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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해저 케이블 보안과 심해 채굴 정책 강화로 국제 해저질서 변화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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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해저 케이블 보안과 심해 채굴 정책 강화로 국제 해저질서 변화 우려

트럼프 행정부, 4개월간 130건 넘는 행정명령 발표...6월 말 해저광물 허가 결정 주목받아
한 작업자가 버지니아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브라질로 운송하기 위해 15,000파운드의 해저 케이블을 연결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한 작업자가 버지니아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브라질로 운송하기 위해 15,000파운드의 해저 케이블을 연결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미국이 해저 케이블 보안과 심해 채굴 정책을 앞세워 해양 지배력 강화에 나서면서, 국제 해저질서 변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올해 들어 해양 전략, 에너지, 핵심 광물 등 세 분야에서 130건이 넘는 행정명령을 내리며 미국 중심의 해양·해저 정책을 본격화했다.

이런 정책 변화는 국제해저기구(ISA)와 미국 우방국들이 "심해 채굴은 해저질서를 교란한다"며 일시 중지를 요구하는 등 국제적으로도 큰 파장이 예상된다. 본 보도는 로위연구소(lowyinstitute.org)에서 10(현지시각) 해양 안보, 에너지, 국제법 분야에서 제공한 정보를 바탕으로 지적했다.

◇ 해저 케이블 보안 강화와 조선업 재건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49'미국의 해양 지배력 회복' 행정명령을 발표하며 "국내 해양산업을 활성화하고 재건하는 것이 미국의 정책"임을 분명히 했다. 이 명령은 조선업과 해양광물 개발에 여야 모두의 지지를 받으며 추진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양 행동 계획을 오는 115일까지 각 기관에 전달하도록 지시했다.
미국 정부는 해양산업 재건을 통해 조선업뿐 아니라 해저 케이블 수리와 유지보수 선박 등 해양 인프라 역량도 키울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통신 인프라 수요가 늘면서 해저 케이블 설치와 수리 선박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9년 처음 설립됐다가 2024년 바이든 행정부에서 자금 지원이 중단된 케이블 보안 함대(CSF)를 다시 도입할지 검토하고 있다. 조선업계와 해양산업계는 미국 정부의 정책 변화가 조선업 재건과 해저 케이블 보안 강화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일본, 한국 등 우방국과 협력이 확대되면 해저 케이블 수리선 수요가 완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지난해 11월 해저케이블 규칙 개정안을 마련하고, 그해 12월까지 법안 관련 의견을 받았다. 개정안은 EU 회원국 및 미국의 우방국에 신뢰할 수 있는 공급업체와의 협력을 강조하며, 중국산 해저케이블 사용을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텔레지오그래피에 따르면 매년 약 200건의 크고 작은 케이블 고장이 발생하는데, 지난해 말부터 대만 해협과 발트해 등지에서 고의로 해저케이블이 절단됐다는 의혹이 연달아 제기됐다. 배후로는 중국과 러시아 등이 거론됐다.

이와 관련해 유럽연합(EU)은 해저 케이블 보호를 위한 법적·정책적 조치를 강화하고 있으며, 나토(NATO)는 해저 인프라 방어를 신속 대응 과제로 지정했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자국 해저 케이블 보호를 위해 해군 및 경찰 해양 부대와의 협력 체계를 확대했다. 한국도 해저 케이블 보호를 위해 해군과 해양경찰의 협력을 강화하고, 관련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이처럼 해저 케이블 보안은 국제적으로도 핵심 안보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 심해 채굴 본격 추진과 국제적 논란

트럼프 행정부는 에너지 안보와 방위 산업 기반을 위한 핵심 광물 확보를 목표로 해저 채굴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난 424'미국의 해양 핵심 광물 및 자원 개방' 행정명령을 발표하며, 미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뿐 아니라 국제수역에서도 심해 자원의 탐사와 채굴을 촉진하도록 상무부와 기타 관계 부처에 지시했다. 특히 국제수역에서의 탐사 및 상업적 채굴 허가는 국가해양대기청(NOAA)이 신속히 처리하도록 지시했다.

미국은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을 비준하지 않아 국제해저기구(ISA) 회원국이 아니다. 그간 미국 기업은 캐나다, 태평양 섬나라 법인들과의 파트너십 등을 활용해 간접적으로 ISA 탐사권을 얻었다. 하지만 이번 행정명령은 ISA 승인 없이도 국제수역에서 자원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캐나다 벤쿠버에 본사를 둔 더 메털즈 컴퍼니(The Metals Company, TMC)는 클라리온-클리퍼턴 구역(CCZ) 25160면적에 대한 심해 채굴 허가를 신청했다. 이와 별도로 추가 탐사 면허 2건을 포함하면 총 199895에 이른다. CCZ에는 망간, 니켈, 구리, 코발트 등 배터리 생산에 필수적인 광물이 다량 포함된 다금속 단괴가 약 2100억t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구역은 세계 최대의 니켈 매장지 중 하나로 평가된다. TMC는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계약 면적의 최소 30%는 채굴에서 제외하고, 해저 퇴적물 상위 3cm만 교란하는 방식 등 환경 보호 방안도 제시했다.

워싱턴 싱크탱크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핵심광물안보 프로그램의 그레이슬린 바스카란 국장과 메리디스 슐츠 연구원은 공동저술에서 "이 행정명령은 미국의 심해 채굴 정책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조치"라며, "이번 조치는 단순히 국내 생산 확대가 아니라 '심해 영토화'를 본격화하려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심해 채굴은 해양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완전히 알려지지 않은 분야여서 논란이 많다. 일부 환경 단체들은 심해 채굴에 강력 반대하며 2024년 기준 캐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 멕시코, 오스트리아 등 32개국이 심해 채굴에 대한 일시 중지(모라토리엄)를 요구하고 있다. 국제해저기구(ISA)'2년 룰'에 따라 심해 채굴 규정을 마련해야 하지만, 규정 미비로 인한 법적 공백이 존재한다. 회원국 간 입장 차이도 커서, 심해 채굴 관련 국제 규범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행정명령은 국제 규범 체계를 무시하고 미국이 알아서 국제수역의 심해 채굴을 관리하겠다는 선전포고로 해석됐다.

6월 말 해저광물 허가 결정, 국제 해저질서 변화의 고비

트럼프 행정부의 해양 정책 변화는 해저 케이블 보안과 심해 채굴 등 두 축에서 국제 해저질서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오는 6월 말, 미국 정부가 더 메털즈 컴퍼니(TMC)의 해저광물 허가를 내릴지 여부가 주목받고 있다. 허가가 나오면 상업적 이익을 둘러싼 국내외 논란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미국은 자국 우선의 자원·에너지 공급망 정책을 내세우면서 겉으로는 미국 제조업 부활과 에너지 안보 강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핵심 목표는 중국 견제라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는 알래스카 프로젝트, 광산 개발 인허가 완화, 반도체 수출 통제 등과 함께 심해 채굴 촉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심해 채굴, 광산 개발 인허가 완화 등 트럼프 행정부 초기에 나온 일련의 조치에 반발했다. 미국에 대한 수출 통제, 광물 비축량 증가 등 대응에도 적극적이어서 미·중 간의 공급망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