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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美 관세 위협에 켜진 '닥터 코퍼'의 경고등…엇갈린 신호에 시장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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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美 관세 위협에 켜진 '닥터 코퍼'의 경고등…엇갈린 신호에 시장 혼란

美 기업 '관세 회피' 선수요에 수입량 7배 급증…LME 재고는 급감
단기 가격 상승 이면의 '하락 위험'…中 수요 둔화·무역전쟁 변수 상존
미국의 관세 부과 위협에 '닥터 코퍼'로 불리는 구리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관세 발효 전 물량을 확보하려는 미국 기업들의 선수요로 런던금속거래소(LME) 구리 재고가 급감하며 가격이 급등하는 반면, 최대 수요처인 중국의 경기 둔화 우려도 커지면서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국의 관세 부과 위협에 '닥터 코퍼'로 불리는 구리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관세 발효 전 물량을 확보하려는 미국 기업들의 선수요로 런던금속거래소(LME) 구리 재고가 급감하며 가격이 급등하는 반면, 최대 수요처인 중국의 경기 둔화 우려도 커지면서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사진=로이터
'닥터 코퍼(Dr. Copper)'로 불리며 경기 선행 지표 역할을 해온 구리 시장이 미국의 관세 정책 불확실성으로 혼란에 빠졌다고 미 경제방송 CNBC가 지난 10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미국이 전체 구리 소비의 45%를 수입에 의존하는 가운데, 앞으로의 관세 부과를 우려한 기업들의 선수요(front-loading)와 중국발 수요 둔화 신호가 맞물리면서 시장 참여자들이 딜레마에 처한 모양새다.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폭넓게 쓰여 경기를 미리 가늠하는 척도가 된 구리 가격은 최근 상승세를 보였다. 구리 선물 최근월물은 지난 5월 초 이후 5% 넘게 올랐고, 올 초와 비교하면 9~11% 상승했다. 특히 미국 내 선물 가격은 30% 가까이 급등했으며, 국제 기준인 런던금속거래소(LME)와의 가격 격차는 톤당 1700달러(약 233만530원)까지 이례적으로 벌어졌다.

구리 관련 주식 역시 강세를 나타냈다. 세계적인 광산 업체 프리포트-맥모란의 주가는 지난 한 달간 11% 넘게 올랐고, 서던 코퍼 역시 9% 상승하며 시장의 기대감을 반영했다. 다만 이런 주가 강세가 단기 이익에 그칠 뿐 길게 보면 국제 무역전쟁 심화와 수요 위축으로 부정적 영향이 더 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관세 회피 선수요가 시장 왜곡"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지표와 달리 시장 내부는 복잡하다고 전문가는 분석한다. 모건스탠리의 에이미 가워 원자재 전략가는 "여러 요인이 구리 시장의 전망을 흐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새로운 관세가 발효되기 전에 구리를 미리 사들이는 미국 기업들의 선수요가 시장을 왜곡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한 달간 미국의 구리 수입량은 평소보다 7배 넘게 급증했다.

가워 전략가는 "구리는 서로 다른 시장 동력에 직면해 있다. 구리가 미국으로 이동하면서 런던금속거래소(LME) 재고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으며, 이는 기간 스프레드와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 하지만 중국 시장의 신호는 약화되고 있어 앞으로 하락 위험이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제조업 약세와 맞물려 구리 프리미엄(수입가-국내 가격 차이)이 급락하는 등 상반된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불확실성의 근원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책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상무부에 구리 관세 부과 필요성 검토를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관세는 기존의 나라별 관세와는 따로 추가될 수 있는 조치다. 주요 수출국 정부는 이를 두고 "미국 내 구리 공급만으로는 단기간에 수요를 맞추기 어렵다"며 관세가 오히려 미국 제조업 경쟁력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 단기 급등 vs 장기 하락...한 치 앞 모를 수급 전망


이 때문에 시장은 두 가지 상반된 시나리오 사이에서 움직이고 있다. 가워 전략가는 "만약 기업들이 미래의 관세를 우려해 계속해서 구리를 사들인다면, 이는 가격 '상승 압력(upward squeeze)'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수급 여건 역시 빠르게 변해 오히려 가격을 끌어내릴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자세한 수치를 근거로 들었다. 가워는 "중국은 이미 4월에 7만7000톤의 구리를 수출했으며, 이 같은 추세는 5월과 6월에도 계속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런던금속거래소 재고에 다소 숨통을 트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게다가 (올해 1~4월 누적 70% 증가하며) 강세를 보였던 중국의 태양광 설치는 6월부터 새로운 전력 요금이 도입되면서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라며 "한편, 구리 관세가 실제로 발표된다면 미국 수요는 둔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관세라는 변수 하나가 수요와 공급 양쪽에 상반된 영향을 미치며 시장의 변동성을 키우는 셈이다. 이렇게 커진 변동성은 전기차, 반도체 등 핵심 산업의 원가 부담을 높여 미국 제조업 전반의 비용 인상과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