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니 분담금 6000억 원 확정, 아세안 거점 'MRO 락인 효과'로 실리 확보
ETRI·민간 협력으로 질화갈륨(GaN) 소자 국산화…한화시스템 1호기 출고 완료
ETRI·민간 협력으로 질화갈륨(GaN) 소자 국산화…한화시스템 1호기 출고 완료
이미지 확대보기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 보라매가 인도네시아와의 공동개발국 지위를 유지하며 최종 분담금 조율을 마무리했다. 동시에 전투기의 두뇌로 불리는 능동위상배열(AESA) 레이더의 핵심 소자 국산화에 성공하며 양산 체제에 진입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국내 민간 반도체 기업의 원천 기술 협력으로 거둔 이번 성과는 기술 자립을 통한 수출 규제 부담 완화와 고정 후속 시장 확보라는 복합적 경제안보 성과로 풀이된다.
인니 분담금 6000억 원 최종 서명…MRO 가치 겨냥한 실리적 선택
인도네시아 현지 언론 보도와 정부 발표를 종합하면, 양국은 KF-21 개발 분담금을 기존 1조 6000억 원에서 6000억 원으로 축소 조정하는 개정안에 최종 서명했다. 이번 조율로 인도네시아는 유일한 공동개발국 지위를 유지하되, 분담금 삭감에 상응하는 '가치 이전' 방식에 따라 시제 5호기 1대와 관련 개발 자료 등을 양도받기로 합의했다. 다만 해당 시제기의 실물 인도 시점은 인도네시아 공군용 본 계약 체결 및 잔여 분담금 집행 속도와 연계될 전망이다.
일반적으로 전투기 사업에서 후속 군수지원 및 유지·보수·정비(MRO) 시장은 초기 총 사업비의 2~3배 규모에 달하는 고부가가치 영역이다. 인도네시아 국영 항공우주기업(PTDI)은 그동안 수송기와 헬기 생산 역량은 갖추었으나 초음속 전투기 제조 경험이 전무했다. 이에 따라 현지 전문 기술 인력들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파견되어 공정을 이수 중이다. 한국 방산업계는 아세안 최대 시장인 인도네시아 공군을 정치·산업적으로 '락인(Lock-in)'함으로써 향후 수십 년간 이어질 수조 원대 MRO 공급권을 선점하는 교두보를 확보했다.
ETRI·민간 협력으로 GaN 소자 내재화…APY-016K 레이더 1호기 출고
방위사업청 주치와 한화시스템 주관으로 블록1용 양산 1호기 출고를 시작한 'APY-016K' AESA 레이더는 향후 순차적으로 국산 GaN 소자를 전면 통합하며 완전한 공급망 자립을 완성할 계획이다. 이는 미 공군 주력기 F-35의 AN/APG-81 레이더를 벤치마킹하며 독자적인 미션 컴퓨터 소프트웨어 통합을 목표로 개발됐다.
APY-016K의 기술적 진보는 해외 선진국들이 기술 이전을 엄격히 통제하는 전략 물자인 질화갈륨(GaN) 기반 고출력 송수신 소자(칩)를 국산화했다는 점이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ETRI와 국내 반도체 전문 중소기업(웨이비스 등)이 협력해 국산화에 성공한 이 소자는 기존 갈륨비소(GaAs) 소자보다 전력 효율과 고온 안정성이 우수해 이론적 출력 밀도 측면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확보했다.
다만 GaN 적용 효과는 소자 자체의 수율 관리뿐 아니라 고열을 식혀주는 전력·냉각 시스템 설계 역량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하드웨어적으로는 일반적인 전투기급 표적(RCS 1㎡) 기준으로 전방 150km 이상에서 탐지할 수 있는 성능 대등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수십 년간 실전 운용 데이터를 축적해 온 미국 인프라를 단숨에 넘어서기는 어렵지만, 핵심 소자 자립화를 통해 소프트웨어의 독자 개량권을 쥐었다는 점 자체로 가치가 높다.
지정학적 구도 재편…해외 방산 시장 '수출 경제학' 전개
방산 업계는 KF-21의 자립화가 글로벌 전투기 시장의 수급 균형을 흔들 것으로 내다본다. 핵심 항공전자와 레이더 소자를 국산화함에 따라 무기 수출 시 미국의 국제무기거래규정(ITAR) 등 까다로운 기술 통제 부담을 낮춰 제3국 수출의 자율성을 넓혔기 때문이다. 다만 엔진 등 일부 미국산 구성품이 포함될 경우 개별 승인 변수는 여전히 남는다.
업계에서는 AESA 레이더의 독자 소프트웨어 자립으로 국산 전투기의 무장 통합 비용이 기존 대비 40% 이상 절감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는 미국산 무기 도입 시 까다로운 정치적 조건이나 기술 보안 검증을 피하고 싶어 하는 중동 및 동남아시아 국가들에게 KF-21이 매력적인 대체재로 부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고부가 부품 공급에 따른 마진 상승과 아세안 지역 거점망 구축
단기적으로 한화시스템은 오는 2028년까지 한국 공군용 KF-21 블록1 납품용 레이더 40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며 방산 부문 매출 고성장세를 유지할 전망이다. AESA 레이더는 통상 기체 가격의 약 10~15%를 차지하는 최고가 부품이다.
레이더 단가가 대당 100억 원에서 200억 원 사이로 추정되는 만큼, 국내 공급망 조달에 따른 양산 마진율은 기존 수입 부품 의존 시절보다 소폭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 공군에 총 120대 이상의 KF-21이 순차 공급되면 규모의 경제 효과도 한층 뚜렷해진다.
중장기적으로는 인도네시아 PTDI와의 공동 제조가 본궤도에 오르는 2030년 이후가 전환 국면이다. 현지 조립 생산 라인이 가동되면 동남아시아 현지 부품 조달 체계가 활성화된다. 이는 단품 수출에 그치던 한국 방산이 글로벌 공급망의 상위 단계이자 지역 거점형 공급망의 앵커(닻)로 진입함을 뜻한다.
다만 인도네시아 정부의 예산 집행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점과 미 록히드마틴이 F-35의 차세대 레이더(AN/APG-85) 업그레이드를 서두르고 있는 점은 한국 방산 기업들이 극복해야 할 과제다.
글로벌 방산 투자의 향방을 가늠하려는 투자자들은 향후 제시되는 핵심 지표를 바탕으로 리스크와 기획 요인을 입체적으로 복합 진단해야 한다. 핵심 기술의 내재화는 단순한 무기 수출을 넘어, 전투기 한 대가 아니라 수십 년짜리 장기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방산 플랫폼 산업으로의 전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투자자와 업계에서는 앞으로 네 가지 사안에 대해 점검할 필요가 있다.
첫째, KF-21 블록1 초도 비행 안정성 검증 지표다. 양산 초기 기체의 결함 여부와 비행 데이터 안정성은 향후 추가 수출 계약의 성패를 가르는 선행 지표다.
둘째, 인도네시아 분담금 잔액의 실제 입금 현황이다. 조정된 6000억 원의 재원 집행 속도는 양국 공동 제조 라인 가동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리스크 관리 기준이다.
셋째, 동남아 및 중동 시장의 잠재 고객사 확보 여부다. 미국산 무기의 기술 통제를 우회하려는 국가들의 신규 수주 동향은 국내 방산주의 장기 멀티플을 결정한다.
넷째, 미국의 수출 통제 정책 및 ITAR 규제 완화·강화 추이다. 미국 정부가 동맹국 핵심 부품 국산화 기조에 대해 취할 기술적 견제나 동맹 안보 전략 변화는 장기 공급망의 변수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