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불법 이민자 대규모 추방 정책이 미국 경제 현장의 현실과 충돌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특히 농업, 건설업, 식품 가공업 등 주요 산업이 이민자 노동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대규모 이민 단속이 공급망 혼란과 생산 차질로 이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WSJ에 따르면 지난 10일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의 육류 가공업체 글렌밸리푸즈에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이 들이닥쳐 생산직 근로자 약 75명을 체포했다. 이는 해당 공장의 생산 인력 절반에 해당하며 이튿날 공장은 평소의 15% 수준만 가동됐다.
게리 로어 글렌밸리푸즈 최고경영자(CEO)는 “이민자 없이는 산업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히스패닉계 근로자들을 없애면 미국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WSJ는 이번 사태가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한 불법 이민 단속 방침과 업계의 반발이 맞부딪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분석했다. 특히 트럼프 정부 내부에서도 입장이 엇갈리는 모습이다. 브룩 롤린스 농무부 장관은 지난 15일 X에 “식량 공급망 붕괴는 미국 국민에게 타격”이라며 “우리는 수십 년간 누적된 문제를 단계적으로 해결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 장관은 ICE 국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전국적인 체포 및 추방 작전을 대폭 확대해야 하며 실패는 선택지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노엄 장관은 특히 “범죄자를 숨기거나 ICE 활동을 방해하는 산업에는 어떤 ‘안전지대’도 없다”며 공장, 농장, 호텔 등도 계속해서 단속 대상임을 시사했다. 실제 ICE는 지난 2월 뉴저지주 노스버겐의 물류창고에서 16명을, 지난달 푸에르토리코 산후안의 호텔 공사현장에서 53명을 체포했다. 지난달 말에는 플로리다주 탤러해시의 220세대 규모 학생기숙사 건설현장에서 175명 중 100명 이상을 연행해 콘크리트 타설 작업이 중단되기도 했다.
ICE의 공장 급습 여파는 인근 산업 전반으로 퍼졌다. 로어 CEO는 “단속 소식이 빠르게 퍼지면서 오마하 지역 다른 육류 공장 근로자들도 잇따라 작업장을 떠났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 공장 직원 150명 중 75명이 체포됐고, 다음날 남은 직원의 3분의 2가 출근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해당 회사의 육류 가공 노동자는 시급 18~~19달러(약 2만4600원~~2만6000원·1달러=약 1370원 기준)를 받으며 대부분 히스패닉 출신 이민자들이다.
이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민주당이 장악한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뉴욕 등 대도시에서 불법 체류자 체포와 추방을 확대해야 한다”며 “이들은 성실한 미국 시민의 일자리와 복지를 빼앗고 있다”고 주장했다.
WSJ에 따르면 현재 미국 내 불법 체류자는 약 1200만명으로 추정된다. 이 중 일부는 바이든 정부 시절 임시 보호 절차를 통해 체류 허가를 받은 상태지만, 여전히 추방 위험에 처해 있다. 2023년 인구조사를 토대로 골드만삭스는 미국 전체 노동력의 4.4%가 불법 체류자이며, 이 비율은 조경(19%), 농업(17%), 축산가공(16%), 건설업(13%) 등 일부 산업에서 훨씬 높다고 분석했다.
산업계는 트럼프 행정부에 줄기차게 우려를 전달해왔다. 미국호텔협회(AHLA)의 로잔나 마이에타 회장은 WSJ에 “호텔업계는 인력난이 심각하며, 임시 노동비자 확대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미국 건설업계도 최대 50만명의 인력 부족을 겪고 있다. 플로리다 탤러해시 공사 현장 책임자인 조 칼리엔도는 “이들은 평균 시급 20~50달러를 받고 있으며, 임금 때문이 아니라 그 일을 해줄 사람이 없어서 고용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WSJ는 트럼프 행정부가 단속과 산업 생존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토안보부는 한편으로는 “범죄 이력이 있는 불법 체류자에 단속을 우선한다”고 밝혔지만, 곧바로 “어떤 산업도 단속에서 예외일 수 없다”고 강조하며 혼선을 키우고 있다.
WSJ는 “강경 단속이 계속된다면 식품 공급망은 물론, 건설·관광업 전반에 걸쳐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며 “경제 성장을 이끈 이민자 노동력이 외려 미국 산업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