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국민차'의 향수, 8천만 원 넘는 가격표 앞에 좌절
유럽 중심의 고질병과 내부 분열이 부른 예고된 실패
유럽 중심의 고질병과 내부 분열이 부른 예고된 실패

◇ 기대와 달랐던 초라한 성적표
ID.버즈의 부활을 알린 2년 전 캘리포니아 헌팅턴 비치 무대의 뜨거운 열기와 달리, 시장 반응은 싸늘했다. 지난해 말 미국 판매를 시작한 이후 2024년 4분기 1162대, 2025년 1분기 1901대를 판매해 올해 3월 말까지 인도한 차량은 3000여대에 그쳤다. 해마다 13만 대 생산 체제를 준비했지만 지난해 세계 판매량은 3만 대에 머물렀다.
특히 문제에 쐐기를 박은 것은 지난 4월 터진 리콜이었다. 3열 좌석의 안전벨트는 2개뿐인데 3명이 앉을 수 있을 만큼 좌석이 넓게 설계된 결함이 드러났다. 이 문제로 차량 약 5600대가 리콜 및 판매 중단 조치에 들어가면서 6월 말까지 석 달 동안 인도한 차량은 고작 564대에 그쳤다.
리콜이 아니더라도 문제는 쌓여 있었다. 약 6만 달러(약 8300만 원)에서 시작하는 높은 가격은 소비자들의 외면을 불렀다. 1회 충전 주행거리는 미국 환경보호청(EPA) 기준 231~234마일(약 370km) 수준으로 경쟁 차종에 비해 짧았고, 미국 소비자들이 중시하는 컵홀더를 항구에서 추가로 장착하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심지어 기본형의 단조로운 색상 문제를 해결하려 딜러에게 유색 비닐 랩핑을 권장하기에 이르렀다.
ID.버즈의 실패는 트럼프 행정부의 25% 관세와 같은 외부 요인에 더해, 미국에서 생산하지 않아 연방 전기차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가격 경쟁력을 완전히 잃은 탓이 크다.
◇ 고질적인 유럽 중심주의와 내부 분열
근본적인 원인은 고질적인 유럽 중심주의와 내부 분열에서 찾을 수 있다. 폭스바겐 그룹 아메리카의 셸 그루너 사장은 "더 일찍 출시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실제로 ID.버즈는 승용차 부문과 상용차 부문 간의 주도권 다툼 속에서 의사결정은 더뎠고 비용은 올랐다. 여러 논의 끝에 ID.버즈 생산은 인건비가 비싼 독일 하노버 공장이 맡았다. 컨설팅 회사 올리버 와이먼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의 차량 한 대당 인건비는 약 3307달러(약 455만 원)로, 1341달러(약 185만 원)인 미국 공장의 두 배를 웃돈다.
한 전직 임원은 "상용차 엔지니어들은 전기차 기술 전문성이 부족했지만, 다른 부서 엔지니어들은 '너무 바쁘니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며 "그것 때문에 그렇게 오래 걸렸다"고 지적했다.
◇ '국민차' 정신 잃고 '부자들의 차'로
ID.버즈가 외면받은 더 본질적인 이유는 폭스바겐의 '국민차' 정신을 잃었다는 데 있다. 1960년대 오리지널 버스는 저렴한 가격으로 '국민차(the people's car)'의 상징이었다. 1970년 미국 판매량이 57만 대에 이를 만큼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폭스바겐의 헤르베르트 디스 전 최고경영자(CEO)는 배출가스 스캔들 이후 "백만장자가 아닌 수백만 명을 위한 저렴한 전기차"를 만들겠다며 ID.버즈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하지만 결과물은 정반대였다. 4만 5000달러(약 6182만 원) 아래에서 시작하는 토요타 시에나, 기아 카니발 하이브리드 등이 더 나은 주행거리와 기능을 제공하는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텍사스의 한 자동차 부품 공급업자 오트리 맥비커는 "7만 2000달러(약 9890만 원)라는 가격을 듣고 구매를 포기했다"며 "첫해에 가치가 50%나 떨어질 전기차에 그렇게 큰돈을 쓰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었다"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씨티그룹의 하랄드 헨드릭세 애널리스트는 "폭스바겐 브랜드의 문제는 항상 너무 유럽 중심이었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과거 미국 시장의 SUV 열풍에 뒤늦게 대응했고, 배출가스 스캔들 역시 유럽 기술을 미국 기준에 억지로 맞추려다 비롯됐다.
폭스바겐은 변화를 약속했다. 폭스바겐의 올리버 블루메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고객의 기대에 부응하는 제품으로 성장하겠다"고 밝혔지만, 그의 구상에서 ID.버즈는 없었다. 그는 대신 사우스캐롤라이나에 20억 달러(약 2조 7475억 원)를 투자해 짓는 새 공장에서 생산할 헤리티지 SUV 브랜드 '스카우트'를 언급했다. 야심 차게 부활한 전기 버스는 뒤로한 채, 폭스바겐의 시선은 이미 다음 프로젝트로 넘어간 모양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