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감산을 점진적으로 철회하며 장기적인 시장 점유율 확대 전략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원유 공급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유가가 하락하지 않는 배경에는 지정학적 긴장과 비OPEC 국가의 탐사 부진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석유 전문매체 오일프라이스닷컴은 OPEC이 지난 2022년부터 유지해온 감산 기조를 최근 해제하고 있으며 이같은 조치가 “미국 셰일 산업을 겨냥한 가격 전쟁”이 아닌 “시장 지배력 회복을 위한 장기 전략”의 일환이라고 20일(현지시각) 보도했다.
◇ 지정학 변수 덕에 가격 방어…“OPEC은 앉아서 기다리기만 해도 된다”
하이탐 알 가이스 OPEC 사무총장은 지난달 캐나다에서 열린 회의에서 “석유 수요의 정점은 아직 멀었다”며 “세계 인구 증가에 따라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며 OPEC은 그에 필요한 공급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오일프라이스닷컴은 “OPEC은 지금 굳이 무리하게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며 “미국 셰일이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해 생산을 줄이고, 국제 메이저 석유사들의 신규 발견도 줄어들고 있어 가격은 자연스럽게 유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 “짧고 급격한 가격전쟁 아니다”…사우디 타깃은 여전히 셰일
프란시스코 블랑치 뱅크오브아메리카 원자재 리서치 책임자는 지난달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이번 가격 전쟁은 짧고 가파른 형태가 아니라, 길고 완만한 양상이 될 것”이라며 “사우디의 타깃은 여전히 미국 셰일 업계”라고 밝혔다.
OPEC이 감산을 철회한 배경에는 내부 단합의 필요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분석기관 클레퍼의 아메나 바크르 애널리스트는 아부다비 매체 더내셔널과 인터뷰에서 “감산을 철저히 지킨 국가들이 불만을 표시하자 OPEC은 질서 있는 방식으로 증산에 나섰다”며 “시장에 원유가 넘치는 상황을 피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 비OPEC의 부진…“시장 판도 아직 OPEC 중심”
OPEC 외 국가들의 탐사 실적이 부진한 점도 OPEC의 전략에 힘을 싣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달 골드만삭스 보고서를 인용해 “2020년 이후 전통유전에서 연평균 신규 발견량은 약 25억배럴로, 2020년 이전 3년간 평균의 25% 수준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전기차 확산을 근거로 석유 수요 둔화를 반복적으로 경고해왔지만 미국 내 전기차 판매는 둔화 추세에 있으며 중국 역시 석유 수요가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예측의 신뢰도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오일프라이스닷컴은 “설령 석유 수요가 정점에 도달하더라도 급감하는 게 아니라 고원 상태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며 “OPEC은 이런 수요를 책임질 수 있는 유일한 공급자로서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