 의회 내에서는 초당적 ‘UAP(미확인 이상현상)’ 조사 코커스가 결성돼 관련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공화당의 낸시 메이스 하원의원은 지난해 청문회에서 국방부 보고서에 대해 “수학자는 아니지만 이건 계산이 맞지 않는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번 보도는 WSJ가 진행한 복수의 전·현직 군 관계자 및 과학자, 계약업체 관계자 등 24명에 대한 인터뷰와 수천 쪽에 달하는 내부 문건, 이메일, 녹음 파일 등을 바탕으로 작성됐다. WSJ는 “정부가 스스로 퍼뜨린 괴담이 결국 그 정부의 고위 관료들마저 믿게 만드는 ‘거울의 미궁’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