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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이스라엘-이란 충돌이 바꾼 에너지 셈법…中, 러시아 '시베리아의 힘 2' 재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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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이스라엘-이란 충돌이 바꾼 에너지 셈법…中, 러시아 '시베리아의 힘 2' 재검토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에 에너지 공급망 '빨간불'
가격·지분 이견 여전…'제한 없는 우정' 속 좁혀지지 않는 동상이몽
2019년 가동을 시작한 '시베리아의 힘' 가스관. 이스라엘-이란 충돌로 중동 에너지 공급망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자 중국이 후속 사업인 '시베리아의 힘 2'를 재검토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2019년 가동을 시작한 '시베리아의 힘' 가스관. 이스라엘-이란 충돌로 중동 에너지 공급망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자 중국이 후속 사업인 '시베리아의 힘 2'를 재검토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최근 격화된 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 충돌이 수년간 교착 상태에 빠져 있던 '시베리아의 힘 2' 가스 파이프라인 사업에 대한 중국의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중동 정세 불안으로 에너지 공급망의 지정학 위험이 커지자, 러시아를 통한 육상 에너지 확보 카드를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베이징의 의사 결정에 정통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중국 지도부는 최근 중동 사태를 계기로 이 지역에서 수입하는 원유와 천연가스의 공급 안정성에 깊은 우려를 표하며 러시아산 가스관 도입 필요성을 다시 생각하고 있다. 이 사업은 가스 가격과 소유권 문제,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에너지 의존도를 경계하는 중국의 신중론이 맞물려 수년간 지지부진했다.

중국의 고민은 에너지 수입 구조 때문이다. 컨설팅 회사 라이스타드 에너지에 따르면, 중국은 전체 가스 수입량의 약 30%를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에서 액화천연가스(LNG) 형태로 들여온다. 이 LNG는 최근 이란이 봉쇄 위협을 가했던 호르무즈 해협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또한 '티팟(teapots)'으로 불리는 중국의 소규모 민간 정유사들은 미국의 제재에도 저렴한 이란산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분석가들은 현재 이란 석유 수출 물량의 90%를 웃도는 양이 중국으로 향하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 가운데 상당량은 '다크 플릿'(dark fleet)으로 불리는 유령 선박을 통해 미국의 제재를 피하며 들여오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설령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취약한 휴전이 유지되더라도 중국 처지에서는 중동발 에너지 위기의 잠재 위험을 외면하기 어렵다.

◇ 흔들리는 중동 의존도, 대안으로 떠오른 러시아


카네기 러시아 유라시아 센터의 알렉산드르 가부예프 소장은 "군사 상황의 변동성과 예측 불가능성은 안정적인 육상 파이프라인 공급이 갖는 지정학상 이점을 중국 지도부에 깨닫게 했다"며 "러시아가 이 상황에서 이익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중국의 태도 변화를 반기는 분위기다. 이 가스관 계약은 국영기업 가스프롬(Gazprom)을 비롯한 러시아 에너지 기업의 생존에 꼭 필요하다. '시베리아의 힘 2'는 러시아 야말 지역에서 몽골을 거쳐 중국으로 해마다 500억㎥의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대형 기반 시설 사업이다. 러시아 국영 언론은 'LNG 아마겟돈: 중국, 시베리아의 힘 2 프로젝트로 긴급 복귀'와 같은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오는 9월로 예정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중 때, 이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 '장밋빛 전망' 뒤에 숨은 계약의 걸림돌


하지만 사업 재개를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중국은 한 나라에서 들여오는 원유와 가스 수입 비중을 20% 안으로 관리한다는 내부 원칙을 지켜왔으나, 최근 중동 위험 때문에 이 원칙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양측의 오랜 불협화음이었던 가스 가격과 프로젝트 지분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중국은 러시아 자국 내수용에 가까운 매우 저렴한 가격을 요구하면서, 전체 공급 가능 용량의 일부만 사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파이프라인 건설에만 최소 5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도 큰 장벽이다.

실제로 양국은 올해 안에 '시베리아의 힘 2' 계약 체결을 목표로 협상을 서두르고 있지만, 가격, 소유권, 투자 같은 핵심 쟁점에 대한 이견이 커 단기간에 착공하기는 불투명하다. 더욱이 경유국인 몽골 정부가 관련 예산 반영을 2028년까지 미루는 등 일정이 늦춰질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중국은 이번 협상과 별개로 중장기 에너지 안보를 높이려는 다변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산 가스 도입 외에 LNG 도입선 다변화, 국내 생산 확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함께 꾀하며 에너지 공급망의 안정성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양국이 선언했던 '제한 없는 우정' 이면에 여전히 깊은 불신과 현실적 계산이 깔렸다는 점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