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두번째 임기 중 이민세관단속국(ICE) 등 연방 법집행 요원들이 얼굴을 가린 채 일반 시민을 체포하는 장면이 일상처럼 등장하면서 일각에서는 “미국에 사실상의 비밀 경찰이 생긴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국 온라인매체 슬레이트는 ‘미국에 비밀 경찰이 생긴 것인가’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남성들이 민간인을 체포하는 장면이 어느덧 미국 사회에서 흔한 풍경이 됐다”고 21일(현지시각)지적했다.
슬레이트는 최근 브래드 랜더 뉴욕시 감사관이 뉴욕 맨해튼 이민법원에서 마스크를 쓴 남성들에게 체포된 사건을 예로 들며 “이들이 ICE 소속으로 보인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실상은 어느 기관 소속인지조차 불분명했다”고 전했다. 당시 이들은 정식 영장 없이 체포에 나섰고 뉴욕타임스(NYT)는 ‘법집행 요원으로 보이는 몇몇 남성들’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썼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같은 익명성과 위장 행위는 범죄와 혼동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슬레이트는 미네소타주에서 연방의원을 사칭한 뒤 살인을 저지른 피의자가 경찰 장비를 쉽게 구해 신분을 속였다는 사례를 들며 “누가 진짜 경찰이고 누가 위장한 자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는 건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연방 법에 따라 ICE 요원들이 마스크를 쓰는 것은 허용돼 있지만 최근 들어 이같은 행위가 ‘예외’가 아닌 ‘관례’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SNS 등에 올라온 영상 대부분에서도 ICE 요원의 얼굴은 식별이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는 “마약 카르텔 등으로부터 보복을 우려해 얼굴을 가린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주의 민주당 소속 스콧 위너 주상원의원은 최근 연방·주·지방 경찰이 근무 중 얼굴을 가리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하면서 “우리는 지금 사실상 비밀 경찰 체제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슬레이트는 “ICE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100일 만에 6만5000명을 추방했고 현재 5만명 이상을 구금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도 많지만 법집행 요원의 익명성이 빠르게 정상화되고 있다는 점은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을 위협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 국토안보부(DHS)는 “요원이 다쳐도 좋다는 것이냐”며 해당 법안을 ‘끔찍하다’고 비난했고 ICE는 “요원이 개인 신상 정보 유출 등으로 위험에 처해 있다”고 반박했다.
슬레이트는 “정부가 권력을 갖는 만큼 감시와 책임이 따르는 것이 문명사회의 원칙”이라며 “법집행 요원이 자신의 정체를 감출 자유는 시민의 안전과 권리보다 우선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