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 대중 기술통제 강화...한국·대만과 외교 긴장 가능성

이번 조치가 실행되면 삼성전자의 시안 메모리 공장을 비롯해 한국과 대만 기업들의 중국 내 반도체 생산 기지 운영에 직접 타격이 예상된다. 또한, 미국과 중국이 이번 달 런던에서 합의한 무역 휴전 협정에도 부정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제프리 케슬러 미국 상무부 산업보안청 책임자는 이번 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TSMC 3개 회사 관계자들과의 회의에서 현재 적용 중인 일괄 면제 조치를 취소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케슬러가 이 조치를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핵심 기술 통제 정책의 일환으로 설명했다고 전했다.
◇ 일괄 면제에서 건별 승인 체제로 전환
현재 삼성전자, SK하이닉스, TSMC는 일괄 면제 조치 덕분에 매번 따로 허가를 신청하지 않고도 미국산 반도체 제조 장비를 중국 내 공장에 공급할 수 있다. 그러나 면제가 철회되면 이들 기업은 중국공장에 장비를 공급할 때마다 미국 정부의 건건이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에 따라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미국 정부에 건건이 허가를 신청하는 한편, 미국 장비를 일본과 유럽 제품으로 바꾸는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러한 규제 강화가 즉시 공장 가동 중단으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원활한 운영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중국의 희토류 자석 수출 제한 등 미중 무역전쟁 때문에 생긴 다른 문제들과 함께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 추가 혼란을 야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백악관 관계자들은 이번 조치가 새로운 무역 확대가 아니라 중국이 희토류 물질에 적용하는 허가 요구사항과 같은 수준으로 반도체 장비 허가 시스템을 조정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상무부 대변인은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여전히 중국에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며 "새로운 집행 방식은 중국으로 수출하는 다른 반도체 회사들에 적용되는 허가 요구사항과 같으며, 미국이 평등하고 서로 맞는 절차를 갖도록 보장한다"고 말했다.
◇ 중국 최대 반도체업체 견제했지만...결과는 반대로 나타나
흥미롭게도 중국 최대 반도체 제조업체인 SMIC를 견제하려던 미국의 노력이 오히려 반대 효과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고 WSJ는 전했다. 중국이 세계 인공지능 경쟁에서 따라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조치는 외교적으로도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과 대만은 최근 수년간 미국에 수백억 달러 규모 투자를 약속하며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해왔는데, 이번 면제 철회로 양국과 워싱턴 간 관계에 긴장이 조성될 수 있다.
회의 참석자들에 따르면 한국과 대만 기업들은 이미 본국 당국에 이번 면제 철회 문제를 알리고 미국 정부를 상대로 한 설득 활동 지원을 요청한 상태다. 한국과 대만 모두 현재 워싱턴과 종합 무역협정을 협상 중이며, 트럼프 행정부는 앞으로 몇 주 내에 이러한 협정들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 행정부 내부서도 찬반 엇갈려
업계에서는 면제 철회가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관련 논의에 참여한 인사들은 케슬러의 산업보안청이 아직 국방부 등 미국 정부 내 다른 부처들의 동의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행정부 내 반대론자들은 면제를 없애면 결국 중국 기업들에게 이익이 되고 중국이 해당 공장들을 통제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시안 공장을 비롯한 중국 내 관련 공장들은 메모리, 논리 회로 등 각종 반도체의 세계 공급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 공장은 일반적으로 최첨단 기술을 보유하지는 않지만, 자동차와 가전제품 등에 널리 사용되는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중국공장을 중국 경쟁업체들과 맞서는 중요한 기지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의 현재 미국 면제 조치는 시안 공장이 중국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 등과 경쟁하는 일부 첨단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몇 주 동안 엔비디아와 어드밴스드마이크로디바이시즈(AMD)의 중국향 고성능 반도체 판매를 중단시키는 등 중국에 대한 기술 통제를 강화해왔다. 이 때문에 해당 미국 기업들의 매출이 수십억 달러 줄어들었다고 전해진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