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 건수 줄었지만 100억 달러 이상 거래 62% 급증
아시아 시장 두 배 성장…반독점 완화에 '초대형 거래' 기대감
아시아 시장 두 배 성장…반독점 완화에 '초대형 거래' 기대감

금융정보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6월 27일까지 세계에서 맺은 인수합병 거래액은 모두 2조 1400억 달러(약 2885조 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 증가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무역 전쟁과 지정학적 긴장감이 시장을 위축시켰던 연초의 우려를 잠재웠다. 당초 투자은행가들은 상반기 인수합병 시장의 활황을 기대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시장에 찬물을 끼얹으면서 여러 거래와 기업공개(IPO)가 하반기로 미뤄졌다.
◇ 시장 불안 걷히자…커지는 '하반기 낙관론'
하지만 최근 S&P 500과 나스닥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시장 변동성을 나타내는 VIX 지수가 안정세를 보이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이반 파르만 글로벌 인수합병 부문 공동대표는 "보류됐던 많은 거래가 돌아올 것"이라며 "하반기를 좋게 본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의 완화된 반독점 정책이 초대형 거래의 가능성을 키운다는 분석도 낙관론에 힘을 싣고 있다. 모건스탠리의 존 콜린스 글로벌 인수합병 부문 공동대표는 "1년 전과 비교해 500억 달러(약 67조4300억 원)가 넘는 초대형 거래가 성사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평가했다. 제프리스 은행의 필립 로스 부회장 역시 "추진력이 계속 쌓이며 더 큰 거래를 위한 길이 열리고 있다"면서 "사람들은 한 달 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느끼며 결정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 건수 줄고 규모 커져…'선택과 집중' 뚜렷
실제로 상반기 인수합병 시장은 질이 양을 압도했다. 총 거래 건수는 1만 7528건으로 지난해(2만 583건)보다 줄었지만, 100억 달러(약 13조4860억 원)가 넘는 대형 거래 수는 오히려 62%나 늘어 전체 시장 성장을 이끌었다. 시장 불확실성 속에서 상대적으로 자본력이 큰 기업들이 대형 거래에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다. 관세 갈등이 심했던 때에도 ▲글로벌 페이먼츠의 242억 5000만 달러(약 32조7035억 원) 규모 카드 처리 회사 인수 ▲차터 커뮤니케이션스의 219억 달러(약 29조5343억 원) 규모 콕스 커뮤니케이션스 인수 등은 시장의 사기를 높였다.
특히 아시아 시장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상반기 아시아 지역의 인수합병 거래액은 5839억 달러(약 787조4475억 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2699억 달러)보다 두 배 넘게 늘었다. 덕분에 세계 인수합병 시장에서 아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27.3%로 1년 만에 11%포인트 넘게 늘었다. 일본과 중국이 이끈 아시아에서는 ▲토요타 자동차의 330억 달러(약 44조5005억 원) 규모 부품 공급사 비공개 전환 ▲아부다비 국영석유회사(ADNOC) 컨소시엄의 187억 달러(약 25조2169억 원) 규모 호주 산토스 인수 제안 등 역내 대형 거래가 활발했다.
◇ 지정학적 위험 여전…AI 등 신성장 분야는 활발
다만 지정학적 위험, 무역장벽, 금리 변동성은 여전히 인수합병 시장의 주요 변수다. 미·중 무역전쟁 탓에 공급망을 재편하거나 거래 구조가 복잡해지는 일이 늘고, 이에 따라 기업들은 위험 분석을 강화하고 조건부 지급(언아웃) 등 다른 거래 구조를 쓰거나 국내 거래를 먼저 하는 식으로 맞서고 있다.
산업마다 인공지능(AI), 금융 기술(핀테크), 디지털 기반 시설(인프라) 같은 신성장 분야를 중심으로 한 거래가 활발했다. 특히 AI 관련 기업 인수는 인수합병 시장의 중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반기에는 금리 인하 기대감과 함께 기업들이 포트폴리오를 다시 짜는 움직임을 본격화할 전망이다.
골드만삭스의 라가브 말리아 글로벌 투자은행 부문 부회장은 "앞으로 더 많은 아시아 역내 거래를 보게 될 것"이라며 "일본이 아시아 전체 거래량을 이끈 주요 힘이었으며 이런 흐름은 계속되리라 믿는다"고 내다봤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