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 갈등 심화로 양국 관계 급변…"15만 명 필리핀 노동자 대피 대비책도 논의"

길버트 테오도로 필리핀 국방부 장관은 지난 10일 인터뷰에서 "우리 지역 안에서 중국이 무력을 내보이는 것은 극도로 우려스런 일"이라며 "대만의 안보가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을 숨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닐라가 여전히 '하나의 중국' 정책을 지키고 있지만, 필리핀과 대만의 운명은 점점 더 얽히고 있다고 말했다.
◇ 구체적 군사 협력 사례들 속속 공개
양국의 협력은 이미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은 지난 4월 대만 관리와 만나는 정부 인사에 대한 수십 년 된 규제를 풀고 대만 국민의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는 지침을 발표했다.
가장 눈에 띄는 협력은 해상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다. 필리핀 해안 경비대는 최근 대만 해안 경비대와 함께 두 관할권 사이 수로인 바시 해협에서 순찰을 실시했다고 관계자들이 밝혔다. 지난달에는 대만 해군과 해병대 참관단이 미국과 필리핀 해병대가 이끈 합동 훈련에 참석했다.
카만다그로 불리는 이 훈련에서 미군, 필리핀군, 일본군은 대만 남쪽 끝에서 130마일도 안 되는 필리핀 최북단 바테네스 제도에서 대함 미사일 발사 연습을 했다. 대만 정부 고문은 대만 인력이 공식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테이블 탑 계획에 참여했으며 미국 동맹국들 간의 협력이 펼쳐지는 것을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다고 말했다.
◇ 중국의 강력 반발과 지역 우려
중국은 필리핀과 대만의 관계 강화에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궈지아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대만 문제는 중국의 핵심 이익의 핵심"이라며 "우리는 필리핀의 일부 사람들에게 대만 문제에 대해 도발을 하거나 불장난을 그만둘 것을 요구한다"고 경고했다.
지난 4월 필리핀군 참모총장 로미오 브라우너 주니어 장군이 대만 침공에 대비하라고 병사들에게 지시하는 영상이 공개됐을 때도 중국 외교부는 필리핀에 도를 넘지 말라고 경고했다. 장 샤오강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필리핀에 미국의 첨단 미사일 시스템이 배치된 것에 대해 마닐라가 "미국의 전쟁 전차에 묶여 이 지역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공모자가 됐다"고 비난했다.
필리핀 국가안보회의에 따르면 지난해 필리핀 서부 해안 해역에서 중국 선박 수가 눈에 띄게 늘었으며, 사이버 보안 공격과 스파이 활동 같은 위협도 중국에서 나오고 있다. 중국 함정은 지난해 6월 칼과 창을 휘두르는 중국군이 필리핀 어선에 올라 격렬한 대치를 벌인 것을 포함해 필리핀 서부 해안 해역에서 필리핀 선박을 들이받고, 떼를 지어 몰아붙이고, 두들겨 팼다.
현재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의장국인 말레이시아를 포함한 동남아시아의 일부 나라들도 마닐라와 타이베이의 새로운 관계를 불편해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필리핀이 미중 전쟁에 더 깊이 빠져들 것을 걱정하고 있다고 필리핀 관리들이 전했다.
그러나 돈 맥클레인 길 드 라 살 대학 지정학 분석가는 "우리가 다른 길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우리는 그렇게 할 것"이라면서도 "현 상황으로 볼 때, 우리가 대만과 협력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농담일 것"이라고 말했다.
7월 초에는 필리핀 해안경비대 관계자와 해군 관계자가 대만에서 열린 해양 문제 포럼에 참석해 중국의 공세를 물리치겠다고 맹세한 라이칭테 총통을 비롯한 여러 지도자들을 만나 중국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테레사 라자로 필리핀 외무장관은 이전에 보도된 적이 없는 강한 어조의 서한을 통해 두 순방 관리들이 신중하게 행동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7월 4일 필리핀 국방부와 해안경비대 수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런 행동은 대통령의 지도 아래 중국과의 양자 관계를 안정시키려는 현재의 노력을 탈선시킬 수 있는 심각한 외교 문제를 일으킨다"고 썼다.
워싱턴에 본부를 둔 전략 및 국제학 연구소의 아시아 해양 투명성 이니셔티브 책임자 그레그 폴링은 "중국이 자신들의 행동이 이런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완전히 예상했는지 확신할 수 없다"며 중국의 해상 공세가 오히려 필리핀과 대만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결과를 낳았다고 분석했다.
롬멜 주드 옹 아테네오 행정대학원 교수(필리핀 해군 예비역 소장)는 대만의 현상 유지가 필리핀의 이익에 맞다며 "대만은 팽창주의인 중국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완충 장치"라고 설명했다.
한편, 대만에는 침공이 일어날 경우 대피해야 할 15만 명 이상의 필리핀 이주 노동자가 있으며, 필리핀이 미국과 맺은 상호방위조약은 필리핀이 미국의 군사 대응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고 분석가들은 보고 있다. 지난 2023년 미국은 필리핀에 있는 4개의 새로운 군사 기지에 대한 접근을 확보했으며 그 중 3개는 북부 루손 섬에 있다.
왕팅위 대만 민주진보당 국회의원은 양국 관계에 분명한 "불편함"이 있지만,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밀고 나가는 힘이 있다며 "낯선 사람들이 서로에게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고 표현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